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폿집 ‘3천대포’ 돌풍의 주인공 김영석씨 ‘미우나 고우나 5천냥’으로 조용한 컴백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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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2   |  발행일 2014-08-22 제41면   |  수정 2014-08-22
이젠 더도 덜도 말고 5천원!…‘싸고 푸짐함’ 제대로 만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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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법대를 나온 김영석 사장은 20여년 여러 식당을 꾸려가다가 서민들의 영원한 맘의 충전소 구실을 하는 저렴한 대폿집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을 갖고 2009년 3천대포을 론칭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초창기 3천 정신을 좀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 최근 동부정류장 근처에 미우나 고우나 5천냥이란 초저가 술안주 실비집을 오픈했다.

2009년 2월20일.

대구시 수성구 중동교 근처에 뉴버전의 대폿집이 론칭됐다. ‘3천대포’였다. 오후 4시에 문을 열면 인근 낮술파들이 하나둘 진을 치기 시작한다. 자정 무렵이면 가족단위에서부터 예술가, 시민운동가, 밤업소 종사자, 대리운전 기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오전 6시까지 불야성을 이룬다. 대다수 안주 값은 3천원. 막걸리 한 주전자가 5천원, 2만원 정도면 4명에서 2시간 남짓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수다를 떨다가 갈 수 있었다.

영남대 법대 출신인 김영석 사장(50). 그는 한때 운동권으로 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운동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가장 솔직한 일이 ‘식당’이다 싶었다. 20여년 여러 식당을 전전했다. 횟집, 생선그릴집, 막창집, 생고깃집, 치킨집, 안동찜닭집 등을 꾸려봤다. 거기서 요리에 대한 기본기를 다 익혔다. 미국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세계금융위기가 서민에겐 제1의 IMF 외환위기로 각인되는 걸 보고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탁주집을 열자고 맘을 먹는다. 그는 3천대포를 ‘한국 식당민주주의 1번지’로 만들고 싶었다.

3천대포는 문을 연 지 두 달 만에 대박이었다. 1년 만에 10개의 가맹점이 생겼다. 해물파전, 감자전, 빈대떡, 배추전, 깻잎전 등 참 많은 전을 개발했다. 단골들은 ‘이렇게 주고도 남느냐’고 직원에게 곧잘 물었다. 대구시 전역에 3천대포 바람이 몰아쳤다. 대포 3천냥, 막걸리 3천냥 등 다양한 콘셉트의 대폿집이 등장했다.

그는 태생적으로 ‘폭리(暴利)’에 반감을 갖는다. 직원이 가게 지출 내역을 다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메뉴의 인기차트도 공개했다. 그곳은 사장과 직원의 구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활기차고 자신있게 일을 하니 되레 직원들을 사장으로 본다. 그는 항상 허름한 포즈로 손님처럼 단골과 어울린다. 다시 말하면 사장과 직원이란 수직관계가 아니라 서로 윈윈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수평적 공생관계’로 발전시켰다. 그는 가맹점 사업을 하면서도 서민섬김정신이 없는 사람에겐 가맹점을 주지 않는다.

 

2009년 ‘3천대포’ 론칭해 대박
우후죽순 생겨난 유사 대폿집들 미끼메뉴 내세운 무늬만 ‘3천냥’
요리 제대로 배우려 전국 순례 후 손님도 주인도 직원도 공감할 가격
‘5천원짜리’ 신개념 실비집 차려, 신선한 식재료로 맛있고 푸짐하게



◆무늬만 3천대포… 원망스러웠다

대구는 참으로 소문에 잘 혹한다.

돈이 된다 싶으면 맹목적으로 남의 아이디어를 잘 베껴간다. 뭔가 하나가 떴다 싶으면 다들 아프리카 누떼처럼 그쪽을 향해 달려간다. 자연 순진한 사장만 상처를 입고 작전세력은 배를 불린다. 3천대포도 마찬가지. 경쟁이 심해지고 식재료 값이 폭등하면서 3천원짜리 안주 라인은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부추전 등 만만한 메뉴 몇 개만 3천원이고 나머지는 1만원에 육박했다. 마치 ‘수박 3천원’이란 문구만 보고 수박을 사러갔다가 몇 배 더 비싼 수박을 사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악덕 상혼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김 사장은 1년 정도 하다가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인계했다. 그는 지친 몸을 달래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요리솜씨를 익히기 위해 강호의 고수를 찾아다녔다. 동해·서해·남해 해산물 산지를 순례하면서 제철이 언제인가도 기록해나갔다.

그 사이 3천대포의 정신이 많이 손상됐다는 판단을 하고 ‘3천대포 부활 프로젝트’를 엄밀히 가동한다. 3천원짜리 메뉴가 ‘미끼 메뉴’로 팔리는 걸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미우나 고우나 5천냥’.

“5천냥 앞에 ‘미우나 고우나’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 단어 속에 서민의 애환이 녹아 있고, ‘3천원을 극복하려는 5천냥을 미우나 고우나 사랑해달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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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냥 대폿집은 항상 정겨움을 중시한다. 5천원 일색 메뉴도 흑판에 분필로 직접 작성해 놓아 더욱 서민적으로 보인다.


