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육개장 <하> - 본고장 대구의 어제와 오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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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2-09   |  발행일 2011-12-09 제38면   |  수정 2011-12-09
육개장·따로국밥 등 명칭 혼재…옛날처럼 ‘대구탕’ 으로 부르자
사골·우거지 유무 따라 국일·벙글·대덕·옛집 등 대구엔 6개 유형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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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와 대파, 무, 사태살, 사골육수 등으로 만든 국일식당식 육개장.
‘설렁탕, 곰탕, 갈비탕, 선지국, 우거지해장국, 쇠고기국, 따로국밥,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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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머리 삶은 육수에 대파·무만 넣고 끓여 심플한 온천골식 육개장.
쇠고기로 끓일 수 있는 탕 종류는 의외로 많다. 분류도 참으로 어렵다. 육개장에 관한한 전국에 다양한 버전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대구의 따로국밥. 제주도에서는 육개장을 쇠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로 끓인다. 경남 의령 종로식당의 경우 쇠고기국이 대구와 엄청나게 다르다. 양지, 갈비살, 뱃살 등을 삶아 국물을 만들고 콩나물과 고명으로 쫑쫑 썬 파를 올려놓는다. 꼭 ‘쇠고기콩나물국’ 같다. 꼭 묵채가 들어간 경주 팔우정해장국을 닮았다.

‘육개장=따로국밥?’

이 두가지 국이 대구에선 혼재된다. 헷갈린다. 관련 식당주조차 제대로 감을 못잡는다. 두 명칭을 어떻게 절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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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와 파, 사태살, 토란대 등이 어우러진 옛집육개장. 사골육수를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서울 조리사들은 육개장과 따로국밥을 완전히 다르게 본다. 육개장은 사태살 등을 삶아 결대로 찢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고사리, 토란대 등 갖은 재료를 참기름 등으로 무친 뒤 국을 끓인다. 그런데 대구 따로국밥은 고기 찢는 과정이 없다.

그래서 따로국밥을 ‘대구 육개장’으로 보려고 해도 뭔가 1% 부족하다. 숙주나물 등이 들어간 대구 가정식 쇠고기국은 따로국밥과 또 다른 스타일. 한동안 대구 잔칫집에선 쇠고기 육개장보다 돼지로 만든 육개장이 더 보편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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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와 우거지가 축이 된 우거지 해장국 스타일의 대덕식당 육개장.

대구를 육개장의 도시로 띄우기 전에 ‘명칭 표준화’부터 고민해 보자. 육개장과 따로국밥을 탕반으로 통합하면 더 다양한 지역의 국과 탕을 아우를 수 있다. 그래서‘대구탕반(大邱湯飯)’을 제안해 본다. 대구탕(大邱湯)도 무난할 것 같다.

사골·우거지 유무 따라
국일·벙글·대덕·옛집 등
대구엔 6개 유형 존재

서울식 육개장과 달리
붉고 걸쭉한 고추기름 넣어
맵고 얼큰한 맛이 특징
혹한·혹서의 기후 때문인 듯

사라진 ‘다끼파’ 되살려
옛맛 복원 필요성 제기


◆ 대구는 육개장의 발상지

상당수 시민은 육개장의 발상지를 서울로 잘못 알고 있다.

아니다. 대구가 본고장이다. 일제 강점기때 육개장은 대구에선 ‘대구탕(大邱湯)’, 서울에선 육개장으로 각각 불렸다. 대구탕은 맵고 얼큰하지만 서울 육개장은 매운 것과 안 매운 것, 두 종류가 있었다. 경상도쪽 사람들은 얼큰한 스타일이다. 서울 토박이들은 얼큰한 걸 싫어한다.

얼큰하고 다양한 버전의 쇠고기국을 가진 도시는 전국에서 대구가 유일하다. 대구에선 느끼하고 기름기가 많은 설렁탕과 곰탕이 인기가 없다. 반대로 서울에선 육개장보다 설렁탕과 곰탕이 대세다.

1929년 종합잡지 ‘별건곤’도 대구가 육개장의 고장임을 알려줬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이란 책에서도 대구의 육개장을 대구의 명물로 소개한 바 있다. 한국요리문화사의 초석을 세운 이성우 교수는 물론, 소설가 김동리 등 명사들도 대구탕을 한국의 대표적 육개장으로 인정했다.

