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절반이 자기 편 정치인의 잘못은 처벌 않겠다 선언...한국정치의 본질적 문제는 극화된 양당제"
'헌정사상 최초' '유례 없는' '초유의 사태'….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건이나 상황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구들이다. 지난해 연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촉발된 정치적 파행은 급기야 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여야는 끝 간 데 없는 정쟁에 몰입하고 있다. 결국 정치불신을 넘어 정치혐오가 조장되고, 국론 분열이 심화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건강한가.
정치심리학자 한병진 교수(계명대 정치외교학과)는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리인이다. 대리인은 잘못했을 때 국민의 처벌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현재 국민의 절반이 우리 편의 정치인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은 두려울 게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내로남불의 정치인은 스스로의 잘못을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시민이 바른 눈으로 지켜보고, 정치인의 이율배반적인 위선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국가의 감사기능 강화와 사법부(검찰이 아닌 법원)의 독립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법부가 외풍에 자주 흔들리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특히 사법부의 독립성을 높여 판사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사법부의 내부 상호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독립적인 판단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병진 교수= △현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 학사 및 석사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 정치학 박사 △한국연구재단 '독재의 권력투쟁에 대한 비교연구' 책임연구원(단독)▶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리 정치무대가 길거리로 옮겨졌다. 현 정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정치적 현실주의의 고전인 '절반의 인민주권'(저자 샤츠슈나이더)에서는 민주정치의 본질을 '길거리 싸움'으로 규정한다. 인간이 불구경 외 좋아하는 구경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바로 싸움구경이다. 길거리는 관찰 가능한 장소다. 거기서 싸움 나면 모두가 주목하게 된다. 싸움이 없으면 주목도 없다. 모두가 주목하고 있으니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게를 갖는다. 각자의 이해와 본심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의도적이든 실수든 본심이 드러나면 모두가 삽시간에 알아채고 여론이 뒤바뀐다. 지금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여론이 그렇다."
▶계엄 사태는 정쟁의 대상이 아닌 듯한데 이를 바라보는 정당 간 시각은 사뭇 다르다. "지금 정국이 요동치는 모습을 보면 정치에서 객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정치적 사건은 복합적이고 애매모호하다. 예를 들면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한쪽은 도발이라 하고 다른 한쪽은 평화공세라 주장한다. 전선이 어디에서 그어지는가에 따라 적(敵)과 아(我)가 새롭게 구분된다. 이번 계엄사태를 놓고 벌어지는 정치세력 간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물론 국가엘리트, 언론, 심지어 주위 사람들까지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모두에게 드러내는 시간이 되고 있다. 새로운 대합의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혼란스럽게 갖고 있는 셈이다."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혹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양당제와 극화(Polarization·두 개의 상반된 입장으로 명확히 나뉘는 상태)로 인해 지금 한국정치는 전형적인 일회성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놓여 있다. 특히 극화는 자기 편의 정치인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소속집단 구성원의 의지 표현이다. 이 경우 정치가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임에도 무서울 게 없다. 마음대로 행동한다. 반칙에 대한 처벌이 사라지면서 양당제는 일회성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변질된다. 기만의 권모술수에 거리낌이 없어진다. 협력이 양측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선택을 함으로써 결국 양측에게 모두 나쁜 결과를 야기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나타난 한국정치의 모습이다. 당연히 여야 간 불소통이고 소통을 한다 해도 의미를 잃어버린다. 언제라도 약속을 파기하는 쪽이 결정적 승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당제와 죄수의 딜레마를 이렇게 연결하니 매우 흥미롭다. "그런가. 정치·경제학자들이 밝히고 있듯이 일회성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은 불가능하다. 공동체에 해를 끼치더라도 당장의 승리를 위해 거짓을 동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협치보다 신사협정을 어기고 권모술수로 당장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의 이익이 막대하다는 의미다. 거짓 선동과 내로남불은 정치 불신을 부르는 것은 물론 나라 경제의 어려움, 국가 기상의 꺽임 등 공동체 전체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눈앞의 정치적 이익이 너무나 크다. (정치의) 극화는 시민 일부가 정치 싸움에 선수로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자의 선의는 정치적 이익 앞에 무기력하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과 각자도생이라는 기이한 모순이 공존한다. 무기가 되어버린 도덕과 기회주의에 대한 칭송이 병존한다."