5천냥에서 푸짐함을 만나다

5년 전에 잠시 만났던 김 사장.

그가 ‘장고’처럼 돌아왔다. 지난주 화요일 오후 5시30분 어름. 동부정류장 동편에 자리한 5천냥. 벌써 반 이상 자리가 단골로 채워졌다.

메뉴판을 봤다. 전류(녹두빈대떡, 오징어부추전, 해물파전, 감자전, 동태전, 김치전, 깻잎전)·생선구이류(고등어, 도루묵, 가자미, 조기)·초회류(동해참문어, 벌교꼬막, 백소라, 연어사시미, 가오리무침회, 미주구리무침회, 오징어무침회, 통오징어숙회, 가오리찜, 미더덕찜)·스페셜(석쇠불고기, 계란말이, 오징이두루치기, 돼지두루치기, 매운닭발, 닭똥집볶음, 순대볶음, 소시지야채볶음)·탕류(삼계탕, 떡어묵탕, 알곤탕, 김치찌개)가 모두 5천원.

“예전처럼 3천원 갖고 안주를 만들어 직원 월급주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식당을 열기 전 참 오래 고민했습니다. 서민들이 푸짐하고 맛있게 먹고, 주인과 직원이 먹고 살 만한 최소 안주 가격대는 얼마일까. 5천원이 답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아귀탕과 아귀찜, 참문어숙회, 생소라 등을 내왔다. 찜에 들어간 전분은 100% 감자전분이라서 시간이 지나도 갱물이 형성되지 않았다. 1만원 이상의 값을 하는 것 같았다. 매일 매천시장, 칠성시장 등에서 장을 봐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좋다. 그러니 요리도 쉽고 간단하다.

“냉동이면 절대 이런 맛이 나올 수 없죠. 실비집일수록 생물이어야 성공합니다. 보통 양념과 조미료를 저급한 걸로 사용해 돈을 남기려고 하는데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죠.”

여느 실비집에선 바쁠 때 잔치국수를 해달라고 하면 싫어한다. 그런데 여기선 술과 밥을 동시에 충족시켜준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잔치국수와 우동은 3천원, 비빔국수는 3천500원, 콩국수와 칼국수는 4천원.

여느 실비집과 달리 혼자 와도 술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주방 옆에 8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바텐석도 마련했다.

“요즘 솔로족이 흘러 넘칩니다. 그들을 배려한 겁니다.”

재밌는 문구에 굶주린 요즘. 그도 그 욕구를 반영하듯 벽에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글귀를 칠판에 적어둔다. ‘소원 게시판’도 마련했다.

‘마누라님, 애들만 좋아하지 말고 나를 좀 더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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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미우나 고우나 5천냥’ 벽에 걸린 칠판 문구.
이 문구가 여존남비세상을 실감케한다. 원산지 표시란에는 주인장, 주방장, 홀, 알바 모두 국내산이라 적혀 있다. ‘오늘 아침 동해 앞바다에 있었는데 여가 어딘교? 동해 참문어~’ 입구에 부착된 POP 글씨는 김 사장의 솜씨.

시간대별로 손님이 달라진다. 초저녁엔 50~60대, 늦은 저녁에는 30~40대, 심야에는 20대, 새벽엔 대리운전기사, 택시기사, 식당주, 야간업소 종업원 등이 단골이다. 오후 4시에 문을 열고 다음날 오전 6시 문을 닫는다. 좋은 고등어집을 찾는데 5년이 걸렸다. 그렇게 해서 지역 곳곳에 숨어 있는 50여 개 도매상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런 저력 때문에 5천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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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문을 여는 ‘미우나 고우나 5천냥’ 내부 전경. 솔로시대를 반영한 듯 혼자서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바텐석도 마련했다.

◆공정 프랜차이즈 시대를 열고 싶다

그는 요즘 ‘황소개구리’처럼 지역 외식계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프랜차이즈문화에 반기를 든다. 그는 ‘공정 프랜차이즈’를 원한다.

“유명 가맹점을 열려면 가맹비는 말할 것도 없고 3.3㎡당 300만원 이상하는 고비용 인테리어 때문에 다들 휘청거립니다. 2억~3억원을 투입해 월 1천만원을 벌어도 평균 2~3년 버텨야 하는데 그 시기가 되면 안타깝게도 유행시기도 끝나 흑자도산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장기 불황이 예상되기 때문에 푸짐하면서도 저렴한 업소가 득세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절대 초기에 과도한 투자를 하지 말고, 인테리어도 가능한 한 자신이 직접 챙기라고 주문한다.

“별의별 인테리어 기법이 다 쏟아졌습니다. 업자들은 자기가 인테리어하면 대박칠 거라고 장담하지만 최고의 인테리어는 주인과 직원, 그리고 손님이라고 믿습니다. 수천만원만 갖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점포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해보세요. 거기에선 돈보다 열정이 더 승부처죠.”

그는 형편이 되면 식재료를 공동으로 헐값에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창고도 운영하고 싶단다. 또 청년백수와 조기 은퇴자를 위한 ‘창업 인큐베이터’ 같은 것도 차려보고 싶어한다. 대구시 동구 효목동 509-1. (053)751-2778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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