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시 동구 덕곡동 장어전문점 ‘팔공산 자락’김기돈·박지은 부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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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11   |  발행일 2015-09-11 제41면   |  수정 2015-09-11
“장어맛은 소스·양념맛”…양념 관련 책까지 출간한 ‘양념도사’가 구워낸다
201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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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40여 년 경력의 요리 연구가 겸 양념 전문가. 인생 전반기 사업에 실패한 뒤 권토중래를 노리며 장어 전문점을 오픈한 남편. 둘의 부창부수 정신 덕분에 이 식당은 팔공산 자락의 대표적 장어집으로 발돋움했다. 남편의 색소폰 연주는 이 집 장어 맛의 백미.

삶의 종착역에서 ‘식당’을 만난다는 것. 그것도 아내가 남편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위해 부창부수(夫唱婦隨)할 때, 그동안 비극으로 치닫던 운명도 희극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한때 팔공산은 닭과 오리 요리의 메카였다. 그런데 그 사내는 장어를 선택했다. 그는 장어를 위해 매일 색소폰을 불었다. 남다른 율조의 색소폰 덕인지 어떤 날에는 사내의 연주 때문에 이 식당을 찾기도 한다. 다들 ‘팔공산에 웬 장어?’란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믿었다. 아내는 남편이 2부 인생에 식당주인으로 변신할 걸 알았던지 평생 요리 연구가로 살아왔다. 사내는 일흔을 눈앞에 두었고 아내는 최근 집밥 특수에 편승해 ‘고마워! 엄마 양념’(레시피팩토리) 양념 가이드북을 펴내 신선한 반응을 얻고 있다. 1년도 못 넘기고 문을 닫을 것이란 주위의 예상을 비웃기나 하듯 10년 넘게 식당을 꾸려오고 있다. 부부는 ‘환상의 복식조’였다.

◆ 팔공산이 장어를 만났을 때

장어 전문점 ‘팔공산 자락’. 김기돈 사장은 원래 식당주가 될 사람은 아니었다.

사회 첫 직장은 지역의 한일석유였다. 회사가 파산하고 남구 대명동에서 주유소를 10여 년 경영한다. IMF 외환위기로 인해 주유소도 문을 닫는다. 외상과 보증 등 때문에 수중에는 돈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15년 정도 공백기가 생긴다.


주문받는 순간 불에 올려
초벌구이는 남편이 하고
아내가 소스 발라 재벌구이

가스 그릴에 약간 구워
칼로 비늘 말끔히 긁어내
장어 특유의 비린내 없애

남편 색소폰 연주도 명물


요리 연구사인 아내(박지은)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12년 전 동구 덕곡동 팔공산 순환도로변의 한 야산 부지를 확보했다. 2004년 7월 하순에 개업한다. 메뉴 선택을 놓고 고민했다. 당시 주변은 닭과 오리 천지였다.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던 끝에 아내가 장어요리를 잘한다는 생각이 떠올라 장어 전문점으로 결정해버린다. 남편은 평소 맛집 순례를 잘 했다. 나름대로 맛에 자신이 있었다. 칠성시장에서 장어를 매입했다. 매일 칠성시장에 장보러 갔다. 오전 6시 시장에 가서 5~10㎏ 사 왔다. 1㎏에 4미짜리를 샀다.

초창기에는 장어와 식재료를 사 오면 아내가 장만하고 초벌까지 다 챙겨주었다. 1년 정도는 요리에 자신이 없어 장어 굽는 데 손을 대지 않았다. 아내 혼자 너무 고생이었다. 굽는 건 아무래도 그가 담당해야 할 것 같았다. 아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구웠다. 계속 하다 보니 더 좋은 방법이 생겼다.

가정집에서 장어를 요리해 먹으면 맛이 없다. 초보자는 장만을 제대로 못한다. 피가 묻어 있어 흉물스럽다고 여겨 물에 깨끗하게 씻는데, 이게 ‘패착’이다. 물에 씻으면 진기가 빠져나간다. 장어 껍질에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수만 개의 점액질 비늘이 있다. 그걸 제거해야 장어 특유의 비린내도 제거된다. 가정집에서는 점액질을 제대로 갈무리할 수가 없다. 껍질을 벗겨내면 장어는 살점이 부서져버린다. 손질을 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약간 구워서 칼로 긁어냈다.

가스 그릴에서 껍질이 위로 가도록 해서 초벌을 하는데, 시간보다 육안으로 판별을 해야 된다. 껍질에 열이 가해지면 10㎝가 줄어든다. 껍질이 파삭해져선 안된다. 길이가 다 줄어들 정도로 살짝 굽혔다 싶으면 뒤집어서 살 쪽을 굽는다. 살은 껍질보다 굽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살이 터질 때까지 기다린다. 굽는 동안 다른 장어를 손질하는 식으로 시간을 안배한다.

초벌이 끝나면 반 정도 익은 것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다시 아내가 소스를 바르며 재벌을 한다. 소스를 먼저 바르면 고기는 안 익고 타게 된다. 껍질보다 살 부위에 더 많이 바른다.

데리야키소스가 살 속으로 스며들게 바르고 구우려면 장인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맛의 성패가 좌우된다. 너무 많이 바르면 짜고, 너무 적게 바르면 싱겁게 된다. 숯불갈비는 젓가락으로 뒤져봐야 굽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데 장어는 그렇지 않다. 초벌보다 재벌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최소 5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장어는 미리 장만해두거나 부침개처럼 미리 구워 보관했다가 식탁에 내면 맛이 형편없어진다. 반찬은 미리 준비를 해도 장어만은 주문받는 순간 불에 올려야 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장어는 모두 6종류가 있다. 1㎏에 한 마리면 1미, 2마리면 2미…, 6마리면 6미다.

