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36) 수성구 ‘새재묵조밥’ 장성우 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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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3-21   |  발행일 2014-03-21 제41면   |  수정 2014-03-28
청포채·오복탕·임자수탕…상투 튼 이 사내 ‘힐링약선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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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운이 철마다 색다르게 펼쳐지는 새재묵조밥의 한상차림.

그 사내는 방금 일을 끝낸 ‘도공’ 같다.

푸짐한 몸집, 선한 미소, 자연스럽게 틀어올린 상투. 흙빛 한복과 잘 어울린다. 대구시교육청 정문 근처에 있는 청포묵 전문점인 ‘새재묵조밥’. 부부가 ‘집밥’처럼 상을 차린다.

장성우 오너셰프는 전국적 인지도가 있는 식초 연구가이다. 식당은 실험정신과 열정이 서려있다. 2층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있는 간이 장독대에는 숙성 중인 각종 식초 항아리가 수북하다.

◆문경 촌놈… 대구로 입성하다

그의 양친(장창복·박남복)은 문경새재 초입에서 45년째 ‘소문난식당’이란 묵조밥 전문점을 운영한다.

조령산 등산객에게 먼저 사랑을 받으면서 전국적 명성을 갖게 됐다.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장 셰프는 2000년 대구로 온다. 부모가 워낙 묵조밥 때문에 고생하는 걸 봤기 때문에 절대 식당업에는 손을 안 대겠다고 작심한 상태. 처음에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온라인 사업을 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음식 쪽으로 가고 있었다. 사무실 한 편에 묵을 널어놓고 묵말랭이를 만들고 있었다.

“고향에 있을 때는 묵 일이 정말 싫었다. 그러나 피는 속일 수 없었다.”

식당을 차리기 전에 식자재 유통점부터 시작했다.

각종 좋은 식재료와 문경의 로컬푸드 등을 팔 작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진짜 좋은 음식과 식재료라면 소비자들이 매우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나의 단견이고 착각이었다. 일반 식당에서는 그 가치를 잘 몰랐다. 이미 그들은 저가 수입 식재료에 최면이 걸려 있었다.”

아침 일찍 북부버스정류장에서 부모가 보내준 식재료를 받아 와도 소비가 잘 안 되었다. 여기서 물러서야 되는가.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럼 나 혼자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새재묵조밥이란 식당을 개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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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묵조밥’ 장성우 셰프는 식초 연구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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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묵조밥의 도토리묵.

◆초창기 아주 단순했던 식단

처음에는 식단이 아주 단순했다.

하지만 사계절 별로 메뉴가 달랐다.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장아찌, 가을에는 버섯류, 겨울에는 말린 부각류가 축을 이뤘다.

된장찌개도 아주 독특했다.

“보통 정월장을 선호하는데 우리는 이월장을 담는다.”

청장, 중장, 진장 등 세 종류의 장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진장을 선택했다. 된장을 5년간 숙성시킨다. 간장의 경우 된장을 가르고 난 뒤 7년이 지난 걸 갖고 조리를 하고 찌개도 끓인다.

“햇장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느 것보다 훨씬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장아찌(취나물, 가죽나물, 냉이, 황태, 꿩)도 한 내공이 있었다. 많을 경우 30가지가 넘어갔다. 장아찌 담그는 법도 좀 다르다.

“우리는 장아찌를 양념으로 이해한다. 고추장 반찬을 할 경우 고추장에 황태장아찌를 곱게 다져 넣어 양념을 만들면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감칠 맛이 더해진다.”

부추콩가루찜도 문경의 기운이 물씬 풍겨난다.

“경북 북부권은 콩가루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가 유행하는데 고향에선 연한 콩잎을 갖고 콩가루찜도 해먹는다.”

부각류(들깻잎, 방아잎, 가죽나무잎 등)도 특화 메뉴이다. 깻잎류의 경우 고향에서 직접 만들어 온다. 찹쌀풀을 묻혀 건조하는데 자칫 마르면서 대나무발에 달라붙는다. 이걸 뒤집으면 잘 부서진다. 그래서 달라붙기 전에 계속해 뒤집어 건조시켜야 한다.

◆퓨전 묵조밥으로 급선회

예상과 달리 장사가 안 됐다.

무조건 잘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좋은 음식과 돈이 되는 음식은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과연 돈도 되는 착한 음식은 불가능할까.

속으로 퓨전이 절실하다고 판단한다. 그 첫 단추는 상차림의 구색 바꾸기였다. 처음에는 묵조밥을 위한 상차림에만 주력했다. 묵조밥과 된장찌개, 그리고 12가지 반찬, 솔잎식초가 전부였다. 그런데 고객 입장에서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음식과 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함께 올렸다. 성공적이었다.

그가 식초에 매진하는 이유는 뭘까.

묵조밥을 하기 위해 통과의례처럼 해야되는 작업이 있었다. 간장·된장·고추장·장아찌·식초·조청 만들기였다. 이게 완비되어야 비로소 명실상부한 식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도 같은 생각이었다.