▶양당제하에서는 여야 간 소통이 무의미하다는 얘기인가. "양당제와 극화 상태에서는 내로남불을 이길 '정의의 연합'이 (원천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렵다. 한쪽이 작정하고 똘똘 뭉쳐 비이불주(比而不周·두루 화합하지 않고 당파를 지음)하면 다른 쪽에선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뭉치지 못하면 패배다. 여기서 점잖은 쪽은 패배한다. 정치에서 패배는 시장에서의 패배와 달리 재기불능에 빠진다. 다시 말해 일회성 죄수의 딜레마 같은 양당 싸움에서 소통은 의미가 없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자연스러운 협치'를 믿지 않는다. 결국 신사협정이 어려운 작금의 정치 상황에서 방어하는 쪽은 상대의 선의에 기대지 말고 투쟁력을 높여 힘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세력의 균형을 맞출 때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정의의 연합은 뭔가. 좀 생소하다. "(과거) 지역주의시대와 비교하면 양당제의 문제가 분명하게 보인다. 어쩌면 지역주의라는 비이념적 갈등으로 갈라져 싸운 그 시대가 훨씬 더 정의에 민감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1990년대 중후반 국민회의·한나라당·자민련 3당 체제가 형성됐다. 셋으로 다소나마 균등하게 배분된 역학관계에서는 어느 한쪽도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적 경쟁의 부산물로 정의와 법치가 생긴다. 힘센 한쪽을 상대하기 위해 나머지 둘이 정의의 이름으로 뭉치게 된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 잘못을 저지른 대통령의 오른팔이나 왼팔은 바로 내쳐졌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지만이 정의라는 이름의 정치연합이 형성되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탐하고 정의롭지 않은 힘센 집권세력도 정의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양당제 구조에서는 오로지 힘만 있으면 상대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관심도는 확실히 떨어진다."
▶그럼 양당제하에서는 어떻게 정의 실현이 가능한가 . "미국 헌법 정신을 보자. 힘은 힘으로만 제어가 되고 정의는 힘에 의한 정의만이 가능하다. 힘 있는 자에게 선의를 부탁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쪽에 힘이 있으면 반대쪽도 그만큼의 힘을 가져 세력균형이 이루어질 때 정의로운 사회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일방의 일방적인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 결국 힘의 균형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협치로 갈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압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인 게임'으로 가게 되고,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되는 거다. 지금 여야 간 게임에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는 매우 위험하다. 갈등 없이 어떤 행위자의 선의가 세상을 좋게 만든 적은 없다.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 정의롭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야 한다. 그것은 힘과 힘의 대결 속에서 가능하다. 일시적으로 힘과 힘의 대결이 굉장히 파괴적인 양상을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은 세력 균형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좀 더 공동체에 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호적 관계가 이뤄진다. 다시 말하지만 한 행위자가 나쁜 짓을 했을 때 그것을 처벌할 능력을 상대가 갖고 있어야만 서로가 착한 일을 하는 거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오히려 5년 단임제가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에서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한다. 5년마다 정권교체(같은 당으로 넘어가도 결국 핵심 엘리트의 대부분이 교체)가 되면서 서로가 법의 이름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자연스럽게 법치가 진전되었다고 본다. 대통령제 틀 속에서 권력 분산을 높이는 부분적 제도 개혁에 찬성한다. 이로써 철학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확실성과 결과의 불확실성인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본다."
▶외교학을 전공한 학자의 입장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대외 노선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과연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가 기준이 될 것이다. 우파는 친미 노선, 좌파는 중립 노선이다. 양측이 논쟁을 거쳐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대외 노선을 놓고 내부적으로 싸움이 나는 곳은 없다. 이 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가 북한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 대항력과 억지력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를 두고 왜 논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념과 사상을 떠나 북한에 대해 경계를 늦춰서 안 된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맞붙어 있는 상태에서 우리만 중립을 취하겠다는 건 서로 많은 고민과 논쟁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북한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명확히 짚어봐야 한다."
