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레스토랑 ‘아소다이닝’ 이수길 오너셰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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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06   |  발행일 2015-11-06 제41면   |  수정 2015-11-06
찹쌀떡·치즈를 젤리식으로 합쳐놓은 것 같은‘크림깨두부’ 트레이드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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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로 나오는 달달매콤한 ‘고마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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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까지 파삭하게 살려 구운 ‘제주 옥돔 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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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롱사태와 우엉채를 베이스로 한 ‘긴삐라고보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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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처럼 직화에 구운 뒤 족발처럼 먹음직스럽게 썰어낸‘채끝등심스테이크’

셰프는 자기 음식을 닮아간다. KBS 대구방송총국 정문 맞은편(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퓨전 일식 레스토랑 ‘아소다이닝’ 오너셰프 이수길씨(34)도 그렇다. 일식 조리사의 깔끔함과 진지함, 그리고 담백함이 얼굴에 묻어 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의 몇몇 메뉴는 미식가로부터 적잖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일본과 똑같이’는 싫어한다. 자기 기질과 상상력을 동원한 메뉴를 구축하고 싶어한다.

◆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던 학생시절

어릴 때 만드는 걸 무척 좋아했다. 초등 3학년 때 TV에 나온 꽤 어려운 튀김요리를 그날 바로 따라 했다. 아버지는 대충 봐 넘겼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어떤 ‘감’을 느낀다.

무난하게 지나간 중·고교 시절. 대학으로 가기 전 자신이 뭘 잘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몰랐다. 그 무렵 고모부가 서울 청담동에서 트렌디한 중식당을 오픈했다. 거기서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하는 손님을 보면서 ‘이런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하고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삶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느낌을 품고 경주 동국대 호텔경영학과에 들어간다.

“그때까지만 해도 훗날 제 꿈이 셰프란 확신은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학도 사실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걸 가르치잖아요. 그냥 학점에 매달려 보내는 시절이었죠.”

교수였던 아버지는 보수적이라서 아들이 요리사 되는 걸 반대했다. 거기서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알려고 거의 3년간 고민했다. 졸업하기 바로 전 일이 터진다. 아는 형님과 사업을 했다. 요리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 1년간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마음도 돈도 많이 상처받았다. 패닉 상태로 반년 정도 칩거에 들어간다. 신장결석 등 여러 질환에 노출된다. 어머니가 ‘아들 살리기’에 나선다. 서울의 한 수제두부 가게에서 잠시 일해 보라고 했다. 혼자 상경해 서울 목동에 거처를 마련한다. 그 형님이 그런대로 장사도 잘 되니 그걸 익혀 대구로 가져오자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다. 선인장 추출물을 간수로 사용한 특허 웰빙 두부였다. 어떤 노부부가 그를 보고 ‘참 친절해 보기 좋다’고 칭찬했다. 이런 게 사는 맛인가 싶었다.

◆ 요리 배우러 일본행

20151106

서울의 수제 두부가게서 일하다
요리사의 길 들어서
“제대로 배워보자” 일본 유학
세계 3대 요리학교의 하나
쓰지 요리학원에 들어가
기본의 소중함 배우고
맛국물 우리는 법 익혀

2014년 대구서 퓨전 일식집 오픈
일식 중심으로 한·중·양식 세팅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 추구

비늘까지 먹을 수 있는 옥돔구이
4주 숙성 한우채끝등심 스테이크
루콜라에 우엉·연근·고구마칩 올린
독특한 아소 샐러드 등 일품
20여 종 메뉴 수시로 바뀌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 2010년 일본 오사카로 간다. 우메다에 있는 한 일본인이 경영하는 한일 혼융 스타일의 한식당이었다. 거기서 알바를 했는데 시급 880엔을 받았다. 설거지만 했다. 처음에는 ‘왜 설거지만 시키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리의 전제 조건이 설거지라는 걸 후에 깨닫게 된다.

그들은 위생에 목숨을 건다. 잠시 밖에 컵을 찾으러 나갔다가 들어올 때도 손을 씻는다. 주방 뒤에 쪼그려 앉아 흡연한다는 건 우리는 일상사지만 일본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설거지 하는 틈틈이 식재료와 기물 용어를 익혔다.

드디어 오사카에 있는 ‘쓰지 요리학원’에 들어간다. 이곳은 미국 CIA, 프랑스 코르동 블루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통한다. 심화과정에 40명이 입학했다. 수업료는 1년에 220만엔. 한국, 중국, 대만, 미국, 프랑스 등 세계 전역에서 유학생이 온다. 항상 두 조로 움직였다. 한 조는 음식을 만들고 한 조는 시식을 했다.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망했다.

“입학 직후 대단한 요리부터 배우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도 기본, 나중에도 기본, 끝에도 기본을 강조했습니다. 그때는 지겹던데 기초를 탄탄하게 닦아놓으니 지금 엄청 도움됩니다.”

