[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울 서교동 레스토랑 '라콤마' 박찬일씨

  • 입력 2010-12-17   |  발행일 2010-12-17 제36면   |  수정 2010-12-17
해외유학파 셰프를 찾아서.5
이탈리아 스파게티 종류 무려 6만여종
한두 음식 배우고 파스타 운운 마세요
배울 때는 꿈에 취해 식당이 뭔지 절대 몰라
본토-한국서 시행착오 거듭할수록 실력 늘어
정통이 답 아니고 퓨전이라고 나쁜 것 아니죠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울 서교동 레스토랑

그는 언론의 생리를 잘 안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시점, 평소와 달리 파김치가 된 나머지 초췌한 모습을 보고 '아, 정치인의 두 얼굴이 이런 거구나'라며 속으로 탄식을 했고, 단독 인터뷰를 할 수 있었지만 너무 충격을 받아 포기하고 일산 자택을 걸어나온다. 그것 때문에 자기 일에도 환멸을 느꼈다. 여성잡지인 우먼센스의 민완기자였던 그는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납금만 내고 전공과목인 소설 대신 '주설(酒說)'만 주절대다가 대학시절을 보낸 조금은 엉뚱한 사내.

영주가 고향인 모친은 식당을 했다. 그는 어깨 너머에서 식당 요리의 사각지대를 보게 된다. 된장을 걸쭉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밀가루를 넣는다는 것, 그런 류의 주방정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주인의 욕구만 드러나고 손님의 욕구는 곧잘 무시되는 대한민국 식당의 짐승스러움에 차츰 분개를 하기 시작한다. 8년간 잡지사 기자생활을 했지만 자기는 조직의 일원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 때쯤 외환위기를 만난다. 다들 구조조정을 당하고 있었다. 장마철 몰래 내다버려지는 폐수처럼 그도 어디론가 휩쓸려 사라지고 싶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평소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지중해의 바다와 구름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 '대부', '시네마 천국' 등에서 이미 간접 경험한 공간이었다. 영화 '분노의 주먹'에 등장한 파스타는 좀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 유전자'가 도졌다. 그의 여동생은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있었다. 유학을 결심한다. 서강대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요리학원도 좀 다니다가 1999년 6월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비행기 안에서 나름대로 꿈을 정리한다. 6개월 정도 이탈리아 요리를 경험하고 귀국해서 테이블 3개 놓고 지중해 풍 이탈리아 전문 파스타점을 홍대 근처에 열어보자로 다짐한다. 그건 정말 이탈리아 현지 물정을 모른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수료한다. 토리노, 시칠리아, 패루자, 로마 등 이탈리아 전역을 나그네처럼 돌아다녔다. 이탈리아 특유의 냄새를 모르고선 파스타점 오너셰프가 결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파스파가 이탈리아 요리의 전부인 줄 착각한다. 그것 흡사 이탈리아의 한 청년이 안동에 와서 건진국수만 배우면 한국요리를 다 익힌 줄 아는 것과 같은 발상이었다.

하나를 알면 또 모르는 게 나오고, 그걸 배우면 더 새로운 요리가 그를 유혹했다. 파스타도 무궁무진, 와인도 무궁무진, 치즈도 무궁무진, 남·북·중부권의 각기 다른 요리, 어느 하나만 갖고 이탈리아 요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절감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각종 식당을 전전했다. 교과서에 없는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3년간 내공을 키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에 내리는 순간 호주머니에는 돈이 거의 없었다.

박찬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콤마 주방을 총책임지고 있는 그를 만나고 왔다. 그의 몸에서 그리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런데 햇살보다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배워온 권법이 서울에서 나름대로 쿨버전으로 자리잡고 있는 홍대상권에서 액면그대로 먹혀들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의 속내는 향후 해외유학파 오너셰프 지망생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말한 것들이었다.



◇이탈리아 본토 맛 아직 서울에서 잘 통용되지 않고

-현재 서울의 파스타 수준이 대구보다도 좀 높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서울과 대구를 따질 것도 없다. 서울도 망가지고 있다. 한국사람들 패션은 전위적이어도 자기가 먹는 음식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한때 이탈리아 본토는 정답이고 한국은 오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요리를 좀 해보니 그건 어불성설이더라. 이탈리아 본토식을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 줄 수도 있고 한국화 된 파스타를 원하면 그것도 해줄 수 있다. 그 둘 다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1천명도 안 된다. 그런 사람을 겨냥해 식당을 하면 다 망한다. 물론 제한적인 사람을 겨냥해 사업을 해도 괜찮다. 대중적 라인을 가도 좋다. 선택은 자유."



-서울에 와 있는 현재 이탈리아 요리사들의 수준과 마인드는 어떤가.

