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2]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0> 조정일이 만난 칠곡 순대국밥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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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27   |  발행일 2012-08-27 제13면   |  수정 2021-06-02 15:22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0] 조정일이 만난 칠곡 순대국밥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0] 조정일이 만난 칠곡 순대국밥
50년 전통의 칠곡군 왜관역 앞 순대국밥. 돼지 사골만을 우려내 국물 맛이 담백하고 구수해 순대국밥 맛을 잊지 않고 찾는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Story Memo
기차 타고 여행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찾게 되는 역전식당. 뜨내기 손님을 상대하기에 맛은 별로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왜관역 앞 순대국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관은 태종 때 일본의 사신이나 교역자들을 머물게 하고, 물자 교역의 장소로 그 명칭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 연안에 있어 경상도 내 중요한 상품 집산지였던 이곳에 경부선 철도가 생기고 1905년 왜관역이 문을 열게 되었다. 그때부터 100년 넘게 왜관역 주변은 오가는 길손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있다.

예전 왜관역 앞 순대국밥 집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 국물을 덤으로 챙겨주고, 혼자 소주잔 비우는 손님에게 조용한 말벗이 되어 주던 할머니가 으레 있었다. 허기졌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풍요로웠던 추억. 고속도로가 나고 철로도 바뀐 요즘, 왜관역 정비사업을 통해 역 앞에 있던 식당이 거의 없어지거나 주변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50년 넘게 이어온 ‘연탄불로 끓여 만든 순대국물의 진한 맛’은 여전하다.

‘작가,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0편은 칠곡 왜관역의 순대국밥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순대국을 좋아하는 산돼지와 아재’는 허구의 캐릭터임을 밝혀 둔다. 순대국밥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한 극적 요소다.



 

아재가 팔공산에 갔을 때 이야기래. 오랜만에 나선 산행이라 욕심을 부린 탓에 한티재를 지났을 때는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지. 아재는 가산으로 내려오는 길을 잡아 동명에서 버스를 타고 대구로 돌아갈 생각이었대. 그날따라 해가 바삐 떨어지고 길은 금세 어둑해졌어. 뛰는 것처럼 걸음을 재촉했는데 가산산성 안에 들어선 뒤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야. 한 시간만 서둘렀어도 남문을 통과했을 걸, 큰일이었지. 훤히 아는 길이어서 산 아래 불빛이라도 보이면 더듬어 내려갈 텐데, 누가 연기라도 피워대는 것처럼 밤안개가 에워싸네.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골짜기에서 비치는 불빛을 발견했어. 조심조심 걸어서 다가갔지. 너럭바위 근처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고 말소리가 들렸어. 바위 아래로 내려갔어. 누가 숯불을 피우고 있네. 가까이서 보니 이게 사람이 아니라 산돼지들이야.

산돼지들은 감자를 굽고 있었지. 감자를 베어 먹고 꿀밤(도토리)을 오도독 씹어 먹었어. 고기 한 점 입에 넣고 마늘을 먹듯이 말이야. 불가에 둘러앉아 있던 산돼지들이 아무 말 않고 한쪽 자리를 내주었지. 아재가 길을 잃었다고 했더니, 오늘 같은 밤은 나서지 않는 게 좋다며 묵어가라고 하더래.

아재는 구운 감자를 먹으며 산돼지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 어느 집 감자 농사가 잘됐네 못됐네, 그 밭 주인은 솜씨가 없다는 둥, 올해는 꼭 고구마를 심으면 좋겠다는 둥, 아무개는 땅콩 종자를 바꿔야 한다는 둥 죄 먹는 얘기였대.

그러다 모두 흩어지고 홍도령이라고 불리는 산돼지가 말벗이 된다며 아재 곁에 남았지. 아재는 그만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홍도령이 마음 써 주는 걸 물리칠 수가 없었어.

홍도령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먹고산다고 했어. 그 역시 먹는 얘기를 화제로 삼았지. 돼지가 무얼 먹는다는 것이 대단할 게 있겠냐마는 홍도령은 조금 달랐어. 배불리 먹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눈곱만큼 먹어도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지. 홍도령은 ‘잘 먹는다 함은 무엇인가’를 늘 고민한다고 했어. 아이들과도 거기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눈다고 했지. 생각이 정리되면 꼭 책을 엮고 싶다고 했어.

그런데도 도령은 어느 특정한 음식을 생각하면 아무 때나 식욕이 당긴다고 웃었어. 자신의 신념이 그 앞에 흔들리는 것이 쑥스럽다는 듯이 말이야. 아재는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어.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고.

