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19) 대구 수성구 ‘앙뜨레 누보’의 박현석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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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5-17   |  발행일 2013-05-17 제42면   |  수정 2013-05-17
과학적 요리법으로 완전히 새로운 스테이크를 창조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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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뜨레 누보의 메인 메뉴인 안심 스테이크. 고기 위에 토핑된 에스프레소 거품이 음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풀코스 부티크 프랑스 디너 테이블. 솔직히 그런 데 전혀 경험 없는 자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좌를 구경하기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 중심부 라스칼라나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로비에 서있는 심정이다. 일단 주문 담당 웨이터에게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할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보이는 프랑스 메뉴명 앞에서 너무 질려 미뢰(Taste bud)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결국 ‘아무거나 메뉴’에 낙착한다. 한 도시에 새로운 버전의 레스토랑이 생긴다는 건 흥분되고 설레는 일이다. 사장이 오너셰프이고, 자신의 일생이 투입된 공간이라면 그곳의 인테리어, 메뉴라인, 서빙 매너, 음악 등이 모두 분석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대구에서도 분자요리를 처음 맛볼 수 있게 됐다. 올해 그랜드 오픈한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앙뜨레누보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3년전 강남구 신사동에 정식당의 오너셰프 임정식씨가 분자요리(과학기법을 이용한 첨단요리로 스페인 최고 레스토랑 엘불리 수석주방장인 페란 아드리아가 창시)를 선보여 뉴스메이커가 됐다. 앙뜨레(Entree)는 ‘식사 전 나오는 두 번째 전채요리’, 누보(Nouveau)는 ‘새롭다’는 의미다. 올해 37세의 싱글 오너셰프 박현석씨는 약 20명의 직원을 종일 핸들링해야 된다.

 

소위‘분자요리법’적용
에스프레소 거품 토핑·
치즈 튀김·에어초코 등
변형된 색다른 맛 선사
망고 스펠리코는 명물로

 

조리사·서빙종업원도
손님 입장서 시식하며
문제점 찾는 등 철저…
메뉴라인 분기별 교체
양심적인 가격도 눈길

 

◆ 심플하고 쿨하고 디럭스한 인테리어

인테리어라인을 분석해봤다. 극도의 심플함을 추구한다. 돈이 부족한 탓에 건축비용을 줄여야만 했다. 굿디자인 파일을 참고해서 짜깁기 디자인을 했다. 1층은 화이트톤으로 갔다. 동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주기 위해 아치기법도 동원했다. 1층 천장의 한 포인트를 강화유리로 처리하고 그 자리에 황금빛 사과 조형물을 설치했다. 하지만 그는 돈을 아끼려고 했던 걸 뼈아프게 후회한다.

“공사 때 힘들었다. 지인 업자를 통했다. 3개월이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391일 동안 공사를 했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설계가 필요하다. 싼 데 맡겼지만 하자와 부작용에 시달렸다. 내가 모르는 분야라서 그렇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이었다.”


◆ 취사병 출신 유럽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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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석 오너셰프가 자신의 사상적 멘토인 스티브 잡스를 상징하는 쇠로 만든 사과를 들고 싱그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대구 출신인 그는 경신고와 대구산업정보대(현 수성대) 금융회계과를 나왔다. 군대에서는 취사병이었다. 취사반장을 맡으면서 조리인의 기본 소양과 시스템 등을 본격적으로 습득해 나가면서, 나름의 끼를 스스로 발견한다. 타 연대에까지 맛있다고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조리병 집채교육에 나가서 전체 1등을 했고 연대장 표창까지 받았다.

제대 후 조리사의 꿈은 잠시 접었다. 의료기 방문판매 영업을 하면서 지점내 최연소 판매왕까지 차지한다. 영업이 내 길인가 싶었다. 금융기관에 계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금융기관과 나중에는 법무사 등기 사무장을 거치면서 또래의 월급쟁이 친구들보다는 좀더 월수입이 높았다. 하지만 인간미 없는 직업에 갑자기 깊은 회의를 느낀다. 보람이 있는 직업을 찾아보고 싶어 유럽 배낭여행에 나선다.

여행 내내 배고프고 돈 없는 배낭족 청년이었다. 맛있겠다는 눈초리로 쇼케이스로만 쳐다본 빵, 아이스크림, 피자 등을 공짜로 얻어 먹게 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그 따뜻한 가게에 장인급 오너셰프가 있었다. 문득 깨달음이 생긴다. ‘아! 인종을 떠나서 사람은 누구나 첫째도 둘째도 먹어야 사는 것이다.’

귀국해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대구에서는 괜찮다는 레스토랑을 순례한다.


◆앙뜨레 누보의 오픈 배경

그는 오로지 먹어보기 위해 유럽으로, 서울로, 월급의 몇배나 지출해 가면서 괜찮다는 집의 인기 메뉴를 먹으러 다녔다.

특히 스페인의 페란 아드리아가 운영하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엘불리라는 레스토랑을 무척 동경했다. 2년 걸린다는 예약까지 해놓았다. 아쉽게도 지금은 폐업하고 없어졌다.

