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맛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입력 2011-05-13   |  발행일 2011-05-13 제42면   |  수정 2011-05-13
시장이 반찬인데…‘맛의 함정’에 빠진 현대인
원재료보다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져
쓰지말라 하면서 조미료 든 맛 원해
음식은 사실상 입 아닌 뇌가 먹는것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맛에 대한 오해와 진실
진정 맛있는 음식은 맛이 없는 음식이 아닐까. 갈수록 화학조미료에 포장된 상술어린 가공된 맛이 전횡을 휘두르고 있다.

‘맛있는 음식이 좋은 음식일까.’

너무 포식해서 배 터지기 직전일 때 조리사가 다가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내밀면. 물론 ‘무조건 NO’. 그런데 아사 직전일 때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을 들이대면 물론 ‘무조건 YES’.

우린 가장 맛있는 음식과 가장 맛없는 음식 사이를 오가다가 임종을 맞는다. 과연 맛을 측정하는 ‘맛도계’가 있을까. 아쉽게도 짜고 맵고, 시고, 단맛을 재는 측정기는 있지만 맛도계는 없다.

우린 지금 혀의 즐거움을 위해 맛에 탐닉하는 사람들과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로 나눠지는 분기점에 있다. 한쪽은 패스트푸드족, 다른 한쪽은 슬로푸드족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누군가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가장 맛없는 음식’이라고 했다. 이 말은 화식(火食)이 아니라 ‘생식(生食)’을 의미한다. 예전 도사와 선사들은 여느 사람들이 먹는 화식을 멀리했다. 생기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오곡을 직접 갈아, 거기에 말린 해초류를 섞어 먹었다.

지금 음식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나름 자기 맛을 갖고 있다. 그것을 다 맛보려는 것은 지구상 와인을 다 마시려는 행위와 같다. 불가능하다.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현재 섭취하고 있는 상당수 음식은 거의 원재료 맛이 아니다. 맛이 굴절되고 변형된 것이다. 물론 과일류는 그대로 섭취하지만 그 외 농축수산물은 조미료 맛에 힘입어 식탁에 오르고 있다.

가령 대구탕, 복어탕, 해물탕, 매운탕은 자기 맛의 스펙트럼이 있다. 그런데 시중에서 먹으면 그맛이 그맛이다. 제철 생물이라면 육수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맹물 넣고 좋은 천일염과 이런저런 채소만 넣어도 된다. 강변 천렵꾼의 매운탕, 어부의 선상 즉석 물회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간직하고 있다. 과연 이 버전이 도심 대형 매장에서 가능할까? 단번에 클레임이 걸린다. “국맛이 왜 이렇냐”는 불만이 쏟아질 것이다. 다시말해 ‘감칠맛이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화학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것이다.

그런데 더 이율배반적인 것은 그들에게 “이 육수에 화학조미료를 수북하게 부었다”고 하면 기겁을 하고 그 음식을 외면한다. 현대인들은 화학조미료와 관련해 이런 이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말라면서 실제로는 조미료 들어간 맛을 원한다. 셰프들도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다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면서도 실은 은근슬쩍 조미료에 기댄다. 조미료를 포기하면 식당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지만 조미료에 의존하면 대박은 아니라도 최소한 문은 닫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통념인 것 같다.

대구가 전국 여러 도시 중에서 가장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재료 맛만을 내려는 미래파 셰프들은 늘 울상을 짖는다. 좋은 재료를 내놓아도 조미료 들어간 걸 더 선호하니 그러고 싶을 것이다.


◆ 맛이란 무엇인가

기자에게 ‘대구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을 찾는 이들이 많다.

‘가장 맛있다’는 말이 참 암담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미식가들은 그런 질문을 잘 안한다. 맛있는 것보다 멋있고 ‘특별한 메뉴’에 더 목 맨다.

가장 맛있는 것보다 제대로 된 음식이 정답이 아닐까 싶다.

맛을 분해하면 두 종류로 나눠진다.

