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 수성구 이탈리안 레스토랑 ‘부온 아뻬띠또’ 박종필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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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09   |  발행일 2014-05-09 제41면   |  수정 2014-05-09
청각장애 딛고 스테이크 굽는 이 남자, 골목 레스토랑가의 폴포츠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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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부터 청각 기능을 거의 상실해 한때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박종필 오너셰프. 10여년 전부터 자신의 내면에 요리본능이 용암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단다. 현재 수성구 중동 주택가 골목에 한 포기 무명초처럼 앉아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부온 아뻬띠또에서 아버지와 함께 새로운 양식당 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광장보다 골목이 더 ‘민주적’인 것 같다.

광장은 다소 수직적 경향을 보이는데 골목은 상당한 ‘수평적 울림’을 갖고 있다. 광장은 다국적 브랜드가 독점하겠지만 골목 가게는 빈티지 계열의 간판에 자기 취향을 살짝 묻혀 둔다. 선진국으로 접어들수록 광장음식 라인에 살짝 질리게 된다. 그 무렵 골목식당이 하나둘 ‘사금’처럼 피기 시작한다.


◆ 청각장애… 요리를 만나다

대구시 수성구 중동 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부온 아뻬띠또(Buon appetito, ‘맛있게 드세요’란 뜻의 이탈리아어)’.

부온은 무채색 주택가 한켠에 포인트 벽지처럼 붙어 있다. 10년간 기본기를 다지고 난 오너셰프 박종필(34)은 부모의 집 1층 한켠에 ‘꿈터’를 차릴 수 있었다. 열정의 10년은 청각장애의 무게와 조화를 이룬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 셰프는 중학교 3학년 때 청각신경을 크게 다친다. 왼쪽 귀는 청각능력을 완전히 상실해서 보청기도 낄 수 없는 상태. 오른쪽 귀는 보청기를 해도 소리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상대의 입 모양을 보면서 겨우 의사소통을 한다. 청각장애 4급이다. 기자는 장남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림자처럼 도와주는 아버지(박규헌)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중학 3학년때 다친 청각신경
정규학교 공부 늘 발목 잡아
졸업후 음식 만들기 도전
레스토랑서 산전수전 겪고
부모 집 1층 한켠에 ‘둥지’
닭가슴살 스테이크볶음밥
착한 가격에 양도 많아 인기


정규 과정의 공부는 포기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쪽 청각능력도 상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한 공고에 입학했지만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들리지도 않고 막막했다. 도대체 뭘 할 것인가. 졸업 후 대구미래대 영상광고학과를 다녔는데 또 적성에 안 맞았다. 또래집단과 소통이 잘 안 되었다.

평소 스테이크와 스파게티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음식 만들기에 도전한다. 마침 그의 친구가 대구의 한 뷔페식당에서 일하고 있어 그를 통해 수성못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빈센트’에 들어간다.

“바다를 처음 만난 아이 같은 심정이었어요. 그 바다의 수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어 한없이 경이로우면서도 두려운 상태였죠.”

요리부장은 그가 할 줄 아는 게 없어 안 받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해맑은 눈빛을 믿었다. 그의 동선은 다른 주방 멤버보다 훨씬 느리고 끊어졌다. 1년 정도 있으면서 기초 칼질법과 주방시스템을 배웠다. 처음으로 요리책도 본다.

“모두 쉬워 보였는데 해보니 하나같이 어려웠어요. 칼질을 했을 때 단면이 매끈해야 합니다. 처음엔 두께도 왔다 갔다 하고 모양도 별로였죠. 단면이 매끈하지 않으면 채소의 영양분이 잘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셰프마다 칼질 방법이 달랐어요. 가르쳐주는 대로 했는데 저한테는 맞지 않았습니다. 자주 해보니 제 스타일이 나오더군요. 책은 하나의 기준이지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고요. 경험과 현실이 풍부해야 꿈에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요.”

스테이크소스를 배우고 싶었지만 그건 비법이라서 잘 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 스파게티, 볶음밥 등의 소스를 배웠다.

“볶음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밥 알갱이의 부드러운 정도와 습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그리고 그 밥과 어울리는 식재료를 세팅하는 일은 예술의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기름으로 볶지만 궁극엔 기름냄새가 느끼함을 주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해요. 밥은 질척해서도, 너무 꼬들꼬들해서도 안 되고, 그러면서 푸석해서도 안 되죠. 저는 한국형 파에야(스페인의 대표 볶음밥) 스타일의 닭가슴살스테이크를 곁들인 과일 볶음밥을 만들었어요. 고기의 푸짐함, 심플하면서도 고소한 밥맛, 그 둘을 합쳐주는 파인애플을 삼합처럼 결합시켜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더라고요.”

어느 날 프라이팬을 잡아보고 싶었다. 호기심 때문에 팬을 잡았다. 처지를 이해한 조리부장이 도와주었다. 프라이팬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절감한다. 하라는 대로 했는데 맛은 천차만별이었다. 과연 내가 좋은 셰프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 시내 ‘작은프랑스’에서 작은 깨달음

대구 도심 ‘작은프랑스’ 2호점에서 정말 많은 걸 배운다.

