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총 맞은 것처럼

  • 변종현
  • |
  • 입력 2024-07-29  |  수정 2024-09-18 16:22  |  발행일 2024-07-29 제23면

[월요칼럼] 총 맞은 것처럼
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

2008년 늦가을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됐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감성의 끝판왕답게 백지영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은 애절한 멜로디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가사 한 토막 때문에 듣는 내내 불편했다. 총 맞은 것처럼~. 비유가 현실감을 잃고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의아스러웠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이는 훗날 BTS를 키워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이다. 그는 총 맞을 일 거의 없는 이 땅의 청춘남녀에게 금기어로 취급받던 '총'을 처음으로 대놓고 끄집어냈다.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아픔을 현실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총상(銃傷)에 비유했으니 난감할 법한데 노래는 빅히트를 쳤다. 좋은 '악기'를 가진 가수의 절대적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구멍 난 가슴에 추억이 흘러내린다는 감성에 대중이 이토록 잘 올라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대중은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다.

인간사에서 총 맞은 것 같은 일들이 어찌 남녀 간 이별에만 국한되겠는가. 최근 경북 봉화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든 음료를 먹고 5명의 어르신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농약사이다, 농약소주, 농약고등어탕 등 유사 사고가 하필 경북에서 잇따르고 있다는 것 또한 충격적이다. 증오의 감정으로 특정한 누군가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불신의 늪에 빠뜨렸다. 이들 지역 주민의 가슴에도 총 맞은 것처럼 큰 구멍이 났을 듯하다.

며칠 전 미국에서는 대선 후보로 나선 트럼프가 실제 총을 맞는 일이 발생했다. 총알이 아니라 파편을 맞았다는 논란이 있지만 역대 미 대통령으로는 열한 번째 암살 표적(4명은 사망)이 됐다. 당시 카메라에 잡힌 총격 장면은 영화처럼 극적이다. 정치인 암살 시도는 남의 나라 일만도 아니다. 지난 1월 부산을 방문 중이던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 흉기 테러 장면은 아찔하고 끔찍했다. 잔인하기로 따지면 총격(銃擊)을 뛰어넘는 충격(衝擊)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대립이 일상화한 사회에 살고 있다. 분열은 심화되고 그 양상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남과 북이 그렇고, 수도권과 지방이 그렇다. 보수와 진보, 여와 야, 노(勞)와 사(使), 남과 여, 의(醫)와 정(政)이 또 그러하다. 집에서 금붕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김민기가 읊은 '작은 연못'의 비극이 단순한 비유나 과장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는 이유를. 서로 싸워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고,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결국 연못 속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공존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 총 맞은 것처럼 정신없는 상황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벌어질지 두렵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집권세력은 오히려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다. 대통령 부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댓글부대 운영설, 공소취하 청탁설 등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터져 나온 내부 폭로는 후폭풍이 우려된다. 채 상병 특검법, 방통위원장 후보자 법카 논란 등 현재 모든 악재가 집권세력으로 향하고 있다. 이 정도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힘들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중앙이 아닌 지방, 즉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적극 나서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총 맞는 일 없도록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

기자 이미지

변종현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