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스토리텔링 대가야의 魂 가얏고 .2] 농현으로 우여곡절을 풀어내다

  • 입력 2011-10-20  |  수정 2025-10-14 09:55  |  발행일 2011-10-20 제9면
대가야의 魂 가얏고

위는 하늘처럼 둥글게, 아래는 땅처럼 편편하게…

열두줄 현은 계절을, 3촌은 天地人을 상징하리
20111020
왕의 권유로 우륵은 몇해 전부터 고를 제작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고의 재료로 오동나무를 선택하기까지 시행착오도 무수히 많았다. 나무를 켜서 풍우 속에 말리는 일도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진은 고령 우륵박물관 가야금공방(우륵국악기연구원)에서 가야금 장인 김동환씨가 자연상태로 건조중인 오동나무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영남일보 DB>

아침에 궁성에 들었다가, 오후 늦게야 공방으로 돌아온다. 공방은 궁성의 서북편, 주산에서 뻗어내려온 능선의 끝자락을 돌아가면 저만치 보인다. 개울 건너 잠시 걸으면 닿는다. 징검다리를 건넌다. 우륵은 궁성 쪽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서있다.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메고 있는 고 때문일까? 그보다는 가실왕의 말이 자꾸 떠올라 그의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이리라.

“이제 거의 되어가는구먼.” 왕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미흡한 상태로도 꾸준히 연주를 했을 테지. 해보니 어때?”

“소리가 맑고, 우리 몸에도 잘 맞는 듯합니다. 완성되면 아마도 더 소리가 좋을 겁니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네.” 왕은 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주게.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겠지?”

왕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넌지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게다.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그 웃음의 의미는 무겁고, 엄한 느낌이 들었다.

공방 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새로운 악기인 고에 대한 기대로 흥분이 되면서 동시에 새 악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왕의 처지를 생각한다. 왕은 내년 가을 제의 때 새로 만든 고를 선보이려는 듯하다. 그러려면 새 악기에 맞는 곡이 그때까지 완성되어 연주의 연습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우륵이 해내야 할 일이다.

왕은 나라의 통치가 미치는 각 지역의 민심을 달래고 고르며, 통합하고 융합할 소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마도 제의 때는 각 지역의 지도자들이 참석할 터이니, 그 자리에서 각 지역의 음률을 십분 발휘하여 각 지역이 대가야의 영토 안에 고루 가지런히 존재함을 드러내려는 게다. 그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작금에 들어 나라 일들이 자꾸 틀어지고 꼬이는 게 예삿일이 아님을 알기에 왕은 무엇보다 각 지역민의 마음을 한 데 묶는 일이 급선무라 여겨왔다.

특히 신라와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나라의 민심도 신라쪽이니 백제쪽이니 하고 갈라져, 각파가 서로 질시하고 시기하며 암암리에 모략으로 다투는 게 요즘 들어 부쩍 심해졌다. 가야 제국들도 백제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대가야에 각을 세우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에 따라 신라와 백제의 첩자들도 부쩍 많이 암약하고, 따라서 민심도 흉흉해지고 있다. 가실왕은 이런 정황을 타개할 방안의 하나로 유교를 수용, 부족의 오랜 습속을 개선하여 중앙집권의 틀을 세우고, 음악으로 ‘나라의 음률을 고르는 일’을 대세로 삼았다. 새로운 악기로 각 지역의 노래를 실어내어 그야말로 예악을 순조롭게 하려는 건 그 때문이었다. 대단한 개혁의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궁중 악사인 우륵에게 맡겨진 게다.

왕의 권유로 고를 만들어온 지 몇 해나 됐는지, 되돌아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쟁을 해체하여 재조립하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오동나무를 선택하기까지 재료에 대한 시행착오도 무수히 많았다. 나무를 켜서 풍우 속에 말리는 일도 예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가야산이 깊어 그 기슭에 좋은 오동나무가 많았다. 왕은 궁성 가까이 뽕나무를 크게 심고, 양잠 마을을 조성하여 고의 줄로 사용할 명주실을 매년 충분하게 뽑아냈다. 고는 휴대하기 쉬우면서도 의미가 커야 했다. 그리하여 ‘위는 하늘처럼 둥글게, 아래는 땅처럼 편편하게 하고, 그 속을 파내어 하늘과 땅 사이처럼 비게 하며, 현을 받치는 기둥은 3촌으로 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과 인간을 상징하며, 현의 수는 일 년 열두 달 사계절을 상징하여 열 두 줄로 하는’ 기준이 만들어졌다.

