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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채소와 해산물에 의성 마늘과 고추 양념을 곁들여 매콤한 맛이 일품인 마늘해물찜. 의성마늘을 얇게 썰어 마늘 특유의 매운향을 살리고 식감을 높였다. 의성읍 원당리 원당교차로에서 경북대로 한전 의성지점 부근에 있는 식당인 ‘마늘이야기’에서 맛볼 수 있다.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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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마늘과 육류를 갈아 오븐에 구운 마늘떡갈비는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마늘떡갈비에 전복마늘구이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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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이면 의성은 마늘을 파종하기 위해 농민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의상마늘은 알이 단단하고 윤기가 나며 끝이 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의성 하면 사람들은 흔히 마늘을 떠올린다. 낙동강을 가운데에 두고 이웃한 상주가 곶감의 고장으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성에서 고추나 사과, 호주 등 해외에서도 수출되어 각광을 받는 ‘의로운 쌀’이며 ‘황토쌀’을 생산하는 사람으로서는 섭섭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의성의 음식을 이야기할 때 마늘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마늘(garlic)은 중앙아시아, 혹은 이집트가 원산인 백합과(百合科) 식물이다. 백합과 식물에는 양파나 파처럼 구근식물이 많은데 비비추, 원추리, 둥글레, 얼레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산야를 방랑하다 먹을 게 없을 때 주변에서 백합과 식물을 찾아보라는 말이 있다. 백합과 음식은 식용할 수 있는 게 많아서 비상시에 굶주림을 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쑥과 함께 먹었던 게 마늘이었다. 신화가 아닌 기록으로는 이집트에서 기원전 2500년경 축조된 피라미드 벽면에 피라미드 공사에 동원된 노무자에게 마늘을 나누어주는 게 있다.
수천년의 인류 역사에서 마늘은 강한 냄새를 제외하고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하여 ‘일해백리(一害百利)’의 식품으로 인식되어 왔다. 여기에 과학적인 근거가 보태져 2002년 미국 ‘타임(Time)’지는 마늘을 세계 10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했다. 미국의 국립암연구소에서는 인류가 먹는 40여종의 항암식품 가운데 1위로 마늘을 지목했다.
아득한 옛날 인간세를 구하고자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태백산 마루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신시(神市)를 열었을 때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했다. 환웅은 쑥과 마늘만을 먹으며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쑥은 ‘쓰’고 마늘은 ‘맵’다. 참을성 많은 곰만이 백일을 견뎌내 사람이 되었고(熊女),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이다. 쑥과 마늘은 문명화, 인간화를 가능케 해주는 신성한 식물이었다. 신화가 맞다면 우리 민족은 마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의성에서 마늘 재배가 본격화한 것은 1526년(조선 중종 21), 지금의 의성읍 치선리(선암부락)에 경주최씨와 김해김씨 두 성씨가 터전을 잡으면서부터라고 한다. 의성에는 국내 최초의 사화산인 금성산이 있다. 금성산이 분화하면서 뿜어낸 화산 분진으로 말미암아 토양에 미네랄이 풍부하다. 이처럼 토양이 비옥하고 부식토가 많은 데다 지대가 높아 큰 일교차를 나타내는 등의 천혜의 자연환경이 의성을 토종 마늘 생산의 최적지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부로부터 ‘마늘 특구’지정을 받기도 했다.
마늘은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난 뒤 초여름에 수확하는 한지형과 봄에 심는 난지형으로 나뉘는데 의성의 마늘은 한지형이다. 의성 토종 마늘은 논에서 재배되어 즙액이 많고 맛이 더 맵다. 알이 단단하고 윤기가 나며 끝이 뾰족하다는 특징이 있다. 의성에서는 흔히 말하는 ‘육쪽 마늘’만 생산되는 것은 아니고 마늘 크기가 커질수록 쪽수가 많아지고 작을수록 쪽수가 줄어든다. 육쪽 마늘이 기하학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고 예뻐 보이기는 한다.
의성 마늘은 특히 살균력이 강해 김치를 담글 때 쓰면 맛이 뛰어나고 잘 변하지 않는다. 저장성이 높아 다음해 햇마늘이 시중에 나올 때까지 품질을 유지한다. 의성의 마늘 생산량은 한국마늘 생산량의 5%, 한지형 마늘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마늘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알린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마늘을 썰면 세포가 파괴되면서 효소 분해에 의하여 알린이 알리신이나 디알리디설파이드 등이 되어 매운 맛과 강한 냄새를 내게 된다. 이 마늘의 냄새성분은 고기 비린내를 없애고 맛을 돋우어주며 소화도 도와준다. 또 알리신은 페니실린보다 더 강력한 항생제라고 알려져 있고 식중독균과 위암의 원인균인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 등에 대해 살균, 항균효과를 가지고 있다. 알리신이 비타민 B1과 결합하면 알리티아민으로 변하여 피로 회복, 정력 증강에 도움을 준다.
