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2 ]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2> 성석제가 만난 ‘상주 곶감과 명실상감한우, 그리고…’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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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7-02   |  발행일 2012-07-02 제11면   |  수정 2021-06-0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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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명실상감한우는 마블링이 뛰어난 1등급 쇠고기로 G20 정상회의 공식만찬에 오를 만큼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왼쪽부터 상감한우로 만든 로스편채, 육회, 살치살 로스구이.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대한민국 수도 서울역에 2011년 가을 어느 때부터인가 ‘대한민국 농업수도 상주’라는 아크릴 패널의 광고에 흰 불빛이 들어왔다. ‘정신문화의 수도’(경북 안동), ‘생태수도’(전남 순천) 같은 명칭에 비해 ‘농업수도’는 뒷받침하는 실질이 없이는 쓰기 어려운 용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같은 관념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이 아닌, 도대체 상주가 무엇을 가지고 농업의 수도임을 자부하는가.

익히 알려진 대로 상주 농산물의 간판은 곶감이다. 전국 생산량의 60%이상을 차지하면서 단연 1위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주에서 전국 지자체 가운데 1위에 오른 농산물에는 오이와 육계, 양봉도 있다. 축산물의 대표 격인 한우는 전국 2위, 농산물의 대표 격인 쌀 생산량은 강원도 전체의 생산량보다 많으면서 전국 9위, 경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배·사과·포도 같은 과일 생산량도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작년 한 해 전 세계에 수출된 상주의 농산물이 1천만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농업 수도’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이처럼 농업이 상주의 기간산업이다 보니 옛날 농업이 국가의 대본이었던 시절부터 상주에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유족한 농가가 많았다. 지금도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연소득 1억원 이상인 ‘억대 농가’ 수는 1천500여가구로, 이 또한 전국 1위다. 전국 억대 매출 농업인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상주 사람인 셈이다.

상주에는 일제시대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자전거 문화가 발달했고, 지금‘대한민국의 자전거 수도’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 역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농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그래도 자전거가 웬만한 사람에게는 귀물이던 시절, 논에 물꼬를 트러 가는 농부의 자전거에 삽이 얹혀 있을 정도였다. 상주에 가면 전국 농업을 다 볼 수 있다는 말이 공연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음식 재료, 경제적 여유 속에 탄생한 특별한 상주의 음식은 뭔가. 외지인이 보기에는 별 게 없어 보일 수 있다. 상주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맛있는 음식이나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말라고 그런 거를 찾아여(뭐하려고 그런 걸 찾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실용적이고 실질을 숭상하는 상주 음식의 전통은 외식이 아닌 가정식 위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대체로 상주에는 극소수의 지주와 양반 계층을 위한 음식문화가 성하기보다는 자급자족하는 이 집, 저 집에서 늘 해먹는 세 끼 음식이 일반적이었다. 결국 상주의 맛은 가짓수나 모양, 넓이가 아닌 깊이로 귀결된다.



#1 감 먹는 한우 ‘명실상감한우’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는 ‘하늘 아래 첫 감나무’라고 하는 700년 넘은 감나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늙은 감나무이자 유실수 전체를 통틀어서도 더 나이 든 나무를 찾기 어려울 만큼 오래된 나무인데 아직도 해마다 3천개 넘는 감이 달리는 당당한 ‘현역’이다.

외남면에는 그 감나무 외에도 몇 백년 묵은 감나무가 수두룩하다. 바로 그런 감나무와 그의 후손들에게서 딴 감으로 곶감을 만들어 나랏님에게도 진상하고 일부는 내다팔아 가용으로 요긴하게 썼다. 곶감은 돈이 되는 물건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나 손자에게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은 감을 툭툭 썰어서 만든 감또개나 곶감을 깎고 남는 부산물인 감껍질 말린 것을 주곤 했다. 당분이 귀하던 시절, 아이들은 그마저도 감지덕지였다.

지금 감은 손으로 깎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기계로 깎는다. 전문적으로 감껍질을 깎기 위해 고안된 ‘박피기’로 깎은 감은 매끈하고 껍질 또한 길게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는 게 보통이다. 감껍질을 말려서 먹는 법이 거의 없어진 대신 소에게 준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게도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감껍질을 먹는 그 소의 이름은 ‘상감한우’다. ‘상주 감 먹는 한우’의 준말이다. 여기에 상주의 농축산물을 대표하는 브랜드 이름 ‘명실상주’가 합쳐져 ‘명실상감한우’가 탄생했다.

상감한우는 축산물브랜드경진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도 있고 소비자 선정 우수브랜드 인증을 받기도 했다. 또 G20 공식만찬 명품한우로 지정되기도 했다. G20 정상회의 공식만찬에서 안심스테이크 재료로 사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도 세계 정상들이 먹은 안심스테이크를 먹어보자”며 주문이 폭주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은 소비자의 평가다. 한우 생산 전국 2위의 바탕에서, 마블링이 뛰어난 1등급 쇠고기이니 맛이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낙동면의 강변에 낙동강 한우촌을 비롯해 상감한우를 주요 식단으로 하는 음식점이 시내와 교외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상주축산농협은 ‘명실상감한우 홍보 테마타운’을 조성해 소비자에게 맛과 볼거리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테마타운에는 한우구이 전문점과 판매점, 그리고 홍보전시관 등을 마련해 명실상감한우의 참맛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체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주의 대표적인 명소로 거듭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2 곶감으로 담근 간장

한국 음식의 깊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장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에 상주 사람들이 ‘담북장’이라고 부르는 청국장 등이 포함된다. 우리가 장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장맛이 태중에서, 혹은 무엇을 먹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젖먹이 시절에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뇌리 깊숙한 곳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일상적으로 장을 담그고 장이 들어간 음식을 먹기 때문에 태중의 아기와 젖먹이들은 그 맛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해도 인이 박이게 된다. 그랬던 아기가 자라 장을 찾고, 의식과 깊이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깊이의 맛으로 장맛을 꼽게 된다.