맛국물 우리는 법도 정립할 수 있었다. 콘부(다시마)의 경우 83℃ 이상 고온에 넣으면 다시마의 안좋은 맛과 진액 등이 빠져나와 맛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 대형 프랜차이즈 요정인 ‘카가만’ 시절

기본기를 몸에 품고 ‘오사카의 긴자’로 불리는 우메다 기타신지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료테이(요정) ‘카가만’에 들어간다. 카가만은 업장 7개가 모두 미슐랭(프랑스의 유명 식당 가이드북) 스타 식당이었다.

“학원의 요리와 식당의 요리가 천양지차라는 것을 그때 알았죠.”

주방장 배려로 일본의 풀코스 정식인 가이세키를 비롯해 어묵과 뎀뿌라(튀김) 등을 조금씩 익혀나갔다.

“가이세키를 하면서 한국인에게 잘 맞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요리를 한국화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취미가 아니고 장사를 염두에 뒀기 때문입니다.”

스시도 해봤는데 자기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드디어 오사카 최고의 먹거리 타운인 도톰보리 근처에 있는 식당 ‘츠보미’에 들어간다. 그곳은 가이세키 및 장어 전문점.

그는 튀김에 능했다.

“한국은 튀김옷에 목숨 거는데 일본은 재료에 중점을 두죠. 일본 튀김은 싱싱한 재료를 튀김옷이란 옷에 입혀 고온에 찐다는 개념입니다. 일본 뎀뿌라가 비싼 이유는 내용물이 모두 고급이기 때문이죠. 재료마다 온도가 달라요. 새우의 경우 210℃, 고구마 130~140℃. 일본에서는 온도계 대신 감으로 알아차려요. 밀가루 반죽을 넣었을 때 바닥에 닿았다가 올라오면 160℃, 중간에 바로 올라오면 170~180℃죠.”

츠보미에선 툭하면 지적받고 깨졌다. 주방장은 멀티플레이어였고 몸에 여러 개의 촉수가 있었지만 그는 한 개밖에 없는 탓이다. 주방장은 그를 일본인처럼 대했다. 외국인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요리에는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일본 주방에선 실수한 것만 혼내지 사람 자체를 미워하진 않아요. 마지막에 장어구이는 실력을 인정받았어요.”

◆ 대망의 귀국길

2013년 3월 귀국한다. 서울 서초동 교대역 근처 이자카야 ‘하레(晴)’에 들어간다. 주방 멤버가 4명인데 모두 츠지 학원 동문이다. 하레는 대표 메뉴가 ‘서비스’. 손님이 부르기 전에 알아서 찾아간다. 그는 튀김류를 담당했다. 그가 개발한 광어와 앤초비 소스를 섞어 만들어 낸 카르파초 같은 회가 인기였다. 그는 육류보다 생선 요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귀국할 때 일본에서 수제 참숯화로를 구입해 왔다. 1년6개월가량 후 지인 소개로 명동의 한 프랜차이즈 퓨전 일식집에서 책임자로 있었지만 독립해야 되겠다 싶어 대구로 온다. 집약된 열정 탓에 그의 창업 시기도 훨씬 앞당겨진다.

이우진 작가의 도움을 받아 흰색 부직포로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 형상으로 천장을 치장했다. 야생화 전문가인 어머니가 액자 대신 각종 야생화를 군데군데 세팅한다.

일단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일식을 축으로 한·중·양식을 그려내려 한다. 전채로 인사하는 ‘크림깨두부(고마토후)’는 찹쌀떡과 치즈를 젤리식으로 합쳐놓은 것 같다. 그의 감각이 녹아 있다. 생크림·우유·칡전분을 이용해 도토리묵처럼 굳혀 매일 낸다. 간장·설탕·맛술(미림)이 섞인 소스에 고추냉이를 결부한 달달매콤한 맛은 이 집의 트레이드 마크.

제주도 생물 옥돔구이의 경우 비늘까지 버리지 않고 파삭하게 먹을 수 있게 화로에서 직접 굽는다.

4주 숙성한 한우채끝등심스테이크는 직화에서 꼬치처럼 구워내고 직접 썰어 내온다. 하지만 소금, 소스, 와사비 등은 별도 용기에 담아서 맛의 강도를 손님이 선택하도록 했다.

국물 요리로는 아롱사태와 우엉채(긴삐라)를 이용한 ‘긴삐라고보나베’가 있다. 그의 자작품이다.

아소 샐러드도 독특하게 루콜라 위에 파삭한 우엉·연근 고구마칩을 올려준다,

메뉴는 20여종. 수시로 바뀐다. 소고기는 영주 소백산 한우만 사용한다. 생선류는 모두 당일 제주도에서 직송해 온다. 오징어와 한치류는 포항, 루콜라와 가지 등은 청도에서 가져온다. 식재료 리스트만 100여 가지. 소스의 경우 돼지고기덮밥용 소스, 샐러드 드레싱, 장어타레, 스테이크소스 등 20여 가지. 일본 지바(千葉)현에서 나오는 ‘야마사 간장’을 사용한다.

대구에 와서 알게 된 진승화 매니저의 콧수염도 이 집의 명물. 알바 포함 모두 5명이 매일 오후 2시~다음날 오전 1시 전쟁을 치른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 (053)217-100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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