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2]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19> 이상국이 만난 ‘윤팔선 군위 콩잎김치’와 신화의 거장 이윤기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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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05   |  발행일 2012-11-05 제13면   |  수정 2021-06-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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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웰빙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윤팔선 군위 콩잎김치’. 가을 단풍잎처럼 고운 빛깔을 머금은 콩잎김치를 뜨끈한 밥 위에 얹어 먹으면 깊고 담백한 맛이 입안 가득 맴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어이, 빈섬. 사진만 찍지 말고 여기 와서 이 콩잎 좀 먹어보게. 이거 경상도에서 공수해 온 거라고. 자네 입맛이나 내 입맛이나 아무리 세상 멀리까지 간다 해도 이 맛 없인 못 살지 않는가. 하긴 뭐, 서울내기들은 콩잎 먹는 걸 보고 ‘경상도에선 낙엽을 먹나 보네, 사람이나 소나 비슷한 여물 먹고 사시나 보네’ 카더라만, 그 서울의 소들이야말로 가련하지. 깻잎 한 트럭 줘도 콩잎김치 한 잎하고 안 바꿔 준다는 질박한 맛을 알 리 없으니, 입 달고 나와 한심한 노릇 아닌가?”

번역가이자 신화 연구가, 그리고 작가인 고 이윤기 선생(1947~2010)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또 한 번 내게 다가왔다. 군위. 그러고 보니 이윤기의 고향이었다. 그분이 신바람 나서 말씀하시던 어린 시절 콩잎김치의 맛. 그것이야말로 그 고장의 깊은 맛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군위에 ‘윤팔선 군위 콩잎김치’라는 브랜드가 있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생산해서 판매망을 확장하고 있었다. 경상도 특미로 이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이윤기의 고향은 군위군 우보면 두북리 2구다. 9남매 중에서 살아남은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첫돌을 지내고는 아버지를 잃었다. 부친의 기억이 있을 리 없다. 체격이 ‘크단하고’, 힘이 장사였고, 발이 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뿐이다. 말랐지만 큰 통뼈체격을 지닌 이윤기의 모습이야말로 아버지의 사진에 갈음하는 것이리라. 대대로 능참봉을 했다는 그의 집안 이력 때문이었을까, 식구는 저마다 반골(反骨) 기질이 있었고 목청도 카랑카랑하였다. 그에게는 할머니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막내손자를 학자로 만들고 싶었던 할머니는 천자문을 직접 가르쳤다. 옥루몽, 숙영낭자전, 조웅전, 류충렬전, 장화홍련전, 권익중전 같은 이야기책을 늘 곁에 두고 낭랑한 목청으로 읽어 주곤 했다. 손자는 어른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그 대목들을 통째로 외워 노래처럼 읊었다. 할머니는 어린 이윤기를 맹기(孟氣, 혹은 孟器, 맹자가 될 그릇)라고 부르며 흐뭇해했다. 아마도 한국 현대 문학사에 인상적인 이름을 남기곤 간, 빼어난 스토리텔러의 재능은 여기서 발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군위에 살던 시절은 배고프고 고달픈 날들이었다. 태어날 무렵엔 손꼽히는 부농이었던 가세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 잔뜩 기울어져 있었다. 큰 형이 자동차 사업을 하다가 망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형과 누나들은 저마다 먹고살 길을 찾아 대구로 떠나거나 출가를 했고, 어머니와 두 살 위인 형과 이윤기가 남았다. 가난한 식탁에 단골로 올라오는 콩잎김치는 그래서 어린 시절엔 질렸던 음식이었고, 그때 밴 입맛이 세월이 갈수록 되살아나 이젠 때만 되면 그리워지고 생각만 하면 군침이 먼저 도는 것이 되었다.

“등에 진 책보따리에 콩잎 반찬을 넣은 도시락을 함께 쌌는데, 그 양념국물이 보리밥 알갱이로 줄줄 흘러 온 밥이 그저 벌갰지. 그래도 그 콩잎 하나에 밥알 몇 개 올려 우물우물 씹으면 요기가 되었지.”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선생은 자신의 형이 참 의젓했다고 기억한다.