엘불리에서 선보이던 당시 충격적인 음식이었던 분자요리에 큰 자극을 받는다. 즉시 우리나라 최초의 엘불리 출신 요리사 황선진씨가 강의하는 분자요리 강의를 신청하여 수강한다. 대구 시장을 해부해 봤다. 결국 오너가 전적으로 셰프에게 일임하거나 또는 셰프가 직접 경영하는 레스토랑만이 그나마 롱런 할 수 있다고 봤다. 스마트폰 문화 탓에 레스토랑 손님 세대교체까지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적어도 대구에서는 트렌드를 이끌어가면서 대구입맛과 최소한의 타협을 해나간다면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앙뜨레 누보의 아이덴티티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이다. 업장의 규모와 주력 판매음식과 상관없이 장인정신이 담긴 레스토랑을 추구한다. 메뉴, 인테리어, 음악, 서비스, 위생 등이 원스톱으로 돌아가는 오감만족 식당구축이다. 맛과 멋의 공존이다.

양심적인 가격도 중시한다. 요즘 레스토랑 음식가격이 이유 없이 비싸다고 본다. 비싼 인테리어로 치장만 해 놓고 비싸게 받아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싶었다. 식자재 가격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푸아그라나 철갑상어 등 고가 식재료를 제외하면 그렇게 비쌀 이유가 없다. 식자재 외 광고비 현수막 등의 경상경비를 절약한다면 충분히 착한 가격을 줄 수 있다. 직원의 자존감을 위해 항상 직원의 애인과 가족에게 50% 할인을 해준다.


◆ 메뉴라인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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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를 튀기고 망고를 다시마즙에 굳혀 만든 막 안에 가둬 흡사 계란 노른자처럼 보이는 앙증맞은 분자요리가 식감을 돋워주고 있다.
분자요리 감각이 포함된 메뉴는 뭘까.

스테이크 위에 토핑되는 에스프레소 거품, 치즈 튀김, 망고 스펠리코. 젤리가 가미된 오이 피클, 에어초코 등이다. 특히 다시마의 끈적한 성분을 갖고 막을 형성해 그 안에 망고주스를 랩핑한 스펠리코는 이미 이 집의 명물이 됐는데 처음 본 사람들은 다들 계란 노른자로 착각한다. 렌틸콩도 스테이크 소스 위에 올리고 수프도 매일 바뀐다. 스테이크 소스도 그리스의 바다처럼 참 맑으면서도 깊은 단맛이 감돈다. 포트와인을 걸쭉하게 졸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빵 파트에서는 매일 구워낸 그리시니(스틱 건빵), 동그란 바게트, 유자빵 등을 낸다. 씹어도 찰떡처럼 들러붙지 않는다. 효모와 발효가 잘 됐다는 증거다. 디저트로는 수제 마카롱이 나온다. 아이스크림 같은 우유푸딩과 아이스크림 같은 무스케이크는 입자가 정말 부드럽다. 점심은 2만6천원∼져녁5만2천원.

맛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오너셰프의 상냥한 쌍꺼풀과 밝은 미소, 그리고 영국 신사 같은 헤드 매니저 박설호씨의 스타일리시한 친절함과 매너가 혀 끝에 오래 남아 있었다.

leekh@yeongnam.com


◆ 박현석 셰프 일문일답

-오픈 행사는 어떻게 했나.

“오픈 행사는 촌스럽다고 봤다. ‘개업발’을 외면했다. 좋으면 구전으로 알려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오픈한 날 한 테이블만 받았다. 어떤 날은 공을 치기도 했다. 참견하는 사람이 많았다. 간판은 초대형으로 가라, 현수막 내걸어라, 광고를 해라 등 온갖 주문이 난무했다. 일단은 웃고 넘겼다. 한달간 직원끼리 팀워크만 다졌다.”

- 주 공략층은 누군가.

“일단 나름 구매력이 있는 수성구 아줌마 부대를 겨냥했다. 이를 위해 화장실에 신경을 썼다. 샤넬 향수도 두고 파우더 룸도 세웠다.”

- 대구 레스토랑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나. 나름 독특한 경영철학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백’상태라고 본다. 요리사들이 타성에 젖은 탓이다. 이 집 요리사가 저 집에 가고 저 집 요리사가 이 집에 온다. 다 비슷한 메뉴다. 직원의 서비스 마인드가 매우 중요하다. 일단 홀 서버도 교육이 끝나면 직접 손님이 되어 테이블에서 풀코스 요리를 먹도록 했다. 손님에게 각 메뉴를 설명하려면 실제 먹어봐야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상당수 지역 레스토랑 서버는 서빙하는 메뉴를 거의 먹지 못하고 있다. 우린 조리사도 자기가 요리한 걸 직접 손님이 되어서 먹게 한다. 그래야 자기 요리가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서버도 서버끼리 서비스에 문제가 없는지 쌍방향 체크를 한다. 메뉴판도 계속 챕터(Chapter)1·챕터2 하는 식으로 분기별로 메뉴라인을 교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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