맛(taste)과 풍미(flavor). 맛은 혀의 미뢰(tastebud)가 감지하는데 다섯 가지, 단맛·신맛·짠맛·쓴맛·우마미(umami·감칠맛)가 있다. 신맛은 음식이 상한 걸 경계하려고, 쓴맛은 독성이 있는 음식을 못먹게 하려는 생명체의 자구책인 것이다. 혀의 표면에 좁쌀알 같이 도톨도톨 돋아나 있는 게 바로 ‘유두’이다. 유두의 옆에 장미꽃 봉오리 모양의 맛세포인 미뢰가 있다. 음식이 입 속에서 침에 녹으면 미뢰를 통해 미세포와 접촉한다. 그리고 미세포의 표면단백질과 전기변화를 일으켜 화학신호로 뇌를 자극하는 것이다. 어쩜 음식은 혀가 먹는 게 아니고 뇌가 먹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풍미는 코의 후각기관이 감지한다. 고기 굽는 냄새의 위력을 우리는 잘 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맛있다’고 하는 총체적 경험은 맛보다 풍미가 훨씬 더 자극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를 스테이크 요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리 직전의 쇠고기 안심. 그게 불과 소금 등을 만나면서 맛이 달라진다. 열을 가하면 고기 표면에서 수분이 제거되고 뜨거워지면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일어난다. 갈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브라우닝 반응(browning reac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과정에 탄소가 질소·산소 따위와 결합하고 이런 화학적 결합물질들이 풀, 양파, 향신료, 꽃 등의 향을 발산한다.

그런데 맵고 떫은맛은 순수한 맛이 아니고 일종의 통증으로 엄격히 말해 ‘신경’이 느끼는 것이다. 매운맛 역시,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다. 뇌는 매운맛을 통증 세포를 통해 느낀다. 매운 음식을 먹으며 시원하고 맛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뇌가 통증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얼얼한 혀의 통증을 잊고 확 깨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식품과학자들이 분석해 본 결과 맛의 종류는 200여가지.

식품공전이 인정한 화학첨가제는 무려 2천여종이 넘는다. 100% 천연재료 운운하지만 음료수 등의 식품성분표를 보면 놀랄 것이다. 히알루론산, 덱스트린, 합성착향료, 필라타노스, 구연산, 펙틴, 타우린 등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다. 상표가 붙은 건 다 이런 첨가제를 법적으로 넣어야 된다는 사실을 일반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 맛 지도

인간의 가청 주파수 대역이 있듯이 맛도 세포가 인지할 수 있는 범주가 있다.

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한 맛은 그동안 네 가지(단맛ㆍ짠맛ㆍ신맛ㆍ쓴맛)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제5의 맛’인 우마미가 최근에 식품의학자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우마미를 발견한 이는 1908년 다시마에서 글루타민산나트륨(MSG)을 발견한 일본 도쿄대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

예전 생물학 교과서에 나오는 ‘혀 지도’도 오류가 있다.

통상, 단맛은 혀끝, 신맛은 혀 양쪽, 쓴맛은 혀 뒤, 짠맛은 혀 가장자리에서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 마운트시나이 의대 로버트 마골스키 교수는 이론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교과서에 나온 혀 지도는 19세기 말의 연구를 잘못 해석해 실은 결과로 사실 모든 맛은 부위에 상관없이 혀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각도 하나의 민족성을 갖고 있다.

물론 인종마다 느끼는 정도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사카린이 설탕처럼 달다고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쓰다고 느낀다. 이유는 유전자의 결핍 때문이다. 고기라고 하면 중국에선 돼지고기를 의미한다. 물론 국내의 경우도 제주도에서 돼지고기를 진짜 고기로 인정한다.

유전자의 결핍 차이는 미뢰 숫자의 차이를 낳는다. 맛을 감지하는 부분인 미뢰의 숫자, 즉 밀도의 차이에 따라 사람마다 맛의 느낌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맛을 느끼는 3천~1만개 미뢰의 미세포는 45세를 전후해 감소하고 퇴화하면서 미각이 둔해진다. 물론 여기에 흡연, 과도한 음주가 더해지면서 맛세포는 더욱 둔감해진다. 남녀의 미뢰 분포수도 다르다. 여성은 남성보다 미각에 훨씬 민감하다. 특이한 점은 여성은 쓴맛에 민감한 반면 남성은 단맛에 민감하다는 사실. 여성이 쓴맛에 민감한 이유는 뭘까. 대개의 독성 성분이 쓴맛을 가지므로 임신 중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기피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맛에 대한 오해와 진실
1908년 일본에서 태어난 화학조미료 MSG의 무차별 살포로 인해 상당수 소비자들은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웰빙식품을 멀리함에 따라 성인병에 더 쉽게 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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