▶정치불신 현상에 대한 원인과 해법은."정치불신도 지금의 극화와 양당제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엔트로피처럼 정치불신은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건으로 결국 발생한다. 우리의 엄청난 노력으로 일시적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금 불신이 창궐할 것이다. 특히 SNS시대에 사실과 논리가 무시되고 가짜뉴스로 선동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정치불신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차라리 과도한 충성보다는 적당한 불신과 거리두기는 나쁘지 않다. 정치는 다소 후기인상파의 그림처럼 감상할 필요가 있다."
▶'댓글 정치' 'SNS 정치'는 무시 못 할 요소가 됐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압력, 다시 말해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의사·판단·정책·의견을 만드는 데 있어 독립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건 심리학이나 사회학에서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야기다. SNS 자체는 굉장히 위험한 장난감일 수 있다. 비교정치학에서는 일부 국가들이 독재화하는 과정 중 변수로 SNS를 지목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들이 두드러진다. 체코·헝가리 등 동유럽 일부 국가에서 권위주의 정권 출현에 SNS의 부정적 영향이 컸다는 평가가 있다. 문제의 해결사 역할보다는 더 어렵고 꼬이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SNS 공간에서 마이너스 1 더하기 플러스 1(-1+1=)은 0이 아니다. 도리어 마이너스 2가 되고 플러스 2가 돼 버린다. 더 어긋날 뿐 서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정답을 찾아가지 않는 곳이 SNS 공간이다. SNS에 따른 위험성을 인지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정치부재의 시대다. 정치철학의 빈곤 때문은 아닌가. "당파성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사실'을 '정의감'보다 앞세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의롭다는 감정에 빠져 사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이 빠진 정의감은 독선을 낳는다. 결국 권력에 대한 유혹이 강한 현실정치에서 당위를 주창하는 것은 소용없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 헌법 논쟁에서 보듯 힘은 힘으로 제어돼야 한다. 권력 분산만이 법치의 기초다. 정의롭지 않아도 정의롭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때 사회는 안전해진다. 상대의 선의에만 기대면 패배하고 사회는 타락하고 소수의 엘리트가 마음대로 하는 나라가 된다."
▶한국형 정치철학이 자리잡기 위해 해결해야 할 정치문화적 장애물이 있다면. "무엇보다 내로남불이다.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화이부동'이라 했다. 참으로 어려운 행동지침이다. 보편적 원칙을 이야기 하다가도 내편이 잘못하면 일단 감싸고 본다. 이러한 행위는 신교적 배경을 지닌 서유럽과 북미 등을 제외한 비서구권의 보편적 현상이다. 내로남불은 보편적 원칙을 사랑하는 마음의 방과 동지에 대한 무한 사랑의 방이 따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수밖에 없다.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 심리'를 되새기면서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쉼 없이 내로남불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와 그들의 구분이 분명한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특히 그렇다."(귀스타브 르 봉 '군중심리'의 핵심= 군중 속의 개인과 단독의 개인은 완전히 다른 특성을 띤다. 단독의 개인은 개성을 유지하지만 군중이 된 개인의 개성은 소멸되고 소속된 인간집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한 군중의 특성은 쉽게 흥분하고 무책임해지며 자주 난폭해질 수 있다. 현명한 엘리트들조차 집단을 이루면 군중의 부정적인 특성이 드러난다.)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국가는 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사법부의 독립성을 높여 판사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사법부의 내부 상호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독립적인 판단이 가능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리인이다. 대리인은 잘못했을 때 국민의 처벌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현재 국민의 절반이 우리 편의 정치인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은 두려울 게 없다. 내로남불의 정치인은 스스로의 잘못을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시민이 바른 눈으로 지켜보고, 정치인의 이율배반적인 위선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김종윤기자 bell08@yeongnam.com계명대 한병진 교수가 지속되는 여·야 간 불소통 문제의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