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1] 인물열전 <7> 김주영의 '아버지의 8년 유배길 시중 든 효자 - 밀암 이재 스토리 (안동)'

  • 입력 2011-07-27   |  발행일 2011-07-27 제7면   |  수정 2021-05-29 19:23
[스토리텔링 인물열전 .7] 김주영의  아버지의 8년 유배길 시중 든 효자 - 밀암 이재 스토리(안동)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갈암금양강도지(葛庵錦陽講道址) 전경. 밀암 이재의 아버지 이현일이 유배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양정사(錦陽精舍)를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있는 갈암금양강도지(葛庵錦陽講道址) 전경. 밀암 이재의 아버지 이현일이 유배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양정사(錦陽精舍)를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밀암(密庵) 이재(李栽)는 과거를 포기하고 평생 학문에만 전념한 재야의 선비로 잘 알려져 있다. 벼슬은 말년인 72세에 장악원(掌樂院) 주부(主簿)로 제수된 것이 전부였다. 그의 아버지는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안동 출신의 갈암 이현일이다. 이재는 그런 아버지의 영남학맥 정통을 계승한 것은 물론, 후진 양성에도 힘써 수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특히 그는 효(孝)의 상징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아버지 이현일이 8년간 유배길에 올랐을 때, 아버지의 유배길 시중을 든 일화는 그의 효성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남일보의 ‘밀암 이재 스토리’는 밀암의 효성과 선비정신을 새롭게 조명한 작품이다. 갈수록 효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2011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꼬집고, 밀암의 정신을 배우고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칼럼 형식의 글로 재구성했다. 원고 집필은 대하소설 ‘객주’로 유명한 김주영 작가가 맡았다.




#1

여행 중인 나그네가 안동으로 들어서게 되면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호와 마주치게 된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표지판이 바로 그것이다. 안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기도 하고, 다소 생경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구호에는 안동의 전통과 자긍심이 베어 있다. 안동 사람들이 말하는 정신문화란 두말할 것도 없이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유교의 전통에 기초를 두고 있다.

정신문화 또는 유교란 말에서 우리는 응당 선비 혹은 선비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조선시대 이후로 우리의 역사는 선비정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함께해 왔다. 유교는 그때마다 사회의 이상과 진로 선택의 중심축이 되어 왔고, 그들은 유교의 덕목을 가치기준으로 삼아 사회적 이상을 제시해 왔다. 그들이 가지는 덕목 중의 하나는 임금이 간곡하게 부른다 하여도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인격수양과 학문에만 전력을 기울이는 산림처사로 일생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름난 안동 선비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벼슬길에 발을 들여놓지 않음으로써 처사의 순결성을 잃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벼슬할 만한 능력을 가졌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평생을 재야에서 지낸 선비를 처사라 불렀다. 또 군왕이 벼슬을 내리려고 불러도 나아가지 않은 선비를 징사(徵士)라 불렀다.

그들이 가진 또 다른 덕목은 언제 어떤 장소에 가거나, 가계가 몰락하여 궁핍을 겪거나 남루한 생활을 한다 하여도 한결같이 행실을 바르게 하고, 예절을 지키며, 의관을 정제하여 청명하고 고상한 인격을 갖추고 위엄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비의 또 다른 덕목은 바로 효도였다. 극진한 공경심과 헌신적 봉사로 어버이 은혜에 보답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어버이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이 유교정신의 전통을 세운 분 중에서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하직할 동안 단 한순간도 이 정신에 벗어난 삶을 산 적이 없는 밀암(密菴) 이재(李栽)를 빼놓을 수 없다. 퇴계학파의 정통을 계승한 그는 17세기 후반 영남도학의 대표적 석학인 갈암(葛菴) 이현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영양군 수비면 반곡리가 그의 고향이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비범하고 문장에 능통했으며 유학에 통달하였다. 33세 때 숙종의 부름을 받아 벼슬길에 오른 아버지 이현일을 따라 몇 차례 상경한 적이 있었으나, 중앙의 고관대작들과는 상대하지 않았다. 1694년 서인이 득세하자, 남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현일은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그 유배길을 아들 이재는 수행한다.