상주 시내의 동쪽에 자리한 전통 사찰 도림사의 절 마당, 수백 개의 장독을 마주한 자리에서 스님은 장독 뚜껑을 일일이 열어 보이며 장에 대해 설명해줬다. 재료로 재래콩을 쓴다는 것, 청정한 공기와 깨끗한 물로 만든 우리 간장은 적어도 6개월 이상 익어야 하는데 거기서는 훨씬 더 오래도록 발효한 것을 낸다는 것 등이었다.

특히 고추장은 난데없이 절에서 가톨릭의 수장인 추기경(Cardinal)의 법의를 연상케 하는 고상한 주홍색 빛깔과 맛을 가지고 있어서 혀를 바쁘게 했다. 고추장의 기초 재료인 조청은 절에 있는 가마솥에서 오래도록 저어가며 고은 것이라는데, 거기에 천연재료인 곶감이 들어간다. 장을 만들 때에 곶감을 넣는 건 전국, 아니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일 것이나 결국 그 맛은 필자가 어린 시절 맛보았던 그것과 가장 닮아 있었다.

국이나 찌개처럼 물을 재료와 함께 끓여서 먹는 음식이 많은 한식에서 화학조미료와 소금은 장의 깊이 있는 맛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상주 시내 남쪽에 전문 칼국수 음식점들이 있지만 시장의 웬만한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는 ‘상주식 칼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어 반죽하고 흔한 채소인 호박, 배춧잎, 고추, 얼갈이 등등 제철에 나오는 것을 넣고 끓여낸다. 그 맛을 좌우하는 것은 양념으로 넣는 간장이다. 사골칼국수처럼 동물성도 아니고 멸치나 바지락, 해물이 들어간 칼국수처럼 시원한 맛을 표방하는 것이 아닌데 아는 사람들은 아는 중독성이 있다.



#3 간장의 깊은 맛‘적집’과 장국밥

사철 풍부하게 나오는 채소를 가지고 부쳐낸 전과 막걸리를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을 상주 사람들은 ‘적집’이라고 불렀다. 근래 서울에 ‘전 전문점’이 자주 보이는데 상주 사람이라면 그것의 원조를 상주의 시장 골목 깊숙한 곳에 즐비하던 ‘적집’에서 찾을 것이다. 전의 맛을 결정하는 것 역시 찍어먹는 장이다. 예전에는 초장에 찍어먹었다고도 한다.

예전 우시장이 있던 자리에 대를 이어 운영해 오고 있는 해장국집 남천식당이 있다. 그곳의 해장국은 그때그때 나오는 아욱, 시금치, 얼갈이, 배추 같은 채소에 된장을 푼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는다. 말 그대로 장국밥이다. 서울식 해장국처럼 선지나 내장이 들어있는 법이 없고 해물이 들어갈 리도 없다. 그런데도 깊이가 있고 중독성이 있다.

그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주에 갈 때마다 아니 들르고는 배기지를 못한다. 비슷한 해장국을 파는 곳이 시내에 수십 곳은 생겼으나 그 해장국을 처음 맛보았을 때의 대범하고도 강렬한 맛과 분위기, 깊이, 시절의 조합을 따를 수는 없다. 서민들이 먹는 백반, 상류층의 한정식을 파는 음식점도 시내에 여러 곳이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장이 없이는 상정할 수 없는 음식들이다.



#4 좋은 쌀로 빚은 은자골 탁배기

서울의 인사동은 전국의 막걸리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곳인데 작년부터 음식점 바깥에 ‘은자골 탁배기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기 시작했다. 은자골은 상주시 은척면(銀尺面)을 칭하는 이름이고 탁배기는 물론 막걸리다. 아득한 옛날 금척과 은척을 만들었더니 사람들의 수명이 크게 늘어나서 금척은 경주 부근에, 은척은 상주 땅에 가져다 묻었다는 전설이 있다.

예부터 상주를 ‘삼백의 고을’로 일컬어지게 한 것은 쌀과 명주, 곶감의 명산지여서였다. 그 쌀로 빚은 막걸리가 은자골 탁배기이다. 일반적인 막걸리가 알코올 6%인데 비해 5%로 낮고 잡미가 없이 뒷맛이 깔끔하며 충분히 숙성된 까닭에 숙취가 없다. 상주 막걸리가 맛있는 이유는 ‘좋은 상주 쌀, 지하 암반에서 나오는 좋은 물, 좋은 발효기술, 좋은 발효균’이다.

은자골 탁배기를 만드는 은척양조장 지하에 은척이 묻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나가던 미생물학 전공 교수가 ‘다시 없을 뛰어난 물’이라고 했다는 지하 암반수는 있다. 양조장에는 3대째 내려오는 발효실이 있고 백 년 넘은 술독이 아직도 현역으로 제 몸을 비우고 채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자연에서 나온 농축산물을 가지고 전통과 옛 것을 지키고 존중하면서 변화에 순응하는 음식, 상주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 풍경화가 술 익는 도가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며 자연스러운 맛을 만들고 나누며 자연스럽고 자족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상주의 음식이자 맛이다. 이것이 상주다.


20120702

글=성석제(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공동기획: 공동기획:pride Gye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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