대구 육개장의 특징 중 하나는 붉고 걸쭉한 고추기름. 국이 끓을 때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녹인 쇠기름으로 만든 고추기름을 집어넣는다.

그 시절 주모들은 고추기름을 잘 컨트롤했다. 긴 국자로 알맞게 기술적으로 분배해 뚝배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대구는 매운 육개장이 태동할 수 있는 기후조건이다. 생리적으로 매운 육개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삼복에는 엄청나게 땀을 흘리게 하고 동지섣달에는 사람을 동태로 만들 정도의 혹한이다. 고춧가루에 들어있는 캡사이신 성분이 여름에는 땀을 배출해주며, 겨울에는 찬 몸을 덥혀주는 역할을 한다.

매운 육개장이 처음 등장한 건 언제일까. 고추의 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601년 나온 풍물지리서인‘지봉유설’에 고추 기록이 처음 나온다. 그해 대구에 경상감영이 선다. 그 정문격인 영남제일관(옛 대남한의원 네거리) 앞 거리에서 본격적인 대구식 육개장 인프라가 형성된다.

고운 고춧가루는 조선초에는 볼 수 없었다. 분말처럼 만들 수 있는 고성능 고추빻는 기계도 일본강점기때 비로소 가동된다. 그 전에는 고추를 디딜방아나 돌확에 넣고 빻아 사용했다. 고추 입자가 굵어 제대로 된 고추기름이 나오지 않았다.

추측건대 한말 때만 해도 대구읍성 근처 육개장은 지금만큼 붉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일식당 전 대구의 대표적 해장국집이었던 옛 만경관 근처의 청도집(1942년 오픈)의 경우도 고춧가루가 거의 배제된 우거지해장국 스타일이었다.

우리가 대구 육개장을 새롭게 부각시키려면 일단 72년 경지정리로 인해 사라진 ‘다끼파’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이 파는 화원유원지 건너편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모래사장에서 집단으로 재배됐다. 올해 창업 175년을 맞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 종자회사인 ‘다끼이’가 일제 강점기 때 자기 종자를 국내에 퍼트린 것으로 보인다.

다끼파는 크지가 않다. 요즘 개량종보다 반 정도 밖에 안 된다. 잎파가 아니고 뿌리파 계열이다. 육개장이 맛있으려면 잎보다 뿌리가 제격이다. 다끼파는 자줏빛이 감돌고, 양파 못지 않게 매워 겨울 제철에 육개장 맛을 더욱 진국으로 만들었다. 물론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감칠 맛이 풍성했다.

◆ 따로국밥 브랜드화

97년 대구시가 ‘따로국밥 브랜드 만들기’에 나선다. 그 일환으로 국일, 벙글벙글, 대덕, 교동, 대구 등이 대표 따로국밥집으로 지정된다.

그러나 외지인이 ‘따로국밥이 뭐냐’고 물으면 우리쪽에서는 그냥 ‘국 따로, 밥 따로라서 따로국밥이 되었다’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설명에 머문다. 사실상 지역민조차 그 정체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뭔가 거창한 유래가 있겠지 하고 잔뜩 기대한 외지인들은 실망한다.

2005년 4월 발족된 대경음식포럼. 처음으로 따로국밥 원형 찾기에 나선다. 이보다 앞서 그해 1월 따로국밥 전문가인 구동운·최수학씨를 초청해 동대구역 근처에 있는 <주>신천에서 시연·시식회를 가졌다. 두 사람은 2005년 대구음식박람회 때도 따로국밥을 만들었다. 사골, 잡뼈, 청장, 콩팥기름, 고춧가루, 소피, 대파, 무가 주재료였다.

◆ 다양한 버전의 대구의 육개장

‘양지머리와 사태를 소양 등과 함께 푹 삶아서 건져내고 국물은 식혀서 기름을 걷어낸다. 건져낸 고기는 결대로 찢거나 칼로 썰고 소양도 저민다. 이 고기와 소양을 진간장, 다진파와 마늘, 참기름, 깨소금,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한다. 한편 고춧가루에 참기름을 끓여 넣어서 잘 개어놓고 파를 데쳐 놓는다. 이들을 끓어오르는 장국에 넣어 한소끔 끓여낸다.’

