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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구식씨가 12일 영양군 일월면 도곡리 자신의 농장에서 항암고추를 정리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
일월산 정기를 받은 영양군 일월면 도곡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장군천이 마을 앞을 지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조지훈 시인의 생가를 지나 봉화 방향으로 4㎞ 지점에 있는 이 마을에서는 귀농인 정구식씨(51)가 지난해 국내 최초로 항암고추 개발에 성공했다. 이 때문에 정씨는 “성공한 귀농인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때가 없었다”고 말했다.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가난하고 못사는 농촌이 싫었다.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농사일에 잔뼈가 굵어갈 무렵 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뒤 다시 농사일을 도왔다. 그러나 농촌의 미래가 어두웠고 고민스러웠기 때문에 돈을 벌어 부모님을 잘 모시겠다고 다짐한 채 서울올림픽으로 전국이 떠들썩할 즈음 고향을 떠났다.
타향살이의 첫 무대는 대구였다. 길거리에서 인력 모집요강을 보고 찾은 곳이 염색공장이었고, 이듬해 금속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도시생활에 적응할 무렵 부인과 결혼해 자식 셋을 둔 가장이 됐다. 조경회사와 사료회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지게차 운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생활을 할수록 고향의 흙냄새가 그립고, 부모님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결국, 돈을 왕창 벌어 금의환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1999년 가족과 함께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한 정씨는 아버지가 경작하는 토지와 문중땅 1만2천㎡를 일궈 고추와 수박을 심고, 약초도 재배했다. 고생이 뒤따랐지만 연간 수천만원의 수확으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면서 부모님을 공양하니 즐거웠다.
그러나 재래식 농업으로는 결코 부농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2008년 처음으로 영양군농업기술센터를 찾았다. 항암고추는 그가 2009년 농업기술센터의 지도를 받아 첫번째 거둔 성과다. 항암고추 생산은 영양군농업기술센터가 농촌진흥청의 지역농업특성화사업으로 추진할 만큼 비중있는 사업이어서 담당지도사가 임명됐으며,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이 현지를 찾아 기술을 지원할 정도였다. 정씨도 이웃 주민들을 설득해 ‘일월산샘물내기작목반’을 조직하고, 항암고추 생산에 전념했다.
작목반원들은 지난해 4㏊에 항암고추를 심었다. 무공해 친환경농법은 각종 병해충으로 어려움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농약 한 병 사용하지 않은 채 항암고추 생산에 성공했다. 정씨는 “항암고추 재배는 일반고추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고추 씨앗을 베타글루칸 용액에 담가 싹을 틔우며, 싹을 포트에서 재배하거나 모종을 이식할 때도 베타글루칸 용액을 뿌려줘야 한다. 땅 속에는 원래 베타글루칸 성분이 있지만, 고추가 그것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항암고추는 일반 고추에서는 거의 검출되지 않는 항암물질인 베타글루칸이 g당 80mg씩 검출됐다. 베타글루칸이 인체 면역력과 항암능력을 높이고 혈당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지자, 작목반에서 생산된 항암고추는 전량 서울시내 백화점에 납품됐다. 특히 작목반원들이 생산한 고춧가루에는 비타민A·C와 캡사이신 함량이 많고, 매운맛과 단맛이 잘 조화돼 있었다. 껍질도 두껍고, 색도가 좋아 소비자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이같은 성과에 따라 영양군농업기술센터는 항암고추 재배면적을 올해 10만㎡로 늘리기로 하고, 농가에 기술을 지원할 방침이다.
정씨는 지난해 항암고추 생산에 힘입어 1억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렸다. 정씨는 “머지않은 장래에 항암고추가 명실상부한 한국 고추의 대표 브랜드가 되는 것은 물론, 세계 각국의 위생기준과 국제규격을 충족시키면서 세계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양=배운철기자baeuc@yeongnam.com
배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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