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3)'안동화련'의 신윤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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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4-20   |  발행일 2012-04-20 제42면   |  수정 2012-04-20
연·과채류·콩·찹쌀 직접농사…화학조미료 대신 산약초 효소액으로 양념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3)
음식만 만들면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안동화련 대표 신윤남씨. 남편과 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골프를 처음 시작하면 기적 같은 샷이 잦다. 대충 쳐도 홀인원 수준으로 잘 굴러간다. 하지만 갈수록 첩첩산중. 알수록 더 치기 어렵다. 요리도 마찬가지. 시작할 때는 지상 최고의 셰프가 된 것 같다. 단순한 것은 보이지 않고 복잡하고 실험적인 걸 즐긴다. 그래서 레시피도 아주 현란하다. ‘내가 이 정도’란 걸 보여주려는 것이다. 재료 선별과 관련, 뺄셈보다 덧셈에 익숙해진다. 육수를 만들 때도 듣도보도 못한 한약재를 마구 집어넣는다. 또 누가 ‘이게 좋다’ 하면 그걸 집어넣는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익악(多多益惡)’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요리 경력도 일천한데도 자기 색깔을 가진 셰프가 안동에 있다는 말을 듣고 만나봤다.

◆안동에 웬 연꽃?

2010년 12월29일.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마을 한 가운데 묘한 버전의 한정식 전문점 하나가 연꽃처럼 문을 연다. 상호도 남달랐다. 농촌진흥청과 안동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한 안동시의 농가맛집인 ‘안동화련(安東花蓮)’이었다. 다들 ‘안동에서 무슨 연꽃’이냐고 했지만, 주인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정갈하고 건강한 밥상을 빚자고 다짐한다. ‘부창부수(夫唱婦隨)’였다.

남편이 첫단추를 꿴다.

그는 1990년대초 유기농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때 그 바닥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농사와 식재료의 상관관계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아내 신윤남씨(45)는 남편 때문에 식당을 차렸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서울 모 전자회사의 해외영업부 사원. 고향이 안동이었던 부부에게는 서울이 매력없었다. 1997년 귀향한다. 식당 때문은 아니다. 그냥 부부 농사꾼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남안동 IC에서 의성 고운사 방면 일직중 근처에 자리한 이 마을은 타계한 동화작가인 권정생의 인기 소설 ‘몽실언니’의 주무대 중 하나. 근처 폐교된 일직남부초등은 현재 권정생문학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6년전 그 마을에 우연찮게 한 스님이 찾아와 신씨와 인연이 된다. 스님은 특히 연꽃에 대해 전문가였고 각종 야생초의 생리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그녀는 약골이었다. 몸도 차고 체중도 47~48㎏. 남편이 열나게 하는 부추와 현미효소액을 만들어 먹였다. 몸이 점차 나아졌다. 효소액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미나리도 키웠고, 과수원 잡초를 없애는 과정에서 크게 웃자라지 않는 금전초(긴병꽃풀)도 심는다. 이를 이용해 장아찌와 효소액도 만들었다. 다음에는 과일효소액에 도전. 산복숭아·사과·자두에 설탕을 1대 1 비율로 섞어 만들어 샐러드용으로 사용했다. 주위의 반응이 괜찮았다.

스님한테서 산야초 활용법과 사찰요리 등에 대해 배운다.

스님은 그냥 설탕이 완전 발효되지 않아 걸쭉한 상태의 정체불명 추출액을 효소액이라고 자랑하는데 기겁을 한다. 그녀가 공격적으로 효소액을 만드는 걸 경계한 것이다. 점차 뭐가 독이 되고 뭐가 약이 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 한번은 샐러드에 갓 따온 진달래꽃을 올렸다. 스님이 “진달래꽃 속의 수술을 제거했냐”고 물었다. “안 했다”고 하니 스님이 대뜸 “잘못하면 눈이 멀 수도 있다”면서 주의를 주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뭘 알아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지금도 야생초를 배우고 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사진을 찍고, 직접 연필로 스케치해둔다. 덕분에 여러 야생초를 알게 된다.

