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2] 作家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23·끝> 성석제가 만난 청송 달기약수백숙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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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2-03   |  발행일 2012-12-03 제13면   |  수정 2021-06-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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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달기약수백숙은 닭 한 마리를 통째 약수에 삶아서 요리한다. 여기에 인삼과 황기, 마늘, 대추, 녹두를 넣으면 약선요리로도 손색이 없다. 달기약수백숙 전문인 경남식당에서 차린 백숙이 군침을 돌게 한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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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Memo

청송은 물맛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특히 톡 쏘는 맛이 일품인 달기약수는 청송의 최고 명물 중 하나다. 달기약수는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청송 사람 권성하가 낙향해, 이곳 부곡리 마을 주민과 함께 수로공사를 하던 중에 발견됐다. 이곳에는 원탕인 하탕을 비롯해 중탕, 신탕, 상탕 등이 있는데 처음 발견했을 당시 ‘꼬록꼬록’ 소리를 내며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그 소리가 꼭 닭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처음에 ‘달계약수’라 이름 붙였다가 후에 ‘달기약수’로 불리게 됐다. 달기약수는 강수량과 관계없이 사계절 수량이 일정하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또 철분과 탄산이 다량 함유돼 예로부터 위장병, 신경통, 빈혈 등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달기약수 맛과 효능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관광객이 물맛을 보기 위해 약수터를 찾고 있다.


약수만큼 유명한 것이 청송 달기약수백숙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달기약수로 삶아낸 백숙이다. 백숙은 양념이나 향신료를 넣지 않고 그냥 닭 한 마리를 통째 약수에 삶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철분 함량이 많은 탄산수가 닭 특유의 비린내를 없애 고기맛이 담백하고 부드럽다. 여기에 인삼과 황기, 마늘, 대추, 녹두를 넣으면 약선요리로 손색이 없다. 청송지역 주민은 단오를 전후로 약수터 물이 항상 넘치도록 솟아나게 해준 지신에게 감사하며 백숙을 끓여 제상에 올리고, 제사가 끝나면 나눠 먹었다고 한다. ‘작가,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의 마지막 편은 청송 달기약수백숙에 대한 이야기다. 백숙의 효능과 달기약수의 내력을 이야기식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1

이번이 세 번째 과거 낙방길이었다. 그것도 대과도 아닌 소과, 생원·진사를 뽑는 향시에서 떨어지고 나니 부모는 물론 아기를 볼 낯이 없었다. 선비의 나이는 이미 서른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과에 합격하여 환로에 나가려면 진사, 생원 자리라도 따 놔야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양반의 후예로서의 체면 유지가 가능했다.

도무지 면목이 서지 않았다. 향시 시험장인 감영에서 함께 출발한 고향 선비들을 뒤따르는 척하다 차츰 걸음을 늦추어 마침내 그들과 떨어진 것은 어디 산중 깊은 곳에서 호랑이에라도 물려갔으면 좋겠다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진 것이 목숨이라더니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물을 마시러 계곡으로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기 귀찮아서 계곡을 따라 조금 걸었더니 원래의 길을 도로 찾을 길이 없었다. 귀신에 홀린 듯 산속을 헤매기 얼마였는지 날은 저물어오고 허기가 져 왔다. 방 안에 들어앉아 공부만 하느라 생긴 속병에 어지럼증까지 겹쳤다. 그는 침을 삼키고 힘을 모았다.

“게 아무도 없소? 여기 사람 좀 살리시오. 누구 나 좀 살려주시오!”

하지만 그의 말에 응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맞은편 산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쩌렁 하고 울렸다. 그건 마치 “나는 이 산의 왕이다. 목숨을 내놓아라!” 하는 포고처럼 들렸다. 그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땅에 풀썩 주저앉았다. 몸이 겉잡을 수 없이 덜덜 떨렸다.

