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4) 북구 고성동 진국닭개장 이동수·이기주 부부셰프

  • 이춘호
  • |
  • 입력 2014-03-07   |  발행일 2014-03-07 제41면   |  수정 2014-03-07
온정성 다해 한약 달이듯 육수를 빼니 진국이 나오더라
20140307
이동수 이기주 부부가 “평생 닭개장 하나에 목숨을 걸겠다”면서 다짐하고 있다.
20140307
만들기 까다롭다는 이유로 지역에서 맛보기 힘든 닭개장 레시피를 무려 4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북구 고성동에 있는 진국닭개장의 상차림.
20140307
화학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뼈를 푹 고아 진액 국물로 만든 진국닭개장.
20140307
닭개장 못지않게 전통의 향미를 갖고 있는 빈대떡.


먹기는 쉽지만 국은 뭐든지 간에 참 끓이기 어렵다.

국에 들어가는 식재료의 여물기가 서로 다르다. 그걸 무시하고 한꺼번에 끓이면 재료가 너무 물러버린다. 식감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국은 한 번 먹고 끝이 아니라 남은 걸 잘 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하루에 100명 이상이 몰리는 대중식당에선 한꺼번에 수백 명분을 끓여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데워 내 줄 수밖에 없다. 자칫 하절기 재고관리를 잘 못하면 변질돼 다 버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도 야기된다.

예전에 경상도 대표적 복날 음식으로 유행했지만 이젠 식당가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메뉴가 있다. 바로 닭개장이다.

최근 한 독자로부터 북구 고성동에 상당한 내공을 가진 닭개장 전문점이 있다고 제보를 받았다. 확인해 본 결과 그 집은 닭개장 단품만 팔고 있었다. 그 메뉴에 나름 확신과 경쟁력이 없고선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라인이 아니다.

진국닭개장이 기존 대구 육개장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경주 양동마을에서 진국닭개장까지

50대 후반으로 접어든 이동수·이기주 부부셰프.

특히 남편 이동수씨의 표정은 전장으로 나가기 직전의 군인처럼 당당한 기백 같은 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경주 양동마을의 기틀을 마련한 회재 이언적의 후손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식당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에 직장생활을 했고 1993년부터 건축자재 대리점을 꾸려나갔다. 순조로운 나날이었는데 어느 날 직원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발생한다. 설상가상 IMF외환위기 여파로 인한 부도까지 발생, 한 가정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2004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멀티플레이어 생활을 시작한다. 사무실 문을 닫으면 밤에도 쉬지 않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숯불 바비큐 체인점을 꾸려갔다.

“멀리서 보이는 숲도 가까이 가보면 달라 보이듯 새로운 사업도 그랬습니다. 평소 집에서도 음식하는 게 재미있고 즐거웠지만 장사는 취미생활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절감했습니다. 평소 대충대충 움직이면 돈이 손쉽게 벌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2005년 경험부족으로 백기를 들고 식당을 접는다. 하지만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뭔가 조금만 보강하면 식당이 본궤도에 오를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남구 대명동 영대네거리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다시 값비싼 교훈을 얻는다. 음식에 별다른 기술이 없어 일단 체인점으로 갔는데 체인사업부의 무성의와 운영미숙, 믿었던 주방장의 횡포 등으로 또다시 고배를 마신다. 사는 게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별난버섯집과 주원산오리는 부부에게 멍에가 되었다. 체인가입비와 시설비, 인건비 등의 투자비, 가게 세도 못 낼 정도의 형편없는 수입으로 인해 6년간 죽을 고생을 한다.

“궁리 끝에 이 자리에서는 재기 불능이고, 다른 장소에서 우리만의 메뉴를 개발해서 주방장 없이 아내와 제가 직접 운영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역시 두 마리 토끼는 무리였다. 건축자재 사업도 접는다.

IMF 환란 때 생활苦
체인점 운영 실패연속
“우리만의 메뉴가 살길”
작고한 모친 해주시던
닭개장·빈대떡에 승부
4년간 시행착오 끝
화학조미료 사용 않고
변함없는 국물 맛 유지

◆닭개장에 가족의 모든 걸 걸다

뭘 할까.

가족회의 끝에 자식의 건의로 부부가 자주 해 먹던 닭개장과 빈대떡으로 신 메뉴를 결정한다. 두 음식 모두 반가 종부의 손맛을 갖고 있었던 작고한 모친이 자주 해주시던 집안음식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일단 쇠고기국은 흔하지만 닭으로 만든 육개장은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저희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올인 할 메뉴는 정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어떻게(HOW)였다. 메뉴 선정보다 그 메뉴를 어떻게 절정의 수준으로 도약시키는가가 더 난제였다.

지금의 맛을 내기까지 4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구는 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닭개장’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시작했으나 정말 어려웠다. 이왕 하는 거라면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의 착한식당에 선정될 정도로 몰고가자고 다짐한다.

문제는 화학조미료. 살펴보니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소량을 사용하고 있었다. 조미료가 특별한 재주가 없는 조리사에게 일정한 맛을 내게 해주는 식품계의 수호천사였지만 이런 식으로 가업으로 이어갈 식당을 만든다는 건 천부당만부당 할 것 같았다. 그래선 절대 소문날 닭개장이 될 수 없었다.

