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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
조선시대 임금은 경향각지에 수령이나 방백을 내려 보낼 때 ‘향피(鄕避)’의 원칙을 지켰다. 향피는 글자 그대로 ‘고향을 피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사또가 고을의 토호들과 유착하지 않고, 아전(衙前)들에게 휘둘리지도 않아 민폐를 줄일 수 있었다. 인맥이 좌지우지하는 사회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검찰이나 국세청 같은 힘 있는 기관의 인사에는 향피제도의 취지가 어느 정도 살아있다.
그러고 보니 권영진 시장이 대구시장으로 당선되었을 때 문득 떠오른 단어도 ‘향피’였다. 그는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다. 대구와 인연은 고교 3년이 전부다. 어쩌면 주민등록이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는 도시의 시장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향피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폄하(貶下)하자는 말이 아니다. 배타적 도시로 이름난 대구에 혈혈단신 내려와 시장이 되었으니 그의 능력과 배포를 높이 사야 한다.
향피와는 뉘앙스가 좀 다르지만 요즘 ‘메기효과(catfish effect)’라는 말이 유행을 탄다. 미꾸라지 통에 메기 한 마리를 넣어놓으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미꾸라지들이 생기를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인비’가 즐겨 썼다. 사실 그는 북해산 청어 떼를 두고 비유를 한 것이지만 미꾸라지나 ‘도긴개긴’이다. 암튼 메기효과는 주로 기업 분야에서 색깔이 다른 요소를 넣어 전체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을 말한다.
최근 들어 메기효과의 인용 범위가 썩 늘어났다. 가장 실감나게 느껴지는 곳은 은행이다. 인터넷은행이란 ‘메기’ 때문이다. 지난해 카카오은행과 케이뱅크가 가인가를 받자마자 그렇게나 콧대가 세고 문턱이 높던 시중은행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몰라보게 싹싹해졌다. 첨단 ‘핀테크’ 경쟁은 물론 중금리 대출시장이 벌써부터 뜨겁다. 실제로 문을 열려면 금년 하반기는 되어야 하지만 메기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메기효과의 사례는 별의별 꼴이 다 있다. LA다저스는 ‘푸이그’라는 쿠바 출신의 ‘메기’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이케아’가 한국시장에 상륙을 하자 국내 가구업체의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그렇다면 이케아도 메기다. 정치권에도 메기가 있다. 데뷔시절 안철수 의원은 정치판의 메기로 큰 기대를 모았다. 요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김부겸 전 의원은 과연 대구 정치판의 메기가 될 수 있을까.
메기효과의 반대어로 ‘윔블던 현상’이란 말이 있다. 세계 테니스의 성지인 윔블던대회는 영국이 주최하고 멍석을 깔아준다. 그러나 남녀 공히 수십 년 동안 영국인이 우승한 전례가 없다. 남자부의 ‘샘프라스’나 ‘페더러’ ‘조코비치’ ‘나달’, 그리고 여자부의 전설 ‘나브라틸로바’를 비롯해 ‘비너스·세레나 윌리엄스 자매’ ‘샤라포바’ ‘힝기스’ 등 모두가 외국인이다. 영국의 자존심은 겨우 백색의 드레스코드를 고집하는 것이 전부다.
이처럼 남의 잔치에 자기 마당을 내주는 바보짓을 비웃을 때 윔블던 현상이란 표현을 쓴다. 요즘 대구의 정치가 바로 그 꼴이다. 어느 선거구에도 대구 발전을 위한 정책제안은 없다. 오로지 누가 진박(眞朴)이고 누가 가박(假朴)이냐 하는 것만 관심사다. 진박 감별사까지 등장을 했다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다가오는 총선의 계절, 우리 정치판에 지역의 경쟁력을 살릴 ‘메기’가 나타날까. 아니면 과거처럼 ‘윔블던 현상’이 지속될까.
모두가 시민의 손에 달린 것이지만, 그래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누가 주말 아침에 어인 정치얘기냐고 묻거든, 이 글은 정치얘기가 아니라 절체절명의 대구 생존얘기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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