얼마나 그런 채로 앉아 있었을까. 날은 이미 칠흑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선비는 겨우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길이 있다 한들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식경이 지나자 힘이 다하고 의지도 한계에 달했다. 이대로 죽는구나 할 때 어둠 속 어디선가 꼴꼴꼴 하고 어미 닭이 새끼 닭을 불러모을 때와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인가가 가까이 있는 것일까. 선비는 소리 나는 곳으로 있는 힘을 다해 한 걸음씩 옮겨갔다. 발 아래의 가랑잎이 축축해진 것으로 보아 샘이 바로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목을 축일 샘도, 목숨을 살려줄 불빛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굶주림과 갈증, 추위,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 혼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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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청송읍 부곡리에 있는 달기약수탕(疸基藥水湯). 처음 발견했을 당시 ‘꼬록꼬록’ 소리를 내며 물이 솟아났다고 해서 달기약수라 부른다. 탄산이 많아 톡 쏘는 맛이 강하고, 설탕을 타서 마시면 사이다와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2

 

꿈 속에서 선비는 닭이 홰를 치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름답고 깨끗한 초당이 있었고, 그 앞의 마당에 어미 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는 중이었다. 주변에 푸른 소나무가 울창했고, 학이 날고 있었다. 개천에는 푸르고 맑은 물이 흐르고, 집 뒤로 병풍 같은 산이 뒤에 솟아 있었으며, 주변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선경인지 무릉도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어떻든 모든 사람이 그곳에 가서 살고 싶어하는 길지, 명당임은 분명했다. 선비는 경관을 제대로 기억해 두려고 주변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이마를 찔러오는 거대한 손가락이 보였다. 그는 깜짝 놀라서 일어나 앉으려 했으나 “아이쿠” 소리를 내며 다시 눕고 말았다. 현기증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사시는 선비신지 모르지만 이 집 주인 아니면 아사하시거나 짐승의 해를 입을 뻔했소이다.”

거북껍질 안경을 쓴 의원이었다. 그는 선비의 이마를 짚고 진맥을 한 뒤, 탈진해서 기절한 것이니 몸보신이나 잘 하라는 처방을 내리고는 가버렸다. 이윽고 마마로 얼굴이 살짝 얽은 소녀가 꿀을 진하게 탄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 그는 몸을 반쯤 일으켜 허겁지겁 꿀물을 들이켰다. 그런데 물맛이 달랐다. 쇠맛이 나고 입안을 쏘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신선이 산다는 선계의 영천(靈泉) 물맛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소녀에게 물었다.

“물맛이 왜 이러냐?”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약수라 그렇습니다.”

“아무나 먹을 수 없다? 그 약수의 이름이 무엇이냐?”

“달기약수라고 합니다. 약물이 솟아날 때 암탉이 우는 것처럼 꼴꼴거리는 소리가 나지요. 샘 바닥은 닭벼슬처럼 벌겋습니다. 마시면 철이 든다 합니다.”

열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한 몸종 차림 소녀의 말품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다시 물었다.

“여기 집주인이 어떤 분이시냐?” “주인 마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럼 안주인만 계시느냐? 허허, 누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소녀는 물맛처럼 톡 쏘는 말투로 도련님을 모시고 오겠다고 하며 몸을 돌렸다. 열린 문으로 장대한 산봉이 들어왔다. 꿈에서 본 산과 비슷했다.

이윽고 소녀와 나이 지긋한 여자가 상을 든 채 마당을 건너왔다. 상 위에는 김이 오르는 닭백숙이 올라 있었고 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상을 들여놓은 소녀는 그에게 도련님이 곧 건너오실 것이라 했다. “기운이 없고 시장하실 테니 먼저 요기부터 하시랍니다.”

벌써부터 그는 허기가 지다 못해 속이 쓰려오고 있었다. 그는 체면을 돌보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찹쌀, 마늘과 함께 푹 고아진 닭백숙은 약수로 조리를 해서 닭고기에서 흔히 나는 느끼한 맛이나 비린내가 없이 담백했고, 육질이 부드러웠다. 약수 때문에 죽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났는데, 기운이 나게 하는 보양식이 틀림없었다. 그는 정신없이 상을 비워 나갔다. 그가 부른 배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 초립을 쓴 도령이 나타났다. 아직 관례를 하기 전인 듯 얼굴은 어려 보였고, 표정은 맑았다.