“함께 나무를 하러 가면 형은 이런 버릇이 있었어. 소나무를 자르기 전에 톱을 돌려 톱등으로 나무를 툭툭 치면서, ‘나무요, 나무요, 톱 들어가니더’ 그렇게 말하고는 일을 시작하곤 했지. 딴 데 구할 곳이 없어서 베기는 한다마는, 세월 묵은 나무를 욕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하면서 말이지.”

식물에 대해서도 경건한 태도를 지녔던 그 애니미즘이 어린 마음에 남아, 신화의 세계를 연구하는 학자의 그루터기가 된 것이 아닐까.

2006년 4월 이윤기 선생은 군위의 고향에 다녀오면서 그곳에 있는 할머니 묘소에 들렀다. 절을 올리던 선생은 문득 곁에 고개 숙이며 피어 있는 할미꽃 한 송이에 눈길이 머문다. 꽃대가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동안, 숙영낭자전을 낭랑히 읽던 그 모습이 떠올랐으리라. 밥그릇 옆으로 절인 콩잎을 먹기 좋도록 찢어, 손자가 한입 한입 차례로 집어올리도록 놓아주는 모습도 함께 말이다.

이윤기 선생을 생각하노라면 ‘인연(因緣)’이란 두 글자가 함께 돋아 오른다. 1990년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내놓은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올림픽 이후 세계적인 감성을 넓혀가고 있던 이 땅의 젊은 독자들에게 지적인 상상력을 폭발시켜주는 구실을 했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으로 이어진 세 편의 소설은, 따분해 보이는 역사와 과학과 기호학이 훌륭한 이야기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감동을 연타석으로 선사했다. 움베르토 에코 옆에는 늘 번역자 ‘이윤기’라는 이름이 있었다. 빈섬 또한 ‘에코세대’라 할 만큼 마니아였고, 이윤기 선생을 사모해 왔다. 그런데 2004년,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블로그에 이윤기 선생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인용하며 감회를 적은 적이 있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분이 고엽제 후유증이 있다는 사실을 슬쩍 고백한 글이었다. 나의 글을 그 신문의 문화담당 기자가 읽고는 이윤기 선생에게 ‘씹는 글’이 올라왔다고 일러준 모양이었다. 선생은 그때 내 글을 찾아 읽어본 뒤 오히려 내게 관심이 생겼다. 빈섬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한 편 한 편 읽다 보니 중독이 되는 기분이었다고 나중에 털어놓기도 했다. 최고의 작가가 아마추어의 글에 중독되다니, 이건 거꾸로 된 것 아닌가. 어느 날 내가 조영남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이 가수와 친하게 지내던 이윤기 선생이 그 글을 프린트해서 그에게 전해 주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근 1년이 지난 뒤에서야 알았다. 어느 날 같은 직장의 문화부 기자가 찾아와, 이윤기 선생이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 하더라고 전해 준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이윤기 키드’라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스타의 초청을 받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약속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 몇 번이나 전화벨이 울렸다. “빈섬, 어디까지 왔나요?” 과천의 이윤기 선생 댁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대문 밖 멀리까지 나와 기다리는 선생을 만났다. 그는 처음 보는 나의 손을 덥썩 잡고, 두보의 ‘객지(客至, 손님이 오시다)’의 한 구절을 읊으며 감개무량해했다. 천하의 술꾼이던 그는, 가장 아끼던 ‘조니워커 블루’를 내놓았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반찬이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이 환대를 받았던 그 식탁에서 콩잎김치만은 살뜰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분이 군위 출신인 줄 몰랐던 시절에 콩잎의 미각부터 먼저 만난 셈이었다. 선생은 나를 출판사에 적극 추천하여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책으로 내게 하였고, 또 출판기념회 때는 다른 일을 제치고 달려왔다. 이토록 내게 마음을 기울인 까닭을 잘 알기는 어렵지만, 내가 스토리텔링이라는 새로운 일에 눈을 뜨고 힘을 기울이게 된 것에는 이윤기라는 빼어난 스토리텔러의 마중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화창한 봄날과 가을날을 택하여 양평에 있는 그의 농장으로 초청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곳에서 신인(神人)처럼 맨발로 풀밭을 걸으며 신화와 역사를 종횡무진하면서 이야기꾼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2010년 8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이 땅에서 꽃피운 스토리의 비경(秘境)을 통째 잃었다고 할 만하다. 그의 이야기는 콩 이파리처럼 콤콤하고 소탈하여 거칠면서도 깊은 맛이 숨겨져 있다.

