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가란 이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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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14  |  수정 2016-01-14 08:00  |  발행일 2016-01-14 제21면
[문화산책] 예술가란 이름표

며칠 전 사무실 근처에서 대학교 선배를 10여년 만에 만났다. 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터라 반갑게 인사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늙었네” “안 변했네”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의 근황을 물으니 학원이나 문화센터에 나가고, 강의도 하면서 산다고 했다. 반가운 인사 중에 선배가 갑자기 “네 표정이 왜 그러냐? 왜 내가 불쌍하냐?”란 말을 했다.

선배의 근황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선배 생활의 고단함이 생각나고 그것이 표정에 묻어났나 보다. 장난을 좋아하는 선배인지라 농담처럼 이야기했고, 나 역시 아니라 극구 부인하면서 헤어졌지만 왠지 스스로 이상하고 찜찜한 마음이 오래 가시질 않았다. 나 역시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수입으로 삶의 가치를 따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부터 시중에는 ‘금수저’ ‘흙수저’ 같은 말이 유행처럼 떠돌고 있고, 젊은이들은 거기에 자기를 대입해 그것이 운명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 전 전도유망한 청년도 그런 배경이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절망하며 세상을 버리기까지 했고, 매스컴은 이것이 마치 사회적인 현상이자 현실이라도 되는 듯 여러 객관적 증거를 들이대고 있다. 아무리 자본을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사회라지만 이토록 운명적인 현실을 강조하는 것은 마치 힘없는 너희는 고분고분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또한 공공연히 미디어가 이러한 분위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가운데 근래 봉산문화회관에서는 전형적인 삶의 공식을 무색하게 하는 전시가 열렸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부터’전에 참가한 ‘6, 7그룹’은 1950년대와 60년대생으로 구성된 미술가들이지만, 삶의 조건과 무게 때문에 예술가로서 삶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50세 넘은 최근에 의기투합한 단체다. 이들은 지금까지 많은 고민과 선택, 각자의 길이 있었지만 항상 마음 깊은 곳에 버릴 수 없었던 것이 예술이라 고백하였다. 가슴속 열망 때문에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그들의 작품에서는 꾸미지 않은 여유와 그간 곱씹었던 생각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이란 심지에 다시 불을 붙인 그들의 용기에 존경을 보낸다. 이들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볼 줄 아는 자존감과 그것을 가꾸는 노력이 자신을 빛나게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스스로 붙인 ‘예술가’라는 이름표가 그들을 자랑스럽게 할 것이다.
박민영 <대구문화예술회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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