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17] 대구 달성군 다사읍 ‘정강희 두부마을’ 의 정강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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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3-15   |  발행일 2013-03-15 제42면   |  수정 2013-03-15
古조리서 심취…꿩·토종닭·조기·전복·쇠고기 말려 '어육장' 재현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17] 대구 달성군 다사읍 ‘정강희 두부마을’ 의 정강희
한국 장류문화와 두부 문화의 신지평을 열기 위해 늦깎이로 고조리서 연구에 푹 빠진 정강희 오너셰프. 최근 고조리서에 의거해 어육장을 재현했는데 내년 2월에 공개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식당?’

갈수록 희망의 징조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식재료를 너무 경솔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꾸 양념맛으로 손님을 현혹하려고 한다.

기자는 가끔, 취재 전에 오너셰프에게 “공장간장을 사용하느냐”고 잘 묻는다. 음식에 나름 자존심이 있다면 양조간장(진간장) 정도는 자신이 직접 제조해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식당 텃밭서 농사…각종 식재료 재배해

옹기 수십개…작년 콩 13가마로 장 담가

두부·청국장 위주 집밥 같은 음식 제공

화학조미료는 절대 사용않는 원칙 지켜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17] 대구 달성군 다사읍 ‘정강희 두부마을’ 의 정강희
예전 궁중에서 국상 났을 때 먹던 두부숙편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17] 대구 달성군 다사읍 ‘정강희 두부마을’ 의 정강희
달성군 사찰비빔밥.


◆ ‘어육장’을 재현하다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정강희 두부마을’ 대표인 정강희 오너셰프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집은 이미 다사쪽에선 꽤 유명하다. 가창면 우록리의 ‘큰나무집’과 함께 달성군 지정 사찰음식전문점이며, 지난 1일부터 달성군 사찰요리연구회 회원업소와 동일한, 레시피의 해초(톳)가 들어간 사찰비빔밥을 내고 있다.

주인의 음식에 대한 열정과 좋은 식재료에 대한 집요함 덕인지 그곳 아줌마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화학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기 때문에 맛이 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도 건강한 밥상을 내고 싶어한다.

정 셰프는 어육장(魚肉醬)을 자신의 집에서 고조리서에 의거해 재현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같이 약삭빠른 시절에 담기 번거롭고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어육장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감동의 어육장 재현 현장으로 달려갔다.

어육장은 점심 직후 만들었는데, 오전엔 고조리서 연구가 정모 교수의 ‘조장법(造醬法)’특강이 있었다.

산가요록,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요록, 치생요람, 주방문, 음식보, 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시의전서…. 무려 16권의 고조리서에 등장하는 별의별 장에 대한 레시피를 수강생에게 다 알려주었다. 분위기가 너무 진지했다. 정 교수의 자태는 예전 수라상을 책임지는 수라상궁을 방불케 했으며, 회원들은 ‘대구의 대장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성적으로 수업을 경청했다. 신농씨가 먹고 죽은 풀이 ‘단장초(斷腸草)’란 사실을 알려주자 정 셰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장초에 밑줄을 긋는다.

“정말 고조리서는 지혜의 보고예요. 가령 ‘치생요람’이란 책을 보면 삼복 중에 장을 담그거나 해가 떠오르기 전 또는 해가 진 후에 장을 담그면 파리가 생기지 않고, 장에 구더기가 생기면 초오근(草烏根·투구꽃 뿌리)을 잘라 네 조각을 넣으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음식은 지식 투성이이고 예전 음식은 안목 투성이 같아요.”

어육장은 규합총서와 증보산림경제에 나오는 스타일을 절충해서 만들었다.

산약초에 매료돼 있고 아내를 돕기 위해 직접 두부 만드는 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정 셰프의 남편도 아내의 열정을 이기지 못한다. 인부와 함께 근처 텃밭에 10말들이 큰 옹기가 김칫독처럼 땅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삽질을 도와주었다.

꿩 10마리(마리당 2만6천500원을 주고 비슬농장에서 구입), 토종닭 10마리, 조기 작은 것 15미, 전복 15미, 쇠고기 우둔살 10근이 준비됐다. 이미 바짝 마른 상태였다. 말려야 제맛이 나기 때문에 군불 땐 황토방에서 3일가량 말렸다. 최소 3일에서 1주일 걸리는데, 말리기 전에 한번 데쳐야 한다.

“명색이 순두부·청국장 전문점이라면서 예전 전통 장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 정 선생님을 졸라 전통장을 만들게 됐습니다. 어육장은 옛날 궁중에서 조미료 대신에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1년간 숙성하면 먹을 수 있습니다. 장맛은 퓨전 진간장 같을 거고 고기도 장조림 같은 맛이겠죠. 그때 맛보러 오세요.”

전통장에 대한 정 셰프의 열정이 더 폭증하고 있다.

“다음엔 그 어렵다고 하는 팥을 갖고 만드는 된장에 도전해 볼 겁니다. 그 다음은 콩깍지장, 특히 밀가루처럼 뽀얀 보리등겨를 불에 구워 만드는 추억의 등겨장(시금장)도 경상도 된장의 자존심이니 만들어 봐야겠죠.”