홍도령이 몹시도 좋아하는 특정한 음식은 뭘까. 아재는 궁금해서 물어봤어. 어떤 나무의 뿌리이거나 열매일까, 풀이나 알곡일까 하고 말이야. 홍도령의 대답은 천만뜻밖이었지.

“왜관 가면, 저기 시장에, 순댓국을 파는데요….”

돼지가 순댓국을 먹다니. 얼핏 사람이 이웃 사람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놀랐지만, 아재는 일단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 그리고 홍도령의 다음 말을 듣고 그가 순댓국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았지.

“순대는 무엇으로 만드는 줄 혹시 아십니까?”

아재는 알고 있는데 갑자기 물어 생각이 안 난다고 그랬어.

홍도령이 무릎을 가져다 대고 또 물었대.

“그러면 방금 짜낸 우유처럼 뽀얗고 구수한 국물 내는 방법을 알 수 있을까요?”

아재는 사골을 푹 고아 내서 그럴 거라고 대답했어. 하지만 사골을 어디서 구하는지는 모른다고 얼버무렸지.

홍도령이 순댓국 먹으러 왜관 장에 가는 얘기는 흥미로웠지. 산돼지들은 사람으로 변신할 수가 있다고 했어. 사람이 되는 것은 힘을 많이 쓰는 일이라 대개는 보름에 한 번 꼴로 변신한다는 거야. 홍도령은 사람이 되는 것에 큰 흥미가 없는 편이었대. 그러다가 순댓국을 알게 된 뒤로는 장날을 기다리게 되었대.

“산 아래 마을에 오래 살다가 옻골에 오신 할머니 한 분이 있어요. 그 분한테서 처음 순대국밥 얘기를 들었죠. 사람들은 장날만 되면 왜관 나가서 순대국밥을 먹고 온다고. 당신은 이제 늙었으니까 왜관까지 나갈 힘도 없다면서 저더러 꼭 한 번 먹고 얘기를 해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왜관 순대국밥은 이렇게 저렇게 먹어야 한다고 알려 주는 거예요.”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0] 조정일이 만난 칠곡 순대국밥
1905년 1월1일 경부선 개통 때 문을 연 왜관역. 칠곡군 5개 역 중 여객 수송 비율이 가장 높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0] 조정일이 만난 칠곡 순대국밥
선지, 고기, 각종 채소 10가지를 재료로 만든 순대와 암퇘지 머리 고기, 내장 수육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홍도령은 장날을 기다려 산을 나섰다고 했어. 할머니가 말해준 대로 맨 먼저 왜관역으로 가서 열차표를 끊었대. 그건 순댓국을 먹기 전에 필요한 마음의 준비라고 했지. 홍도령은 증거를 보인다며 열차표를 꺼냈어. 밤 11시10분에 왜관역을 출발하는 용산행 무궁화 열차였어. 날짜가 다른 승차권을 다섯 장이나 가지고 있었지. 그건 효과가 있었어. 긴가민가하던 마음을 한 구석에 품고 있던 아재도 그때부터 홍도령의 얘기를 믿게 된 거야.

“출발시각이 되려면 한참 먼 열차라야 합니다. 그리고 ‘어휴,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네’ 하고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거죠. 시장에 들어서면 천천히 구경을 하면서 시장 끝까지 가요. 그리고 되돌아와서 시장 입구에 있는 국밥집으로 들어갑니다. 비어 있는 한 자리를 잡고 앉으면….”

홍도령은 그 순간을 떠올리는 듯 눈을 감았어. 정신을 모아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고 있는 것 같았어. 홍도령의 표정을 살피는 아재의 입 속에도 침이 고였지.

“그런데 갑자기 아지매가 말을 걸어서 가슴이 철렁했답니다. 할머니가 나에게 알려준 말은 두 가지, 자리에 앉으며 ‘순댓국 한 그릇 주이소’ 나오면서 ‘아, 잘 먹었다. 얼마라예?’ 그뿐이었거든요.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무척 당황했죠.”

“홍도령이 산돼지라는 것을 알아본 겁니까? 사람으로 변신한 게 들통이 났나요?”

아재가 물었어.

“아지매가 말을 걸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죠. 돌아와 할머니에게 얘기했더니 할머니도 모르시더군요. 같은 일이 되풀이되어 매번 곤혹스럽습니다.”

“아지매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납니까?”

“늘 같은 말입니다. ‘국물 좀 더 드릴까예?’”

아재는 웃음을 터뜨렸어. 홍도령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유도 모른 채 따라 웃더래. 아재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아지매가 홍도령에게 건넨 말의 의미를 설명했어. 또 ‘국물 좀 더 주이소’ 하면 언제든 국물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홍도령에게 말해 주었지.