“보통 셰프의 실력이 늘수록 손님이 어떤 맛을 원하는지에 더 중점을 두죠. 그런데 올챙이 시절에는 좋아하는 메뉴라인을 고집하잖아요. 요리가 취미를 넘어 사업의 영역에 들면 ‘손님의 혀’에 대해 고민을 합니다. 어떤 분은 손님보다 자기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지만 저는 일단 손님이란 제약조건을 존중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걸 작은프랑스에서 절감했는데 제겐 새로운 충격이고 전환점이었습니다.”

일반 손님은 어떤 맛을 원하는가. 평균적인 맛이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맛이 거의 평균적이다. 짜다거나 싱겁다는 불만이 전달되면 거기에 따라 간을 조절하고 변화를 주었다.

“여러 승부처가 있지만 저는 일단 식재료의 신선도라고 봅니다. 신선도가 밀리게 되면 셰프는 자기 요리를 많이 위장하고 부풀리고 과도하게 수식하죠. 일종의 ‘거짓말 음식’이 되는 거죠. 음식 중요도의 경우 식재료는 7, 소스는 2, 손맛이 1 정도의 비중이 있다고 봅니다.”

재고관리법을 배운 뒤 마산의 한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주방장이 된다. 파도조차 그를 축하했다.

“거기서 셰프는 조리술 못지않게 경영마인드까지 겸비해야 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마산의 해산물을 이용한 해산물크림스파게티를 자신있게 개발했다. 당시 마산에선 그런 버전이 다소 생소했다. 평소 손님이 뜸했는데 그 메뉴로 인해 단골라인이 푸짐해진다.

“보통 주방장이 직접 식탁 옆에서 자기 음식에 만족하는지를 물어보는데 그건 잘못이라고 봐요. 셰프 체면 때문에 속으로는 맛이 없어도 겉으로는 맛있다고 얘기합니다. 이럴 땐 홀 서버를 통해 체크하면 식당 메뉴의 만족도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9년이 지났다. 그는 겨우 주방시스템, 식재료 재고관리, 마케팅기법, 홀 서빙법 등에 대한 나름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더 이상 그에게 청력은 ‘장벽’이 아니었다.


◆ 7년 만에 터득한 스테이크 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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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고 담백하고 푸짐하기까지 해서 요즘 여성한테 특히 인기가 좋은 닭가슴살스테이크볶음밥.

스테이크를 잘 굽는다는 것.

모든 레스토랑 셰프의 꿈이다. 초보 의사가 메스로 신체를 절개하고, 수술 후 완전하게 봉합하는 감각을 익히려면 실제 자기 집에서 돼지고기 비계 등을 갖고 수천 번 반복 연습을 해야 한다. 그도 스테이크를 정복하는 데 7년이 걸렸다.

어쩌면 굽는 것은 금세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덩어리째 온 고기를 정량대로 썰어내고, 그 속에 박힌 힘줄과 기름 덩어리를 제거하고, 냉장고에서 숙성을 해야 하는 일련의 준비절차가 셰프를 시험에 들게 한다. 경산의 한우협동조합에서 가져와서 직접 장만을 한다. 하루 정도 냉장고에서 4~5℃로 하루 정도 숙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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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온 아뻬띠또의 인기 메뉴인 블루베리소스를 베이스로 한 안심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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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온 아뻬띠또의 왕새우크림스파게티.

그는 요즘 자기가 개발한 블루베리소스를 베이스로 한 안심스테이크에 10점 만점에 9점 정도 점수를 준다. 그는 혼자 모든 걸 진두지휘하기 때문에 고기를 어떻게 구워줄지 물어보지 않고 알아서 구워낸다. 이 대목이 과연 옳은지는 기자도 의문이다. 그는 착한 가격을 제시했다. 스테이크는 2만7천원, 샐러드와 수프는 생략. 대신 양을 늘렸다. 190g 안팎을 준다. 평소 걸쭉한 브라운계열 소소에 길이 든 사람에겐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선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맛을 잘 특화시켰다.

“블루베리소스는 지역에선 제가 주도적으로 사용한 것 같아요. 블루베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 자연 고기에 맞는 곁재료도 달라지죠. 이걸 찾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TIP

그의 음식을 세 가지 먹어봤다. 닭가슴살스테이크볶음밥(9천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대구에선 드물게 과일 베이스 소스를 블루베리소스안심스테이크는 핏기를 대폭 줄인 웰던 같은 미디엄 스타일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왕새우 해물크림스파게티(1만2천원)도 평균적 맛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코스 대신 단품 위주로 팔고 있다.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해야 되기 때문이다. 청각이 좋지 않아 손님과 매끄러운 대화가 어렵다. 그래서 손님이 직접 자신이 어떤 식성을 갖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메뉴체크리스트를 작성하도록 한다.

지난해 7월 오픈했다. 광고도 안 했다. 오픈 전에 워밍업 삼아 2년가량 피자가게도 가동했다. 장사는 됐지만 식재료 구입과 배달까지를 도맡은 아버지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현재 버전의 식당을 차렸다. 사전에 예약을 하면 숨겨둔 자신만의 메뉴라인을 선보이겠단다.

그의 맛은 아직 실험중이다. 그래서 더 기대하고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디 ‘골목식당가의 폴 포츠(휴대폰 판매원에서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통해 일약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태어난 성악가)’로 일취월장하길. 대구 중동 165-2. 매주 화요일은 휴무. (053)761-8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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