#3

통성명을 마치고 난 뒤 선비는 목숨을 구해준 데 대해 인사를 차렸다. 도령은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응답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어머니가 하나뿐인 자식의 장래를 위해 매일 약수를 떠다 놓고 정성을 다해 비는데, 그 과정에서 쓰러져 있는 선비를 발견해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 약수가 사람 소원을 이뤄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위장병이나 어지럼증, 신경통, 부인병에는 특효가 있다 합니다.”

선비는 바로 자신에게 어지럼증과 위장병이 있다고 한 뒤, 부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직 부인병은 없다고 하고는 혼자 껄껄 웃었다. 이어 그는 병풍을 두른 듯한 산에 대해 물었다. 도령은 산 이름이 주왕산(周王山)이라고 했다.

“허어, 저 산에서 내가 헤매다 죽을 뻔하지 않았나. 그중에서도 저 산봉이 심히 웅장하구나. 봉우리 이름이 무엇인고?”

“기암(旗巖)이라 합니다.”

그는 아는 체했다.

“과시 사람의 이목을 현혹하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이니 그런 이름이 붙을 만하겠다.”

“그 기암이 아니라 깃발을 뜻한 기입니다. 저기서 당나라 때 반란을 일으키고 왕을 참칭한 주도라는 사람이 저기서 죽었다 하여 산 이름이 주왕산이 되었고, 그때 주왕을 토포했던 신라의 마장군이 기를 세운 봉우리라 하여 기암이…”

그는 약간 무안해졌다. 그것을 감추려고 오히려 열을 올려 말했다.

“그 무슨 당치 않은 헛소리야. 당나라는 아조선(我朝鮮)의 천년 전에나 있던 나라이거늘. 그 당나라의 주도가 이 벽촌 오지까지 무엇하러 왔겠는가. 그리고 무슨 수로 신라의 장군이 감히 당나라 임금을 죽일 수 있었겠나. 무식한 촌부들이 통감을 읽었을까, 당서를 읽었을까.”

그때 도령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선비께서는 은나라 주왕(紂王)의 비첩 달기(己)에 대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주왕산 아래 달기약수가 있는 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으십니까?”

“무식이 줄을 잇는구나. 그 주왕과 이 주왕은 턱도 없이 다른 글자이니라. 달기는 닭의 울음소리에서 나왔다 하였는데 어찌 폭군 주왕과 천하의 요부 달기가 이곳과 상관이 있을까.”

도령은 몸을 바로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은 비록 시골이긴 하지만 퇴계 선생의 관향인 진보와 지척입니다. 선비께서는 사람이 천지지중 만물지간에 으뜸가는 기운(秀氣)을 타고 났다 하신 퇴계 선생의 말씀을 어찌 여기시는지요. 으뜸가는 기운이 곧 사람의 말이 아닐런지요. 사람의 말이 어떤 짐승, 벌레보다 공교하므로 사람이 말로써 인의예지를 세우고, 말의 정화인 문자로 지혜를 물려내려 지금의 문명한 세상을 이루었습니다. 비록 기암과 주왕이 실제의 역사에 부합하지 않고 사실을 잘 모를 데가 있을지라도 예부터 그런 이야기와 문자를 만들고 쓴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촌사람들의 헛말이나 장난으로 여기신다면 온당치가 않은 일인 줄 압니다. 이제 심신이 모두 기운을 회복하신 듯하니 편히 고향까지 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선비가 뭐라고 할 겨를도 없이 도령은 두 손을 들어 가슴께에 올려 인사를 한 뒤 돌아가버렸다. 잠시 뒤에 소녀가 약수가 가득 든 그릇을 들고 왔다. 선비는 생각에 잠긴 채 약수를 모두 마셨다. 약수 덕분인지 길을 떠나기 위해 일어설 때 어지럽지 않았다.

성석제(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공동기획: eride Gyeong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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