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다부동전투 55일] (1) 369고지 최승갑의 유해와 늙은 아내의 망부가 (上)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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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4-04-24  |  발행일 2014-04-24 제면
“앉은 자세로 땅속에… 총에 맞으신 것 같습니다”
“가슴에 비수가 꽂힌 듯 늙은 아내는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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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매년 4월부터 칠곡을 비롯한 전국의 6·25전쟁 격전지를 중심으로 전사자 유해 찾기에 나서고 있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모두 8천744구였고, 이 중 국군 전사자는 7천658구로 알려져 있다. 최승갑의 유해는 첫 발굴에 나섰던 2000년 4월, 칠곡 369고지에서 나왔다. <영남일보 DB>

시리즈를 시작하며

6·25전쟁 발발 50주년이 되던 해인 2000년 4월. 칠곡 369고지에서 한 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총을 맞고 앉은 채로 백골이 된 유해는 50년 세월을 견디며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유해와 함께 발견된 삼각자 하나…. 노란색 삼각자에는 ‘최승갑(崔承甲)’이라는 이름 석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신원 확인의 유일한 단서였던 삼각자를 근거로 유족을 찾은 결과, 뜻밖에도 50년 동안 남편을 기다려 온 75세의 늙은 아내가 있었다. 늙은 아내는 이튿날 칠곡 369고지를 찾아 백골이 된 남편의 주검을 거두었다. 이 사연은 훗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제작되는 결정적 모티브가 되었다.

최승갑의 유해와 늙은 아내의 사연은 분단이 낳은 비극이면서 전쟁의 생생한 증언이다. 그 역사의 현장이 바로 칠곡이다. 특히 수천명의 최승갑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칠곡 다부동전투는 전쟁사에서도 기념비적인 혈전이었다.

영남일보는 칠곡 369고지에서 발견된 최승갑의 유해와 늙은 아내의 애틋한 이야기, 그리고 1950년 8월1일부터 9월24일까지 55일간의 혈전이 벌어진 다부동전투를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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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에서 발견된 최승갑의 유해. 5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유해는 전쟁이 어떤 것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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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갑의 이름 석자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삼각자. 신원을 알 수 있었던 유일한 단서로, 삼각자에 적힌 이름을 근거로 유족을 찾을 수 있었다. <국방부 제공>


#1. 50년만에 발굴된 유해

2000년 4월7일, 칠곡 369고지.

고지의 봄은 더디었다. 여전히 겨울을 내치지 못하고 서걱거렸다. 햇빛은 헐거웠고, 산 그림자는 길었다. 마른 나뭇가지는 여린 바람에도 바스락거렸다. 그해 겨울은 오래 머물렀고, 4월의 고지는 빛을 품지 못한 채 푸석했다.

“평평하게 펼쳐, 조심… 조심….”

조용하던 고지에 낯선 인기척이 들려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었다. 그해 국방부는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유해발굴단을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첫 발굴지가 바로 다부동전투가 벌어졌던 칠곡이었다.

유해는 생각보다 깊게 묻혀 있지 않았다. 5㎝정도의 흙더미를 걷어내자 앙상한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뼈와 뼈 사이에 들러붙은 흙은 세찬 바람에도 완강했다. 흙은 단단하게 굳어 굳은살처럼 박혀 있었다. 대열을 이룬 바람은 뼈와 뼈 사이를 헤집지 못했고, 흙을 털어낼 때마다 흙먼지가 살점처럼 너들거렸다.

고지의 북쪽 8부 능선 개인호에서 발견된 유해는 국군의 것이었다. 허벅지 뼈로 봐서 키 170㎝의 건장한 남성으로 추정됐다. 어금니와 턱의 형태를 볼 때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흙더미를 걷어낼수록 유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사지는 뒤엉켜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낡은 군화는 짝을 잃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헐거워진 군화 속에는 발가락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두개골은 부서진 채 널브러져 있었고, 바로 옆에 한발의 총탄이 남아있었다. 총을 맞은 흔적이 분명했다. 유해는 편히 눕지도 못한 채 웅크린 자세였다. 마치 죽음의 순간을 증언하려는 듯, 그렇게 50년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주변 흙을 걷어내자 곳곳에서 소지품이 발견됐다. 녹슨 수통은 바짝 말라 있었고, 반쯤 부러진 빗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끼여 있었다. 쏘지 못한 실탄과 목에 걸었던 호루라기, 플라스틱 숟가락, 만년필 등도 함께 나왔다.

