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리통지서 집에 걸어놔야죠”…남편란에 이름 적은 여성, ‘동성 커플 혼인 신고’

  • 조윤화
  • |
  • 입력 2026-03-31 18:51  |  수정 2026-03-31 19:23  |  발행일 2026-03-31

동성 연인 임아현·최진아(29)씨 혼인신고 접수

'동성 간 혼인'사유로 불수리 통지서 받아

다음 달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 예정

31일 오전 대구 남구청에서 성소수자인 최진아(왼쪽) 임아현(오른쪽) 씨가 혼인신고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31일 오전 대구 남구청에서 성소수자인 최진아(왼쪽) 임아현(오른쪽) 씨가 혼인신고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저희 오늘 결혼합니다."


31일 오전 10시30분쯤 대구 남구청 민원실. 동성 커플인 임아현(여·30), 최진아(여·30)씨가 두 손을 꼭 잡은 채 들어섰다. 이들이 구청을 찾은 이유는 '혼인신고' 때문이다. 2022년 4월 교제를 시작해 2023년 1월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이들에게 '결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진아씨는 '남편'란에, 아현씨는 '아내'란에 각각 자신의 이름을 기입했다. 진아씨는 "제가 수리도 잘하고 전형적인 남편 역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 남편란에 이름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혼인신고 불수리


이날 남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이들은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서류 제출 약 10분 뒤, 민원실 직원은 이들 앞에 불수리 통지서 두 부를 각각 내려놓았다. 통지서에는 '헌법 제36조 제1항 및 민법 제812조·제826조 등에 따라 수리할 수 없는 동성 간 혼인'이란 문구가 기재돼 있었다. 이후 진아씨는 아현씨의 손을 꼭 잡아주며 "나중에 동성혼이 법제화되면 다시 함께 혼인신고를 하러 오자"고 전했다. 진아씨는 "국내에서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만큼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지만, 막상 불수리 통지서를 보니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이날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이유는 분명했다. 단순한 절차를 넘어, 동성혼 법제화를 바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동성 연인의 혼인신고 '접수'가 가능해진 것은 2022년 3월부터이다. 다만 현행법상 동성 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만큼, 접수된 신고서는 모두 불수리 처리된다. 진아씨는 "주변에서 '왜 이런 무용한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법적으로 의미가 없더라도 동성 간 혼인신고 서류 접수는 가능하다. 이런 시도들이 계속 쌓이면 언젠가 제도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아현·진아씨의 혼인신고서는 수리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부부'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진아씨는 "함께 사는 집에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를 걸어두고, 내년에는 결혼식을 마친 뒤 하와이에서 혼인신고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31일 오전 대구 남구청에서 성소수자인 최진아(왼쪽) 임아현(오른쪽) 씨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31일 오전 대구 남구청에서 성소수자인 최진아(왼쪽) 임아현(오른쪽) 씨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대구 '동성 혼인' 최근 4년간 3건 접수


31일 대구지역 각 구·군청에 확인 결과, 2022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접수된 동성 간 혼인신고는 총 2건이다. 2024년에는 북구와 동구에서 각각 동성 커플(여성)이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날 아현·진아씨가 혼인신고서를 접수했다가 불수리 통지를 받으면서 관련 사례는 3건으로 늘었다.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동성 부부 11쌍이 수도권 6개 법원에 '혼인평등소송(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을 제기했다. 다음 달 8일에는 아현·진아씨를 포함해 부산과 울산에서 각각 한 쌍씩 총 3팀이 영남권에선 처음으로 혼인평등 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진아·아현씨의 변호를 맡은 장서연 변호사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평가받는 대구에서 혼인평등 소송이 처음 제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결혼을 통해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권리이다. 이를 누구에게나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헌법 가치에 부합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소송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동성혼 법제화 놓고 학계 의견 분분


동성혼 법제화를 둘러싼 논쟁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통한다.


성균관대 유재봉 교수(교육학과)는 동성혼 법제화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동성혼 법제화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사안"이라며 "기독교적·전통적 가치관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는 만큼, 성급한 입법 시도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들이 동성혼을 권리로 주장할 수는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리는 사회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충분한 공론화와 이성적인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넓혀가는 과정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행법 해석을 유연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구대 고상현 교수(법학부)는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성을 단순한 생물학적 요소가 아니라 개인의 인식과 사회적 관계 등을 종합해 '법률적으로 평가된 성'으로 기재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며 "이 같은 판례를 고려하면 '부부' 개념을 반드시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헌법학계에서도 동성혼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고,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동성혼 금지를 기본권 침해로 본 사례도 있다"며 "법이라는 텍스트는 고정돼 있지만, 변화하는 사회 현실에 맞게 해석하려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동성혼 법제화에 앞서 사실혼 관계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계명대 박성은 교수(법학과)는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서는 국회 입법이 필요하지만, 종교단체나 전통적 혼인관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반응을 고려할 때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개정안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성혼 법제화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유럽 일부 국가처럼 사실혼이나 파트너십 관계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는 세금, 상속, 자녀 문제 등에서 전통적인 부부와 일정한 차이를 두고 시작한 뒤 점진적으로 권리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기자 이미지

조윤화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