홍도령은 무릎을 탁 쳤어. 뒤늦게 알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까운 거야. 그 말을 외웠다 꼭 써먹어야겠다며 계속 입술을 달싹거렸지. 그리곤 잊어버리기 전에 집에 가 적어 놓아야겠다고 일어섰어. 가면서 다음 장날 왜관역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어. 열차표를 끊고 아재를 기다리겠대. 순댓국도 자기가 산다고 했지. 홍도령이 사람으로 변한 모습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냐고 아재가 물으니, 자기가 알은체를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어.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아재는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대. 산돼지들과 감자를 구워 먹던 자리는 깨끗했어. 아재는 산성을 빠져나오며 계속 뒤를 돌아보았지.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이틀을 앓아누웠어. 순댓국을 좋아하는 산돼지라니, 열에 들떠 헛것을 본 거라 생각했다지.

몇 달이 훌훌 지났대.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그날도 1일 아니면 6일로 끝나는 왜관 장날이었나 봐. 아재는 서울 출장을 갔다가 대구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열차가 낙동강 철교를 건너 왜관으로 들어설 때, 아재는 이상한 충동에 이끌렸어. 열차가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는 걸 보고서야 아재는 왜관에 내린 이유를 뒤늦게 생각해 봤지.

 

시장에는 순대국밥을 파는 집이 진짜 있었대. 아재는 시장 끝까지 갔다가 다시 식당 앞으로 돌아갔어. 옻골 할머니가 홍도령에게 말해준 방법을 따르듯이 그렇게 했지.

식당은 붐볐어. 자리가 없는 것 같아 우물쭈물하는데, 마침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어. 아재는 순대국밥을 시켰지.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순댓국을 먹고 있더래.

식당 앞 가판에는 삶은 돼지머리와 족발, 돌돌 말려서 쌓여 있는 순대와 돼지 몸 곳곳에서 추려낸 부속고기들이 더운 김을 피워냈어. 커다란 도마 위에서는 잘 익은 순대와 고기들이 숭덩숭덩 썰리고, 사골국물이 들어 있는 솥뚜껑이 열릴 때마다 구름이 솟아올랐지. 아재는 집에 갈 때 순대를 포장해 가자 생각했어.

그리고 상상 속에서지만, 순대가 무엇으로 만들어지고 진한 국물을 어떻게 내는지 홍도령에게 말하지 않은 건 참 잘했다고 생각했지. 그때 옆자리에서 외쳤어.

“아지매, 국물 좀 더 주이소.”

그 사람은 그릇을 비우기 직전이었지. 아지매가 국밥 한 그릇을 새로 내오듯 뚝배기에 국물을 담아와 채워 주자, 그 사람은 뜨거운 국물이 식기도 전에 입에 떠 넣고 있었어. 순댓국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아재는 방금 날라온 국밥에 새우젓으로 간을 했지. 그러다 아재는 식탁 위에 종이쪽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어.

계산서인가 봤더니 아니더래. 신문이나 전단도 아니었고. 그게 뭐냐면, 열차표였대. 바람에 날리지 않게끔 열차표 위에 꿀밤 한 톨까지 놓여 있는 거야. 아재는 표를 집어 열차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 영국에서 부친 행운의 편지를 받는 것처럼 무서웠거든. 그때 뒤에서 소리가 나서 아재는 놀랐지.

“아지매, 돼지껍데기 하나하고 우리도 국물 좀 더 주이소.”

움찔해서 고개를 돌리다가 아재는 옆자리를 우연히 봤어. 그 사람이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는 거야.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그렇지만 아재에게 ‘이것 보세요’ 하고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지. 등골이 오싹하더래. 그 사람이 꺼내 놓은 건 열차표였어.

아재는 그 사람이 가진 열차표를 힐끔힐끔 봤지. 객차번호와 출발시각까지 확인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대. 더 볼 것도 없었지.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던 거야. 아재는 남은 국밥을 몸 안으로 한 술 한 술 떠 넣었어. 식탁 아래로 두 다리가 벌벌 떨렸지.

아재가 뚝배기를 기울여 마지막 사골국물을 마실 때 아지매가 다가왔어.

“국물 좀 더 드릴까예?”

아재는 말이 안 나와서 손사래를 치며 벌떡 일어났어. 그때 또다시 옆자리 사람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어.

“아지매, 국물 좀 더 주이소.”

“예, 드릴게예.”

아재는 집에 갈 때 순대를 좀 사 간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식당을 나왔지.

북부정류장에 막 들어오는 버스를 잡아 탈 때, 아재 손에는 아직 꿀밤 한 톨과 무궁화 열차 승차권이 쥐여 있었어. 왜관역에서 그날 밤 11시 10분에 떠나는 용산행 무궁화 열차였대.

조정일(극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공동기획: 공동기획:pride Gye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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