“매년 양력 3월30일에서 4월5일 사이의 87종 야생초 뿌리를 이용해 백야초 효소액을 만들었습니다. 5월에 냉장고를 꺼버렸어요. 7월이 되자 진액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부패하는 줄 알았는데 계속 둬봤어요. 이상하게 향은 더 진해지고 액은 더 맑아졌습니다. 재발효가 이뤄진 것 같았어요. 그게 식품영양학적으로 어떤 효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만 저희 부부가 6년째 상복한 결과 몸도 가볍고 피로도 빨리 풀리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 좋은거죠.”

현재 냉장고 안에는 6년된 백야초 효소액 뿐 아니라, 금전초·사포나리아(식용 알로에)·딸기·양파·사과·자두·오가피·오디·쇠비름·연꽃 효소액을 저장해 놓고 있다.


연밭 조성 100종 관리
“군자의 고장 안동과
잘 연결될 것 같아서
蓮 전문식당 차렸죠”

연잎밥은 세번 쪄내고
연저육찜·연계육찜은
꽃사과 등 섞은 액으로
졸여내 독특한 맛

동치미 같은 사과물김치
싱겁고 쓴 ‘파격적 맛’
주변 반대 무릅쓰고
제대로 된 음식 고집해

연잎버거·돈가스 등
실험적 음식 계속 개발



◆ 처녀 농군처럼 살아가는 신윤남 셰프

그녀의 웃는 모습은 연꽃 같다.

다소곳한 억양이다. 야생초처럼 단아하게 말한다. 꼭 명상가 같다. 연요리 전문 식당 오너셰프 자격이 있을 것 같다. 일단 기본 과일 및 채소류를 집 근처 밭에서 해결한다는 게 믿음직했다. 된장을 담그기 위한 콩은 물론, 찹쌀까지 직접 농사 짓는다. 가게 옆 정원에서는 샐러드용 채소가 자란다. 마당에 자두·매실·오가피·대추 등도 자란다.

하지만 모든 식재료를 자급자족할 수 없는 법. 맛간장·식용유·물엿·밀가루·파프리카 등은 안동 시내 가서 사 온다. 대신 화학조미료통은 없다. 6년여 노하우가 동원된 각종 산약초 효소액이 조미료와 양념 구실을 한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식당 전용 수천평 연밭에는 홍련, 백련 등 무려 100여종의 연꽃이 있다. 그게 있기 때문에 연을 이용한 각종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연잎차와 연비누도 만들었다.

연꽃도 함부로 채취하지 않는다. 하절기로 접어들어 꽃망울이 두 번째로 열리고 닫히는 순간 따 와, 연잎에 싸서 냉동고에 보관하면 된다. 연밭은 서울서 내려오던 때부터 조성했다. 항균 기능이 있는 연줄기는 사과과수원에 뿌려 천연 농약 구실을 하도록 했다.

“안동이 군자의 고장이잖아요. 군자와 연꽃이 연결될 것 같아 연음식 전문 식당을 열었어요.”

그녀의 하루 일과를 보면 애처로울 정도다. 식당을 열기 전 그녀는 남편과 함께 농사에 전념했다. 연밭은 물론, 논과 밭, 과수원 관리를 동시에 한다는 게 결코 녹록지 않았다.

“농사 참 어렵더군요. 풍년이면 가격이 흉년이고 가격이 좋으면 양이 흉년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일밖에 없는 일상이었어요. ‘도대체 사는 게 뭔지’란 넋두리를 자주 했어요. 이러다가 밭고랑에 고꾸라져 죽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작심한 게 식당이었습니다.”