1985년에 나온 여성지 ‘주부생활’ 에 소개된 육개장 레시피다. 사실상 ‘서울식 육개장’이다.

흥미로운 건 서울 강남터미널과 서울역 앞 식당가의 육개장은 이것과 좀 다르다. 당면, 계란, 후춧가루 등이 들어간다. 지방 손님을 겨냥해 주인들이 마구잡이로 변형시킨 것이다.

이와는 달리 대구에는 현재 모두 6개 버전(대덕식당·국일식당·옛집육개장·진골목·벙글벙글·온천골식당)의 쇠고기국이 있다. 사골 육수와 우거지의 유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일식당= 국일식당은 올해로 65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대구 따로국밥의 종가. 그런데 대덕식당과는 버전이 다르다. 공통적으로 소피와 사골육수가 들어가지만 국일은 우거지 대신 대파와 무만 넣는다. 정통 육개장에는 사골육수가 들어가지 않는데 사골이 들어갔다는 건 일단 장터국밥의 전통이 스며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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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로부터 대구 육개장의 명맥을 이어받은 옛집육개장의 주인 김광자씨. 이춘호기자
△옛집육개장= 1대 주인 차천수 할매에서 2대 주인 김광자, 3대 주인 박우덕씨로 가업이 전승되고 있다. 시장북로에 있는 꼭 움집 같은 이집 육개장 레시피는 초기와 현재 버전이 좀 다르다. 60년대초 문을 열었는데 처음에는 칼국수도 팔다가 나중에 육개장 전문점으로 성장한다. 초창기에는 허파, 곱창 등 온갖 소 내장 등을 푸짐하게 넣었다. 하지만 소피는 국이 탁해진다고 해서 넣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기름을 듬뿍 담았지만 이젠 건강 때문에 기름을 많이 걷어낸다. 대덕·국일과 달리 사골 육수는 사용하지 않는다. 사태살을 1시간 삶은 물에 대파·토란대·무·고춧가루를 넣고 1시간 끓여낸다. 특이하게 조선간장을 종지에 담아낸다. 60년대 한옥 분위기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벙글벙글= 40년 역사다. 국일식당 스타일에 선지만 제거한 버전이다. 사골육수에 무와 대파를 넣고(무와 대파 비율은 1대 2), 30분 정도 쇠기름을 볶아 고추기름을 만들어 국에 넣어 양지머리와 함께 끓여낸다. 여름에는 재료가 질겨 20여분, 겨울은 무와 파가 부드러워 10분 정도만 끓인다.

△대덕식당= 올해 4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예전 청도집의 우거지해장국 스타일을 이어받고 있다. 엄격히 말해 육개장과는 거리가 있다. 우거지선지해장국이다. 우거지가 주재료로 들어가고 거기에 사골 육수, 대파, 소피, 미량의 고추기름이 들어간다. 주방에 대형 가마솥이 여러 개가 있다. 완성된 선지해장국이 담긴 솥, 우거지만 삶는 솥, 사골 육수 고는 솥, 육개장용 고추기름이 담긴 솥 등이다. 이 해장국은 서울의 청진옥 해장국과 비슷하지만 소양, 콩나물 등이 들어가는 게 다르다. 이집은 우거지국이 많았던 그 시절 주막 국밥, 장터 소머리 국밥과 심지어 설렁탕·곰탕의 전통, 대파가 들어간 건 육개장 전통까지 끌어안았다.

△진골목식당= 80년대초에 생긴 종로 진골목 육개장은 사골육수를 베이스로 해서 대파와 토란대, 고기는 사태와 양지머리만으로 국을 끓인다. 아주 걸쭉한 게 특징이다. 소면을 넣은 육국수도 개발했다.

△온천골=현재 지역에선 가장 맑은 육개장이다. 기름기가 거의 감지되지 않아 ‘경상도 양반이 먹던 쇠고기국’으로도 불린다. 옛집육개장과 비슷한데 여기선 사태 대신 양지머리를 사용한다. 토란대는 빼고 무와 대파만 갖고 30~40분정도 초탕을 끓여낸다. 처음부터 너무 푹 끓이면 재료가 흐물해져 식감을 망치기 때문에 초탕 때는 75% 정도만 살짝 끓이고 주문받으면 그때 재탕해서 완숙시키는 게 특징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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