“식초는 참 매력적이다. 특히 숙성되는 과정에 변화가 매우 큰 발효음식이다. 된장은 발효된 콩의 찌꺼기이고 식초는 출발이 곡물(전분)이다. 발효되면서 전분과 전혀 다른 당분이 되고 그게 알코올이 되고 그게 식초가 되는 변화가 무쌍하다.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식초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그런데 식초를 잘 활용하니 음식이 훨씬 더 깊이 있고 풍성해졌다.”

한식에 들어가는 식초는 단순히 신맛만 염두에 둔다. 그러나 신맛과 단맛과 쓴맛과 독특한 부패향이 어우러진 것이 식초이다. 발효된 발효향이 독특하다. 신맛을 내지 않는 요리에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그는 기본적으로 샐러드, 겉절이류 등은 물론 신맛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볶음·탕류에도 사용한다. 처음에 고객은 식초맛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에 다들 한 표를 주었다. 이후 그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발효 전문가 등을 찾으면서 미생물 발효공학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한다.진주, 미역, 차조기, 우엉, 연근 등을 갖고도 식초를 만들어 봤다. 문경과 대구에 60여개의 식초 옹기가 있다.

양친 문경새재 초입서 45년째
묵조밥집 운영 “피는 못속여”
진장으로 만든 된장찌개 일품
오이물김치 ‘외창국’도 개발
음식에 식초 활용, 깊이 더해

◆퓨전묵조밥 식단을 보니

이후 식단은 조촐한 백반상에서 풀코스 한정식으로 변한다.

전통요리에 자연요리를 접목시켰다. 일종의 ‘힐링약선식’이었다. 그는 ‘오복탕’을 재현했다.

1920년대 기방에서 가장 인기있던 요리 중의 하나였는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개고기 등 다섯 가지 고기류, 다섯 가지 버섯류, 다섯 가지 채소류, 다섯 가지 곡물을 넣고 국물이 자작하도록 볶은 요리다. 일명 ‘탕평채’로 불리는 청포채도 먹음직스럽다. 청포묵, 숙주나물, 표고버섯, 목이버섯, 당근채·오이·계란·김·묵은지 채 등에 마늘소스를 곁들인다. 하절기에는 닭고기 삶은 물에 검은 깨를 곱게 갈아서 탕처럼 먹는 임자수탕과 오이물김치의 일종인 외창국 등도 개발한다.

독특하면서 대중적이고 푸짐하고 서민적으로 세팅되는 것에 모두 좋아했다. 여느 한정식당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메뉴의 출현이었다.

하지만 부모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물론 제 것이 정답도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부모도 역시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웰빙에서 힐링시대로 가고 있다. 시대에 맞게 식단을 바꾼 것이다.”

◆이젠 발효전도사로 변신

그런 와중에 발효전문가로 발돋움을 할 수 있었다다. 대구MBC에서 발효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이 과정에 전국에 부는 식초 돌풍의 허상을 목격한다.

-최근 식초전문가의 폐단은 뭐라고 보는가.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고 맹목적으로 덤벼든다. ‘묻지마 산야초 효소 신드롬’이 왜곡적으로 확산되고, 식초라면 무조건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면 이건 좀 곤란한 것 같다. 우리는 발효음식을 만드는 장인이지 의사·약사가 아니다. 우리는 좋은 발효음식을 만드는 선에서 끝이 나야 된다. 식초도 약품이 아니고 식품일 뿐이다.”

-숙성과 발효의 차이는.

“발효가 된 맛이 삼각형이나 사각형이라면 숙성은 그걸 동그라미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발효의 기술과 숙성의 기술은 환경이 다르다. 대부분 오래 되면 무조건 숙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발효가 오래된 것과 숙성을 시켜서 오래 된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설탕 조절이 중요하다. 매실청은 매실 전체양의 120~130%, 효소는 65~68%, 식초는 15~18%의 설탕만 넣어야 한다. 그런데 다들 설탕을 1대 1 비율로 넣으면 되는 줄로 안다. 설탕이 너무 많으면 잔당이 포도당·과당으로 변하지 않고 체내로 흡수돼 당뇨병의 한 원인제공을 할 수 있다고 분석된다.”

▶대구시 수성구 수성2가동. (053)753-6969. 영업시간 오전 10시~밤 10시. 묵조밥정식 1만2천원. 청포채 1만7천원. 오복탕 2만원.

◆취재후기

그는 양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발효토피아’를 구축하고 싶단다. 발효의 모든 걸 보여주고 시식도 하고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할 수 있는 복합 식문화공간을 고향에 만드는 게 꿈이다. 물론 현재 업소는 그대로 대구에 두고서 말이다. 고향에 과수원도 마련했다. 조선소나무, 배나무, 감나무, 매화, 야생머루, 블루베리 등 40여종의 과수목을 심었다. 2주에 한번 내려가서 손을 보고 온다. 취나물, 다래순, 망초, 고사리, 홋잎, 나락냉이, 씀바귀 등은 4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조령산 일원에서 채집해서 묵나물로 만든다. 이런 버전의 청포묵 전문점은 전라도에 가도 보기 힘들다. 혈기방장한 한 사내가 발효음식에 올인했다는 것, 그가 음식의 불모지라 오해받는 대구에 터를 잡았다는 게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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