영양, 강릉, 양양, 원산, 함흥, 홍원까지 1천500리. 또 다시 서울, 포천, 김하, 천령, 원산, 영흥, 함흥, 홍원, 북청, 마운령, 길주, 명천, 종성까지. 2년 뒤, 다시 전라도 광양까지 3천리 길을 이배(移配)하는 동안 줄곧 아버지를 따라 수행하며 시중을 들었다. 유배지를 따라 다니며 어버이를 시중드는 일이란 그 고초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지내는 동안 학문에 대한 연구를 중단한 적이 없었다. 평생을 통해 퇴계의 성리설을 연구하고, 학문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8년간의 유배를 마감하고 적소에서 풀려난 그의 부친이 안동군 임하면 금소리에 초당을 짓고 칩거하면서 전국에서 유생들이 모여들었다. 이재는 그 유생들을 먼저 만나 강론을 폈다. 그토록 아버지를 모시느라 부인을 잃고 또 세 아들까지 잃는 불행을 겪었으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였다. 그러다가 74세로 일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그의 묘비명에는 임금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인격수양과 학문에만 전력을 기울인 높은 선비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징사’로 표기되었다.




#2

얼마전 보기에 난감하기 그지없는 동영상이 트위터에 뜬 것을 보았다. 혈기방장(血氣方壯)한 20대 청년이 지하철의 좌석에 앉아있는 노인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차마 입에 담아선 안될 욕설을 퍼붓고 있는 장면이었다. 노인은 대답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도, 그 청년은 매우 긴 시간 동안 지하철 안이 떠나갈 정도로 노인에게 심한 욕설을 계속하고 있었다.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바라보다 못한 다른 승객이 그만하라고 충고를 주기도 했는데, 이번엔 그 승객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 사건과 약간의 사이를 두고, 이번에는 역시 지하철에서 자기 아이를 귀엽다고 만져준 할머니를 향해 아이의 엄마가 더러운 손을 집어치우라는 투로 폐부를 도려내는 듯한 앙칼진 욕설을 퍼붓는 장면의 동영상도 있었다.

다리를 꼬지 말라는 노인의 간섭과 병균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손으로 아이를 만졌다는 것은 실수일 수 있고 결례일 수도 있었다. 정교하거나 엄숙한 가정교육을 받을 겨를이 없었던 젊은이에게는 늙은이들의 그런 행동이 간섭이나 위협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흔히 회자되는 세대간의 차이나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밀암 이재의 효행과 지하철에서 일어난 볼꼴 사나운 사건은 시대 구분만 다를 뿐이지, 우리들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의식구조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다. 아무래도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아직까지는 유교적 의식구조와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그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전 전라도의 어떤 농촌에서 멧돼지들의 폐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농부가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호랑이 울음소리를 녹음해 밤이 되면 녹음기를 밭머리에 놓아두고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도록 했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나온 이후로 멧돼지들이 감쪽같이 나타나지 않아 제대로 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 울음소리가 주효한 것이다. 그런데 농부에게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멧돼지들을 퇴치한 것은 좋았으나, 지금의 멧돼지들이 벌써 100년 전에 이 땅에서 멸종된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어떻게 알아채고 줄행랑을 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문의하게 되었고, 일주일만에 회신이 돌아왔다. 돌아온 회신의 내용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그토록 많이 살던 호랑이들이 멸종되기 전, 그 시절에 같이 살았던 멧돼지의 먼먼 조상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조상들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천적이 나타난 것을 눈치채고 그때마다 줄행랑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울음소리가 들리면 지체말고 도망치라는 DNA를 후손에게 남겨 놓았다. 농부의 현명한 멧돼지 퇴치는 바로 이런 유전인자 때문에 기능했다는 것이다.

밀암 이재는 280년 전의 사람이지만, 그가 남긴 효와 체통의 미학은 아직까지 우리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유교가 가진 덕목을 상기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절망하지 않는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된다.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스토리텔링 인물열전 .7] 김주영의  아버지의 8년 유배길 시중 든 효자 - 밀암 이재 스토리(안동)
◀ 갈암금양강도지의 내부모습. 아직도 이곳에서는 밀암 이재의 후손들이 생활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인물열전 .7] 김주영의  아버지의 8년 유배길 시중 든 효자 - 밀암 이재 스토리(안동)
▶갈암금양강도지의 외부모습.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 속에서 밀암 이재와 그의 아버지 이현일의 검소했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 인물열전 .7] 김주영의  아버지의 8년 유배길 시중 든 효자 - 밀암 이재 스토리(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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