남편의 유일한 취미는 색소폰 연주. 한때 싱글을 칠 정도로 골프에도 몰두했지만 요즘은 악기에 더 전념한다. 대륜고 악대부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맹호부대 군악대에서 클라리넷을 분다. 직장생활 할 때는 일 때문에 악기는 언감생심. 40대 중반부터 악기를 다시 만진다. 색소폰을 처음 만난다. 이젠 식당을 살리는 효자다. 서비스 차원에서 오후 2~3시와 7~8시 카운터 옆에서 연주한다. 장어 파동을 겪으면서 엄청 시련을 겪었지만 아내의 밑반찬과 색소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 장어의 일생 공부하기

장어의 생리를 공부했다. 장어는 연어와 반대로 강에서 7년 남짓 자란 후 3천㎞ 정도 떨어진 자신의 고향인 필리핀 마리아나 해구 해저산맥 근처로 9개월 헤엄쳐 가 산란을 하고 일생을 마감한다. 장어는 민물과 바다에서 동시에 산다. 민물에서 살다가 곧바로 바다로 들어가지 못한다. 하구에서 2~3개월 바닷물에 적응을 한다. 9~10월 바다로 들어가기 직전의 뱀장어의 등과 배에 노란색 띠가 형성돼 황뱀장어로 불리는데 이게 전형적인 자연산이다. 양식은 등은 검고 배는 하얗다.

4월부터 8월 그믐밤 마리아나 해저산맥 수심 160m 근처에서 산란을 시작한다. 알에서 깨면 물에 뜨기 좋게 장어는 댓잎처럼 변한다. 일명 댓잎뱀장어가 되고 점차 원동형인 실뱀장어로 변신한다. 실뱀장어는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1월쯤 제주도, 2월쯤 남해안, 3월쯤 서해안에 도달한다. 전국에서 유명한 풍천장어(風川長魚)는 전북 고창군을 흐르는 주진천(인천강)과 서해가 만나는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부근에서 잡히는 뱀장어를 가리킨다. 지역 주민들은 주진천을 ‘풍천강’이라고 부른다. 바다 쪽 갯벌이 간척되기 전, 바닷물은 지금보다 훨씬 내륙 안쪽으로 들어왔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풍천강에서 장어가 많이 잡혔고, 그래서 ‘풍천장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천강에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바람을 함께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바람내(風川)’란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어부들은 강으로 들어오는 치어를 잡아 양식해서 사용한다. 요즘 치어 한 마리가 1천원 선으로 폭등했다. 어떤 방법으로 키우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어떤 때는 질이 좋다가 어떤 때는 맛이 없어지기도 한다. 배를 가를 때 칼날이 너무 쉽게 나가면 살이 무른 것이고 빡빡하면 질긴 것이다. 구워봐도 안다. 육질이 무르면 고기가 처진다. 부서지기도 한다. 좋은 놈은 탱글탱글하면서도 부드럽다. 질기면 구울 때 등이 휘어진다.

◆ 소스와 양념 이야기

장어는 역시 소스와 양념 맛이다. 이 대목에서 아내가 나타났다. 81년에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시댁 어른 뒷바라지할 때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때 죽 종류를 많이 요리했다. 곁들임 반찬까지 챙겨야 하니 시중 식당 조리사 못지않게 실력이 늘었다. 내친김에 중식·일식·양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다 딴다. 15년 전이었다. 지역의 여러 농업기술센터 등지로 가서 요리교실을 꾸리는 한편 폐백·이바지 음식까지 가르쳤다.

그동안 요리가 취미였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여의치 않자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아내의 재산 목록 1호는 대학노트 10권 분량의 레시피북이다. 요리 관련 책도 수도 없이 사 모았다. 그 경험을 토대로 양념 관련 서적을 출간할 수 있었다.

▶데리야키 소스= 진간장 3에 맛술 1로 섞고 물엿(해표) 1, 설탕 0.5, 양파·마늘·대파·마른 고추에 물 3을 넣고 4시간 정도 달여야 한다. 센 불로 끓이다가 끓으면 중약으로 낮춰 절반 정도 줄도록 하면 된다. 여름에는 15일에 한 번, 겨울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넉넉하게 마련한다.

▶고추장 소스= 집 고추장과 공장 고추장을 반씩 섞고 수삼, 양파, 마늘, 생강, 배, 청양고춧가루, 사과, 설탕, 매실청, 물 혹은 사이다를 넣고 믹서에 갈아서 약불에 살짝 끓여준다.

▶간장 소스= 장어 뼈와 머리를 기본으로 불에 구운 뒤 대파도 굽는다. 뼈·머리·대파부터 푹 끓으면 거기에 통마늘, 대두, 생강, 당근, 대추, 감초, 통후추, 황기, 당귀, 계피, 수삼, 표고, 다시마 등을 넣어 3시간 정도 우려낸다. 처음에는 몇 가지만 넣기도 했는데 맛이 약해서 10여 가지 넣게 됐다. 육수 1에 맛술 1, 물엿 0.5, 설탕 0.5, 양조 간장 1을 넣고 또 약불에 3시간 정도 졸여야 된다. 발사믹식초의 농도가 돼야 한다. 임산부는 10% 할인.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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