◆닭뼈 육수가 묘수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문득, ‘삼계탕의 육수는 닭발과 닭뼈에서 추출한 육수를 사용하던데’란 생각에 그 육수를 닭개장에 접목시켜 봤습니다. 닭뼈를 10시간 가까이 진액으로 고아 내니 아주 좋은 맛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육수의 혼합비율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었다. 밍밍했다가 느끼해졌다가 신맛이 나다가 너무 뻑뻑해졌다가. 정말 맛이 들쭉날쭉했다. 더 큰 문제는 들어가야 될 채소의 구성 비율, 양념의 구성비율에 따라 또 맛이 달라졌다. 또한 끓이는 시간에 따라도 달라졌다. 그렇게 4년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 조미료 맛을 안 손님은 갑자기 조미료 맛이 안 느껴지자 그때부터 맛이 변했다면서 발길을 끓었다. 음식의 맛이 결국 ‘혀 끝의 예술’이었다. 한 번 끓이면 100인분, 잠시 방심하면 금방 맛이 가버려 다 버려야만 했다. 맛이 없어 버리고 잘못 보관해서 버리고.

“왜 국 끓이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국솥으로 뛰어들고 싶더군요.”

닭개장 앞에 진국이란 말을 붙인 건 그만큼 부모를 위해 약을 달이듯 육수를 뺐기 때문이다. 닭개장에는 유별나게 기름이 많이 엉긴다. 그는 육수를 추출하는 순간 위로 떠오르는 기름을 모두 걷어냈다.

2011년 5월에 오픈했을 때 아는 사람을 불러오기 위한 형식적 오픈행사를 하지 않았다.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지인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맘을 먹는다. 그런 비장한 각오가 먹혔던지 4년 만에 거의 일정한 국물맛을 유지하기에 이른다. 며칠 계속 비슷한 맛이 나오자 남편은 주방 한편에서 혼자 울컥한 가슴을 몇번이나 쓸어내려야만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처음 양념을 만들 때는 모친이 닭개장 만들 때 하던 양념을 떠올리며 배합비율을 조절하였으나 실패였다. 어떨 때는 시중의 닭개장 집들을 수소문해서 시식해 봤지만 조미료 맛이 너무 강해 내용물을 참고할 수가 없었다. 줄 선다는 어떤 집은 맵고, 조미료탕이어서 몇 숟갈 못 먹고 곧바로 설사가 났다. 부부는 다짐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자고. 부부는 매일 점심때 닭개장을 먹는다. 미세한 맛의 변화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객지에 있는 아이들한테도 보내주고 있다. 현재로는 현상유지 하기가 급급하나 조금 더 분발해서 형편이 호전되면 무료급식소도 같이 하고 싶단다. 사업실패로 없어보니 없는사람 사정도 잘 알게 되었다. 식당하기 전에는 목욕봉사도 다녔고, 성당의 성가대도 했지만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모든 걸 접고 오직 식당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닭개장은 왜 육개장보다 끓이기가 더 힘들까

육개장은 쇠고기를 잘라서 넣으면 끝인데 닭개장은 닭을 삶아서 찢고, 찢는 시간이 2시간 정도 걸린다. 뼈와 살과 기름을 분리시키는 과정도 있다. 일반 쇠고기국보다 더 기후에 민감하다. 하절기에는 100% 냉장고에 들어가야 한다. 손님 올 때만 다른 냄비에 덜어내 끓여야 한다. 100인분을 끓이고 즉시 모두 얼음물에 식힌다. 그래야 채소가 물러지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1시간 이상 밖에 두면 벌써 냄새가 난다. 잠시 한숨을 돌릴 수가 없다. 이 집에선 육계를 사용한다. 원래 닭개장은 폐계를 이용해서 끓이는데 3~4시간 끓여야 한다. 토종닭은 솔직히 가격이 워낙 비싸서 단가가 맞지 않았다. 닭개장은 고기보다 국물맛이다. 그러기 위해선 채소 비율을 잘 갈무리해야 된다. 초창기에는 우거지, 대파, 콩나물, 고사리, 부추,토란 등을 넣고 끓였는데 토란은 즉시 먹을 때는 좋은데 며칠 지나면 급격하게 물러져서 제 식감을 못 내서 없앤다. 무도 넣었다가 별로라서 뺀다. 콩나물도 시원함을 위해 머리를 딴다.

◆비법 레시피(100인분)

100인분 만들기 위해선 국산 고춧가루 600g, 베트남 땡초 110g, 천일염 410g 안팎, 마늘 1㎏, 닭 10마리, 우거지 5㎏ 안팎, 대파 8㎏, 두절콩나물 5㎏, 고사리 1㎏, 부추 3단, 밀가루 200g, 월계수잎 적당량, 생강 60g, 닭뼈 진액 1.4㎏, 이밖에 후추, 액젓, 집간장, 국간장 적당량이 필요하다.

①데친 각종 채소를 양념으로 버무려 1시간 이상 둔다. ②닭을 삶을 때 모양이 부서지지 않도록 40~45분 삶는다. ③닭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 껍질, 파 뿌리는 별도로 삶아 우려낸다. 닭 삶은 육수에 ①의 채소를 넣고 다음으로 고기 넣고 ③의 우려낸 육수를 넣고 40분 정도 끓여 준다. 채소는 질긴 정도, 푸른색이 많은 계절, 흰대가 많을 때 등 상황에 따라 양을 조절해 주고 있다.

음식에 더 중요한 게 실력보다 정성과 진심 아닐까. 북구 고성동 3가 57번지. (053)353-5213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