"현재 서울에 약 30~40명이 들어와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 정말 고집이 세다. 변화의 방향에 대한 마인드가 거의 없다. 한국인 셰프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당신이 서울에 와서 나름대로 파스타 신드롬을 일으킨 것 같다.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를 지난해 책으로 출간했다.

"귀국후 청담동에서 셰프생활을 했다. 청담동 뚜또베네, 가로수길 논나 등을 론칭해 성공시켰다. 논현동 누이누이를 거쳐 현재 자리로 왔다. 엄격히 말해 지금 나는 오너셰프가 아니다. 아직 나의 요리를 찾아 이 식당 저 식당을 전전하고 있다. 고집은 있지만 이젠 그걸 내색하지 않고 트렌드 속에서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한다. 나는 토종 식재료를 갖고 훌륭한 이탈리아풍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동해안 피문어와 홍천 찰옥수수를 곁들인 라비올리,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과 청양고추, 봄 담양 죽순 등을 갖고 파스타를 만든다."



◇ 파스타에 숨겨진 뒷 정보들

-흥미로운 파스타 정보를 전달해달라.

"1740년에 최초의 제면공장이 제노바에서 문을 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제노바의 경제력이 약해지면서 나폴리가 새로운 건조 파스타의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와 맞물려 이탈리아 중북부 에밀리아 지방에서 프레시 파스타(생면 파스타)가 발달한다. 1700년대 정도에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파스타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와인처럼 이탈리아 파스타는 당국의 엄격한 제재를 받는다. 달걀을 넣은 생면 파스타인 경우 유럽연합의 통제를 받는데 밀가루 1㎏에 최소 200g의 달걀이 들어가야 된다. 건조 파스타 수분은 12.5% 이하여야 한다. 이탈리아에 약 200개가 넘는 대형 파스타 공장이 있다. 건 파스타의 유통기한은 보통 3년이다."



-파스타 면이 좋아야 맛도 좋을 것 같은데.

"인터넷을 보면 '밀가루 100g에 달걀 한개, 올리브 오일과 소금 약간' 등 천편일률적으로 소개돼 있다. 참 막연하다. 나의 이탈리아 파스타 사부인 주세페 바로네는 '좋은 물과 좋은 달걀, 좋은 밀가루, 그게 전부'라고 강조한다. 좋은 밀가루로는 이탈리아 수입산 밀가루인 세몰리나(Semolina)가 있다. 반죽도 요령이 필요하다. 마구 주무르는 게 아니라 손 바닥의 우묵한 부분에 힘을 줘서 치댄다. 주무르는 게 아니라 누르는 것이 이탈리아식 반죽이다. 그 감을 익혀야 된다."



-이탈리아에는 과연 몇 종류의 파스타가 있을까.

"그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몇몇 칼럼이나 기사에서 200종 혹은 300종 운운하는데 기가 막힌다. 파스타의 기본 종류를 알아보자. 스파게티, 카펠리니, 페투치네, 라비올리, 파파르텔레, 루오테, 콘길리에, 타야린, 토르텔리니…. 끝도 없다. 대충 세어 봐도 200종은 넘는 것 같다. 이게 전부냐면 절대 그렇지 않다. 조리법과 소스에 따라 각 파스타가 분화하기 때문이다. 스파게티만 해도 소스 종류에 따라 200~300종은 되는 것 같다. 파스타 종류를 300종으로 볼 때 소스의 수와 조리법을 200종으로 잡으면 무려 6만 종이나 된다. 그러니까 함부로 이탈리아에는 몇 가지의 파스타가 있다고 다 아는 척 이야기 해선 곤란하다."



◇ 독종만 살아남는 요리판

-가장 단순한 파스타는 알리오 올리오 페페론치노 같은데.

"맞다. 마늘만 갖고 만드는 알리오 올리오 페페론치노는 모두의 파스타이다. 마늘향이 가득한, 가장 스트레이트하고 그 어떤 꾸밈이나 변수가 없는 스파게티의 정수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에선 마니아 아니면 잘 선택하지 않는다."



-당신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준다면.

"책과 현실은 다르다. 목표를 분명히 정해라.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어라.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그들이 겪을 시행착오는 다르다. 한국만 보면 모른다. 그래서 치사해도 본토에 가서 6개월 쯤 정통 요리학교에 들어가라. 운전면허증 있다고 사고 안나는 게 아니다. 그러니 현지 식당에서 1년쯤 실습을 해봐야 기능이 숙성된다. 국내에 들어와서 식당부터 여는 건 자칫 자살행위. 겉멋만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은 맛만 갖고는 승부가 안난다. 재고관리를 위한 회계분석, 좋은 식재료 확보를 위한 직접 장보기, 단골 관리 등 그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정말 돈이 아니라 요리하는 게 행복하다는 자만 했으면 좋겠다. 손님에게 먹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독종들만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다는 걸 명심해라. 나는 아직 밑바닥을 박박 기고 있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서울 서교동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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