마늘에 들어 있는 다양한 유황화합물질은 간암과 대장암 등의 여러 종류의 암을 억제하고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작용도 한다. 심장·근육의 작용에 활력을 주고 체표면 혈관을 확장하여 겨울에 먹으면 더욱 좋은데 우리의 김장김치에 마늘이 들어가 있는 것이 효능을 반증한다. 또 마늘은 체내 과산화지방의 생성을 억제해 노화를 방지하는 효능이 있음이 실험을 통하여 입증되었다. 쉽게 말해 마늘만 잘 먹어도 불로장수하고 정력이 강화된다. 고기든 음식이든 맛있게 먹게 된다.
이렇게 좋은 게 마늘이지만 생마늘을 지나치게 오래도록 많이 먹으면 열을 많이 나게 하므로 열병이 있거나 열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고기를 먹을 때 흔히 마늘을 함께 구워먹는데 마늘은 가열하면 효소가 파괴되면서 매운맛이나 냄새, 살균작용이 없어지지만 창자 속에서 분해되어 다시 다양한 효능을 나타낸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상품화한 것이 의성 흑마늘이다.
의성 토종 마늘을 30일 동안 발효시킨 뒤 10일간 더 저온발효를 진행하면 노란 생마늘이 적갈색을 거쳐 흑색으로 바뀐다. 마늘 특유의 지용성 성분이 수용성 유황화합물로 변화해 마늘의 매운맛과 불쾌한 냄새가 제거되고 마늘의 유익한 기능, 예를 들어 불로장수, 정력, 항암, 항균 등에 효과 등 체내 흡수율이 10배로 높아진다고 한다. ‘의성 흑마늘’은 올 상반기를 기준으로 국내 흑마늘 시장의 75%를 점유한 독보적 제품이다.
이런 흑마늘과 의성의 쌀이 만나 ‘의성흑마늘 쌀막걸리’와 ‘흑마늘약주’가 탄생했다. 제조과정은 일반 쌀막걸리와 비슷하지만, 2일간 흑마늘과 고두밥을 발효기에 넣어 함께 발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흑마늘의 풍미를 느낄 수 있고 목 넘김이 부드럽고 숙취가 적다.
의성에서는 마늘 분말을 사료에 첨가, 과학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사양관리프로그램을 적용한 가축을 길러내고 있다. 마늘 사료를 먹인 쇠고기는 콜레스테롤 함량이 낮고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다. 마늘을 먹여 키운 돼지의 고기, 곧 ‘의성 마늘포크’는 보수력이 높아 촉촉하고 쫄깃한 맛이 뛰어나고 불포화지방산 함유량이 높아 건강에 좋다. 마늘사료를 먹은 닭이 낳은 계란 역시 일반 달걀보다 콜레스테롤 함유량이 낮은 기능성 계란이다.
올해 6월26일부터 3일간 의성군 마늘테마파크와 마늘타운 일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제1회 세계의성마늘축제’가 열렸다. 마늘 관련 식품은 마늘소, 마늘포크와 마늘햄, 흑마늘, 마늘고추장, 마늘간고등어, 흑마늘 막걸리, 마늘소스 등이었다. 마늘까기, 마늘 엮기, 마늘 구워먹기, 마늘 족욕, 김치·장아찌 담그기, 마늘요리극장, 마늘무게 맞추기, 마늘 퀴즈, 마늘콘서트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또 의성군에서 추진하는 ‘의성마늘의 흑진주 만들기 사업’을 보면 마늘 관련 건강보조식품, 10여종의 의성마늘 첨가제품, ‘흑마늘 농축액’ ‘구워먹는 의성마늘’ ‘흑마늘소금’ 등 상품이 생산되고 있고 마늘 기능성 화장품과 마늘 신약도 개발하고 있다. ‘마늘소 먹거리 타운’을 운영하고 있고 ‘마늘유통 특구사업’도 추진 중이다. 마늘로 가능한 게 이렇게 많다. 의성지역 식당에서도 마늘을 재료로 다양한 음식을 개발, 시판중이다. 마늘해물찜, 마늘 떡갈비, 전복마늘 구이 등이 대표적이다. 코스요리도 상당한 인기다.
전국적으로 마늘치킨이 인기인데 대표적 향신료인 마늘이 닭고기 튀김에 맛을 더해주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마늘 본산 의성의 단촌면, 점곡면에는 ‘마늘닭’이 있다. 그런데 이건 닭을 먼저 튀긴 뒤 마늘과 고추를 큼직큼직, 대범하게 썰어 넣고 만든 별미양념장을 끼얹어 버무려 주는 형식이다. 그래서 ‘양념치킨’이라고 하기도 한다. 먹기도 전에 매운 마늘 향이 그대로 육박해온다. 요리라거나 맛집이라거나 하는 식의 꾸밈이 없고 대범하다. 도시에서 간 ‘속좁은’ 두 사람이 한 마리를 먹기에는 좀 많다 싶다. 마늘닭을 다 먹고 나면 비벼 먹으라고 밥까지 준다. 윤기 흐르는 쌀밥에 천연 조미료인 간장, 양념의 제왕인 마늘의 조합은 배가 터질 듯 부른데도 불구하고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마늘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던 단군은 기원전 2333년경 평양에 도읍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고, 뒤에 아사달에 천도하여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마늘은 하늘이 내린 음식이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弘益人間)’은 이념에서 그치지 않고 마늘로 구체화되었다. 의성의 하늘 아래에는 단군의 후손들이 가꾸는 마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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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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