◆ 식재료에 목숨 걸다

네 식구 모두 음식에 매달린다. 큰딸 지혜는 고조리서 연구에 심취해 있다. 현재 대구한의대 한방식품조리영양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아들 진욱은 대구한의대 한방자원학과에 재학중인데 가업을 잇는 수업을 받고 있다.

정 셰프가 식당을 차리게 된 건 어떤 연유일까.

“엄마의 장맛이 정말 맛있어요. 이미 20년 전에 유기농에 눈을 떴고, 다사쪽에서 맨 먼저 부추농사를 시작한 아버지는 미식가였습니다. 전국을 다녀보고 괜찮다는 음식을 직접 만들기도 했는데 특히 미강(쌀의 눈)을 갖고 요리를 해보라고 제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결혼한 뒤 분가해서 분식집을 차렸다. 김밥, 손칼국수, 메밀묵 등을 팔았다.

“저는 그때부터 꼴통 기질이 있었어요. 식재료를 절대 속이지 않고 무조건 최고급만 찾았어요. 뭐든지 제손으로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메밀묵도 직접 쑤고, 홍두깨로 직접 밀어 손칼국수를 요리했습니다. 국산 참기름을 사용했는데 적은 양으로 깊은 맛을 내니 단가면에서도 결코 낭비는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 때문에 가을걷이 때가 되면 콩, 깨 등을 1년치로 사놓는다.

식당 주변에 수호천사 같은 텃밭이 있다. 현재 농사 짓는 면적은 4천950㎡. 음나무, 가죽나무, 명이나물, 상추, 보리똥, 방풍나물, 당귀, 머위, 취나물, 삼동초, 오이, 가지, 호박, 풋고추, 고구마까지 나온다. 시장에 가서 사오는 건 여름배추, 무, 대파, 양파, 참나물 등이다. 거의 매일 매천·칠성시장과 농협하나로마트, 그리고 성주의 시골장까지 찾는다.

지난 가을철의 경우 콩은 영주·영양·성주, 깨는 예천농협에서 샀다. 그녀가 예천농협에 가면 유전자 변형검사까지 해서 농작물을 판다는 정보도 준다. 고춧가루는 영양과 직거래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콩 13가마 분량을 갖고 장을 담았다. 옹기도 수십 개나 있다. 요즘은 효소에 빠져 와송, 오미자, 매실, 다래, 돌복숭아, 으름 등을 갖고 만든다.

4년 전 지금 자리에서 식당을 연다.

“외식을 한 뒤 느낌이 별로였습니다. 나가서 맘 놓고 먹을 음식이 너무 적더군요. 먹을 만하면 가격이 비싸고…. 가격 저렴하고 집밥 같은 음식을 팔고 싶었습니다.”

두부·순두부·청국장을 축으로 한다.

“국산재료가 없을 경우는 제외하고 나머지 재료는 국산을 사용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주방 이모들이 부담스러워하는데 계속 설득했습니다. 주방에는 화학조미료통이 없어요.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손님이 밍밍한 전골이 맛없다고 항의하면 ‘그렇지만 몸에 좋잖아요’라며 맞섰습니다.”

장을 제대로 담그기 위해 경남 산청 오덕원 김애자 원장의 장 담그는 법을 배웠다.

멸치젓갈도 못 믿어서 직접 담근다. 이미 발효가 된 집간장을 멸치젓 담글 때 함께 넣어 같이 발효시키는데 3년 후에 내면 어간장처럼 된다. 일반 젓갈보다는 뒷맛이 감미롭단다.

◆ 고조리서에 빠지다

그녀는 요리를 하면 할수록 자기가 제대로 된 오너셰프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

선조들의 요리법이 궁금했다. 작년 6월, 드디어 일을 저지른다. 경남 합천군 한국전통식품연구소(소장 이상근)에 약선을 공부하러 갔다. 거기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약선을 갖고 센세이션을 일으킨 안문생 한의사에게 수학했다. 약선조리설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궁중요리 중 한과와 떡 전문가인 배숙희씨를 주축으로 서울에서 고조리서를 연구하는 정모 교수에게도 배우기 시작한다.

매월 둘째주 월요일 그녀가 직접 딸과 회원을 태우고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사무실에서 5시간씩 공부하고 내려왔다. 작년 말에 중증 디스크에 걸려 고통을 받으면서도 상경, 공부를 하러 오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생이 지난 1월부터 직접 대구로 내려오고 있다.

“길게는 10년 작정하고 한국 고조리의 역사를 배우고 싶습니다. 다음달부터는 수운잡방을 배우게 되는데 보는 족족 고조리서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직접 황토로 된, 청국장을 묵히는 토방도 만들었다. 그 옆에 공부방이 있다. 의방류치, 향약집성방,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산가요록, 제민요술, 동의보감, 동의학사전…. 여느 교수 연구실 같았다. 하지만 이젠 시작이란다.

원광디지털대 한방건강학과에 재학중인 그녀는 북한요리도 공부할 계획이다. 그녀의 꿈은 뭘까?

식구와 함께 고조리서 연구를 하며 오염되지 않은 근교에 농장을 마련해 남편과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젓갈 효소 장아찌를 개발하고 싶단다.

식당을 떠날 때 두부숙편(예전 국상 때 임금이 고기 대신 먹던 음식으로 표고버섯·두부·참기름으로 쪄낸 음식) 맛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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