◆ 안동화련 밥상 해부

연잎밥도 다른 데와 조금 다르게 만든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쪄낸다. 찹쌀이 약밥처럼 다 쪄졌을 때 소금물과 참기름을 적당한 비율로 뿌리는 게 요리의 포인트. 고명으로 팥·잣·연근·밤·은행알·호두·대추 등을 올린다. 연잎으로 감싸 다시 채반 위에서 찌기 위해 짚이나 실로 묶는다. 그래야 향기가 더해지고 찹쌀의 찰기가 증가된다.

이 집에선 연잎이 참 다용도로 이용된다.

간고등어를 찔 때도 연잎으로 싸고, 오겹살과 닭고기로 연저육찜과 연계육찜을 만들 때도 자신의 직감을 믿고 대추·꽃사과·양파청을 섞은 걸쭉한 액을 베이스로 오겹살과 닭다리와 닭봉을 졸여냈다. 직감이 남달랐다. 농사 짓는 대추는 몸을 따뜻하게 해줘서, 꽃사과는 한 한의사가 좋은 식재료란 말을 듣고, 양파는 깔끔한 맛을 만들어줄거라 보고 그렇게 혼합했다. 닭강정 같은 연계찜이었다.

사과과수원도 꽤 규모가 크다.

1년에 2천500박스 정도 나온다. 그래서 그걸 갖고 동치미의 변형태인 사과물김치를 만들었는데 그 맛은 가히 파격적. 여느 물김치는 일단 군둥내 비슷한 엷은 새콤함이 안개처럼 혀를 감싸는데 이 물김치는 맹물만큼 싱거웠고 쓴 맛까지 감돌았다. 시중 식당 물김치 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외면할지 모르겠다. 이 국물은 꼭 강원도 봉평식 막국수에서 즐겨 사용하는 과일육수 스타일이다. 찬모들도 물김치 맛이 너무 이상하다면서 손님상에 내놓지 말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자기 방식을 믿는다. 국물을 만들 때 특이하게 당귀와 구기자를 우려냈다. 사과 속을 파내고 그 속에 미나리와 홍고추를 고명으로 한 백김치를 박아넣었는데 나온 메뉴중 가장 예뻐보였다. 기자는 그 사과물김치 때문에 안동화련을 더 믿게 됐다. 장사치가 특이한 맛을 고집한다는 건 문닫을 각오가 아니면 실천하기 어렵다. 부부는 돈보다 뭔가 제대로 된 음식을 개발한다는 데 더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이밖에 일손이 많이 가는 구절판, 일반 무보다 더 아삭하고 단단한 순무로 만든 안동식혜, 퓨전햄버거 같은 연잎버거, 닭가슴살과 두부를 섞어 만든 두부선, 육류 대신 연근과 우엉만 이용해 만든 잡채도 돋보인다. 당면도 효소액으로 볶아서 일반 식당과 맛이 차이가 난다. 사과·양파·생강·마늘·연잎가루·사과청 등이 들어간 돈가스도 돼지고기를 아끼지 않아 식감이 상당히 좋았다.

장아찌 중에서는 과수원에서 캐온 금전초 장아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식사를 다 하고 2층으로 가면 연잎차를 마실 수 있다. 이때 디저트로 감자·사과·고구마·연근·버섯·단호박·당근 말랭이를 맛 볼 수 있다. 연잎가루가 들어간 연잎칼국수는 밀가루 비린내가 나는 일반 칼국수와 달리 부드럽고 쉽게 넘어갔다. 한 여름에는 직접 기른 과일을 디저트로 낸다.

그녀는 셰프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그리고 요리에는 올챙이인데 신문에 나가면 신문사가 욕을 먹는 건 아닌지 당황스럽다고 했다. 기자는 그녀의 반듯하고 정갈함 뿐 아니라, 식재료를 텃밭에서 가져온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지고 싶었다.

부부는 정말 서울 생활을 잘 정리한 것 같다. 남편은 식재료를 잘 챙겨주고 아내는 맘대로 자기만의 레시피를 실험한다. 최근 만난 가장 이상적인 레스토랑 같았다.

월요일은 휴무. 예약 필수.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678-2번지 (054)858-0135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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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 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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