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옷 입은 뽀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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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11  |  수정 2016-01-11 11:18  |  발행일 2016-01-1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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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강사>

어머나, 뽀로로가 옷을 입었네! 두 아들놈과 ‘뽀롱 뽀롱 뽀로로’를 즐겨 보던 시절, 그때의 뽀로로에게는 옷 같은 건 없었다. 모자와 고글이 고작이었다. 맨발로 ‘눈 덮인 숲속 마을’을 돌아다녀도 추위 따윈 몰랐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옷을 왜 안 입었지’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뽀로로가 조종사 슈트를 쫙 빼입고 나온 거다.

처음엔 옷 입은 뽀로로가 어색했다. 갑갑해 보이기도 했고. 그런데 사람의 눈이 이렇게 간사하다. 이제는 벗은(?) 뽀로로를 보면 왠지 추워 보인다. 알몸으로 저렇게 쏘다니면 쓰나, 혀를 찬다. 기껏 옷을 입혀 놨더니 비로소 벗은 몸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이런 아이러니라니.

비슷한 경우가 있다. 일본의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무사시노 미술대학 학생들과 함께 ‘알몸’을 주제로 재미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중 한 학생은 스패너, 포크, 토마토, 달걀과 같은 일상의 사물에 팬티를 입혔다. 조그맣고 하얀 팬티를 입은 스패너는 지금까지의 평범한 스패너가 아니다. 낯설다.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팬티 입은 토마토도 마찬가지. 토마토를 먹으려면 팬티부터 벗겨야 하니, 감히 그러지 못한다. 슬금슬금 살펴보는 수밖에.

달랑 팬티 한 장 때문에 사물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체험. 사물 그 자체에 주목하면서 본질에 접근하는 과정. 하라 교수와 학생들이 의도한 게 이것이었으리라. 팬티는 중요하지 않다. 팬티를 착용함으로써 평범한 물건이 특별해지는 것이 핵심이다.

그나저나 이참에 우리도 ‘팬티 프로젝트’에 동참하면 어떨까. 주위에 너무 흔해 무심코 지나쳐 버린, 하지만 곰곰 그 본질을 성찰해야 할, 뭐 그런 것 없나. 팬티 좀 입히게. 그래, 이게 좋겠다, 뽀로로 노래! 특히, ‘노는 게 제일 좋아'라는, 바로 그 구절.

아이들의 진심이 꽉꽉 눌러 담긴 이 가사를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들었을 테다. 하지만 언제 한번 귀 기울인 적 있었던가. 엄마의 욕심 때문에, 아빠의 체면 때문에, 선생님의 편의를 위해, 아니면 학원 레벨 걱정으로, 아이들의 본성을 외면한 건 아닌지.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을 무시한 건 아닐지. 마음껏 놀게 하면 어디 덧나나. 노는 게 좋다는데. 이토록 놀고 싶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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