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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영 <대구문화예술회관 학예연구사> |
한국 미술사에서 1980년대는 민중미술운동이 일어나고 사회에 대한 미술의 비판적 발언이 높았던 때다. 대학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시대적 아픔을 이야기한 데 비해 유독 대구에서는 이러한 미술이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1960년대의 대구 추상회화 전개 과정에서 현실을 보는 대구 미술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1963년 대구의 화단에는 ‘앙그리(Angry)’라는 추상그룹이 창립되었다. 지금까지 1970년대의 신조회 이전에 활동한 추상화 그룹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한 신문자료를 통해 이 그룹이 군인, 중·고등학교 소장교사, 룸펜(실업자)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울부짖듯이 찢고 태우고 흘리는 등의 표현을 하였고, 제목을 붙이지 않은 채 작품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당시에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던지 기성작가들은 그들의 과감한 시도를 평가하면서도 기형적인 모습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1960년대 초는 4·19가 일어나고 부정부패에 대한 변혁을 요구한 시기였다는 점에서 이때의 대구 미술이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고발하려 한 첫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구체적인 형상이 있거나 설명하지 않더라도 작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현실을 작품에 반영한다. 작년에 있었던 유병수 선생의 유작전에서는 현실을 보는 작가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50여년을 줄곧 추상 회화로 작품세계를 이룬 작가는 추상으로 현실을 표현하려 했음을 내비친다. 그는 1980년대에 아웅산 테러와 같은 비인간적인 파괴의 현장을 날카로운 나이프의 선으로 나타냈고, 성수대교 붕괴를 보면서 부조리한 사회를 통탄하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버려지는 일상의 재료를 작품에 자주 사용하였다. 오랫동안 화실에서 뒹굴며 화가의 붓을 닦았던 걸레, 시기 지난 달력, 쓰임을 다한 편지봉투, 버려진 골판지 등은 단순히 작품의 조형을 채우기 위한 도구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삶을 담은 사물을 선택한 작가의 시선이 녹아 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추상임에도 일상과 삶의 무게를 전달하려는 리얼리즘을 담보하고 있다. 작가는 1983년 개인전 서문을 통해 작품에서 한 자신의 발언이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하는 데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비록 그의 발언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겪은 현실의 아픔을 미술의 언어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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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현실을 보는 미술](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1/20160128.01021075403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