“그건 뭐죠?”

“어… 삼각자예요. 삼각자. 길이 재는 자….”

소지품 중에 유난히 삼각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손바닥 크기만 한 노란색 삼각자였다. 표면에는 거무죽죽한 얼룩이 짙게 배여 있었다. 그것이 핏물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갈라지고 터진 흠집들은 실핏줄처럼 엉켜 있었고, 정중앙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텅빈 구멍 속은 동굴처럼 헐겁고 허전했다.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삼각자는 가벼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삼각자의 구멍 속에서 ‘우우우’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뚜렷하게 남아있는 글자 하나….

‘崔 承 甲’

노란 삼각자에는 ‘최승갑’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날카로운 칼로 또박또박 새겨넣은 이름 석자, 그것은 유해의 마지막 유언처럼 선명했다. 신원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기도 했다.

2000년 4월7일, 국군 최승갑의 유해는 삶과 죽음이 한 덩어리로 엉켜있었고, 희망과 절망이 한 데 포개져 있었다. 5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전쟁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름이 확인된 유해 곁에는 작은 인식표 하나가 놓여졌다.

‘369-북-최승갑 유골’


#2. 50년 만에 들려온 남편의 부음

발굴단은 곧장 최승갑의 신원확인에 나섰다.

유일한 단서는 삼각자에 새겨진 이름 석자. 국방부, 보훈처, 경찰청에 연락해 관련 문서를 샅샅이 뒤졌지만 최승갑의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육군본부 중앙문서관리단에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다행히 데이터베이스에 기록이 남아있었다.

짐작했던 대로 최승갑은 1924년생의 젊은 군인이었다. 전사 당시 계급은 하사, 나이는 26세였다. 전쟁 전인 49년에 자원 입대해, 6·25전쟁이 한창이었던 50년 8월, 국군 1사단 소속으로 칠곡지역에 투입됐다. 하지만 기록에는 56년에 이미 전사자 처리가 되어 있었다. 유해도 찾지 못하고 생사도 모른 채 최승갑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원을 확인한 발굴단은 혹시 있을지 모를 유족을 수소문했다. 뜻밖에도 75세의 늙은 아내가 살아있었다. 50세를 넘긴 딸의 연락처도 찾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딸과 먼저 연락이 되었고, 발굴단은 늙은 아내의 집으로 향했다.

75세 할머니가 된 아내는 서울 성북구 정릉의 한 판잣집에서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등 굽은 노구는 힘겨워 보였고, 주름살 번진 얼굴에는 저승꽃이 번져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은 그간의 고된 삶을 증명하는 듯했다. 딸의 전화를 미리 받은 늙은 아내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남편의 부음은 그렇게 느닷없이 들려왔다.

“저 멀리 칠곡에서 유해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발굴단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늙은 아내의 표정을 살피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유해와 함께 삼각자가 하나 나왔습니다. 길이 재는 자 있죠. 그 삼각자에 최승갑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늙은 아내는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거무죽죽한 손은 습관처럼 입을 훔쳤고, 처진 눈꼬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런 모습에 발굴단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방안 가득 정적이 떠돌았다. 어렵게 다시 말은 이어졌다.

“땅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앉은 자세로요. 총에 맞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순간 늙은 아내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남편이 총에 맞았다’는 말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고, 노구의 어깨는 격하게 출렁거렸다. 늙어서 짓무른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쏟아진 눈물은 통곡이 되었고, 격한 통곡은 그칠 줄 몰랐다. 울음에는 내성이란 것이 없는 듯했다. 갈라지고 터진 손 위로 축축한 눈물 자국이 번들거렸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생이별, 그리고 50년의 기다림과 느닷없는 부음에 늙은 아내는 몸서리쳤다.

한참 후에야 늙은 아내는 겨우 말을 이었다.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이거(딸) 데리고 고생도 참 많이 했어요.”

그리고 한마디를 이었다.

“오늘 선생님들 오실 줄 알았어요.”

뜻밖의 말에 모두가 놀라며 숨을 죽였다.

<下편에 계속>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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