현을 만드는 데는 명주를 여러 가닥으로 꼬는 기술이 특히 중요했다. 음의 높낮이를 조정하기 위해 현의 굵기를 달리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현은 양의 뿔처럼 생긴 나무장식에 건다. 그런 상태로 계속해서 소리를 검토하고, 나름의 악보를 만들어가면서 작곡도 해왔다. 이제 거의 완성이 된 상태라 옻칠과 장식을 소박한 가운데 화려한 느낌이 들게 꾸미는 일이 남아있는 정도가 됐다. 아마 한두 달 안에 왕 앞에서 연주를 해야할 것이다. 그런 다음 바로 각 지역의 음악을 채집하여 악기에 맞게 작곡을 하는 일로 바쁘리라.

공방에 들어서자 보희가 뛰어와 고를 받아든다.

“이문(泥文)은 안에 있는가?”

“잠시 들에 나갔습니다.”

“곧 오겠지?”

“네.”

“저녁 연주를 차비하렴.”

“네.’

연주는 늦은 저녁에 이루어진다.

오늘은 우륵과 제자 이문, 그리고 보희 셋이서 합주를 해보기로 한다. 전체적 흐름은 우륵이 잡아나가고, 이문은 각 주제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보희는 섬세한 감성을 덧보태는 식이다.

고는 거의 완성된 것 가운데서 골라 각자 조율한다. 우륵은 첫 음을 아주 느리게 시작, 차츰 소리 하나 하나를 점고하듯 정성을 다해 풀어낸다. 그동안 고의 연주를 수도 없이 연습해서 그의 소리는 아주 익어있다. 느리지만, 농현의 구비는 절절한 우여곡절을 갖추면서 굽이친다. 그 우여곡절을 풀어내는 우륵의 자세는 마치 음의 맛을 탐하는 미식가처럼 진지하다. 이어서 이문의 소리가 그 소리에 섞여들어 밀고 당기고 조이고 푼다. 소리의 빛깔이 갑자기 화려해진다. 여기에 보희의 높은 소리가 두드러지는 맑은 음색으로 전체의 소리에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차츰 빠르게 휘몰아 간다.

우륵은 보희가 내는 섬세한 소리를 하나하나 음미한다. 참으로 미성이다. 어쩌면 소리마저 생김새와 저리 닮았을까?

3년 전인가, 판수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왔을 때의 불안감은 이제 가신 듯하다. 판수는 그녀의 나이가 열다섯이라며, “갈 데 없는 아이지만, 재주 하나는 비상하네. 잘 거두면 물건이 될 것이네”하고 우륵에게 소개했다. 이나라 저나라 가릴 것 없이 큰 강 포구를 떠돌아다니다가, 이웃 나라의 부자가 죽을 때 자칫 감언이설에 속아 순장이 될 뻔한 걸 판수가 어렵게 구한 모양이다. 순장은 이미 나라에서 금하고 있지만, 아직 일부의 악습은 남아 있었다. 연고가 없는 그녀야말로 귀신도 모르게 주인과 함께 묻어버려도 후환이 없을 거라 여겨 교묘하게 엮은 것이리라.

판수는 그녀에게 젓대와 장고 등을 가르쳤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였다. 몇 년이 지나자 그녀는 큰 강의 포구에서 제법 이름이 났다. 판수는 이에 욕심을 내어 아이가 새로 만드는 고를 배워 연주회를 제법 그럴 듯하게 키울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우륵에게 데려온 것이다. 그녀는 이곳 공방의 한 방에서 기숙하면서 밥도 짓고 빨래도 하면서 고를 배웠다. 때로는 쟁과 젓대도 가르쳤다. 고를 가르치는 건 주로 이문이 맡았는데, 악바리같이 배우려는 그녀를 달래고 채근하느라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같은 곡을 두 번이나 색깔을 달리하여 해보고는 연주는 끝이 난다.

“어떤가?” 우륵은 이문에게 묻는다.

“소리가 아주 청아하고 부드러워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다.”

“그래, 자네의 소리는 특히 삼라만상의 표정을 드러내는데 재주가 있는 듯하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제, 할 일이 많아질 걸세.”

우륵은 왕의 계획을 간략하게 말해준다.

“곧 어전에서 연주를 하게 될 것이니, 매일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게나. 그 다음에는 각 지역의 노래들을 채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곡을 써내는 일이 힘든 일이 될 것이네. 자네의 할 일이 특히 많아질 걸세. 악기 제작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것도 큰일일세.”

우륵은 보희에게도 당부를 한다.

“어전 연주에, 너도 갈 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네, 스승님.”

우륵은 보희의 얼굴이 상기되는 걸 본다. 스승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에 울컥해지는 마음이 그렇게 드러난 것이리라.

글=이하석

<시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20111020
가실왕은 지역 민심을 달래고 융합할 소리를 간절히 바랐다. 음악으로 ‘나라의 평안’을 되찾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한 왕의 개혁에 우륵이 막중한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우륵은 몇해 전부터 고를 제작해 왔다. <영남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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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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