“노오란 단풍콩잎을 또옥 똑 따서 물에 삭힌 뒤 마늘, 생강, 고춧가루를 넣고는 물엿을 한 잎 한 잎 묻혀 무명실로 묶었지. 그리고는 항아리에 켜켜이 재웠다가 반찬이 드문 겨울과 이른 봄날에 꺼내먹으면, 그게 그냥 혀에 착착 달라붙지 않는가. 콩잎이 콩알만큼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걸 고장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거지. 안토시아닌이라던가 그런 거 몰라도 말이야. ‘장 청소제’라고 할 만큼 속을 깨끗하게 비워주고 변비도 없애주는 웰빙식 아닌가. 빈섬, 많이 드시게나.”

그리스 신화 바람을 거세게 일으켰던 이 놀라운 작가는, 스스로가 신화가 되어 떠나갔다. 산골 마을에서 된장에 싸 먹는 콩잎쌈 한 입에 이야기를 함께 털어 넣던 그 익살과 너털웃음은, 군위에서 다시 느껴보고 싶은 진짜 구수한 그 맛이다.


◆Story Tip>>>겨우살이 밑반찬이 웰빙식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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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준공한 생산공장에서 콩잎김치 담그기가 한창이다. 최근 제철을 맞아 주문량이 쇄도하고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작가 이윤기의 추억이 담긴 군위 콩잎김치는 이제 웰빙식품으로 각광 받고 있다.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마을에서 출시한 ‘윤팔선 군위 콩잎김치’(대표 윤팔선)가 대표적인 사례다. 윤팔선 콩잎김치는 두메산골 겨우살이 밑반찬을 상품화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향토음식의 성공 모델로 꼽힌다. 농사만 짓던 마을 부녀회 회원들이 모여 개발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윤팔선 콩잎김치는 담그는 방법부터 특별하다. 한 달쯤 푹 삭힌 뒤 콩잎을 살짝 삶아내거나 뜨거운 물로 데쳐 군맛을 우려낸다. 너무 삶으면 깊은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데쳐 낸 콩잎은 물기를 빼고 마늘과 생강, 고춧가루, 물엿 등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낸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함께 먹으면 깊고 담백한 맛이 혀끝까지 전해진다. 또 콩잎을 한 장 한 장 젓가락으로 집어 들여다 보면 고운 빛깔을 머금은 가을 단풍잎이 따로 없다.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도 폭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인 시판에 나서고 있다. 올 초에는 생산공장을 준공하고 홈페이지(www.palsun.co.kr)까지 제작해 본격적인 판로개척에 들어갔다. 특히 유명 백화점으로부터 독점판매 계약을 요청받는 등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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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쯤 삭힌 콩잎은 물기를 완전히 뺀 뒤(위) 마늘과 생강, 고춧가루, 물엿 등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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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잎에는 건강기능성 물질이 무려 16가지나 들어 있다는 농촌진흥청의 최근 연구결과도 한몫하고 있다. 실제 콩잎에는 노화억제 성분인 안토시아닌이 콩에 버금갈 정도로 많이 함유되어 있고, 몸에 좋은 식이섬유도 풍부해 각종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농조합은 앞으로 콩잎김치 외에 깻잎김치와 고들빼기김치, 고추김치, 무말랭이김치, 마늘장아찌, 부추김치, 시금장 등 모두 8가지의 ‘팔선(八鮮) 시골반찬’을 개발해 상품화할 계획이다.

이상국(스토리텔링 전문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공동기획: eride Gye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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