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오빠가 설명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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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12  |  수정 2016-02-12 07:58  |  발행일 2016-02-12 제21면
[문화산책] 오빠가 설명해 줄게
김병수 <극단 엑터스토리 사무국장>

움직이는 말 사진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와 관련된 책을 저술한 작가 레베카 솔닛은 모임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녀가 자신이 저술한 책을 언급하며 자기소개를 하자 이 남자는 최근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와 관련된 중요한 책이 나왔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 책을 썼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가 말한 책의 저자가 그녀임을 주위에서 설명하자 그는 잠잠해졌다. 알고 보니 이 남자는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신문에 난 리뷰 기사를 근거로 설명했던 것. 이후 2008년 솔닛은 이 대화를 소재로 ‘설명하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의 에세이 기사를 썼다. 이때 생겨난 단어가 남성(man)과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인 ‘맨스플레인(mansplain)’이다. 이 단어는 2010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 리스트에 올랐다. 2012년 미국 언어 연구회 선정 가장 창의적인 단어로 선정됐고,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에까지 등재됐다. 우리나라에선 SNS를 통해 ‘오빠가 설명해 줄게’로 유명해졌다. 관련 사례가 열거되는‘맨스플레인 대회’도 열리고 ‘설명충’이란 비속어까지 등장했다. 이뿐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게 이 단어를 쓰면 누구나 격한 반응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복잡한 그 무엇이 있었다. 우월한 남성이나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자신보다 열등하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에게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듯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냥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짓는 행동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단정인가. 나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되돌아보게 된다.

남성과 여성을 다른 관계로 치환시켜보자. 백인과 비백인 관계를 나타내는 ‘화이트스플레인(whitesplain)’, 우익과 비우익 관계 ‘라이트스플레인(rightsplain)’ 도 마찬가지다. 좀 더 확장해보면 갑을 관계에 있는 모든 관계가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물론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냥 다양한 생각이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수직관계에서 오는 경직보다는 수평관계에서 오는 자율이 더 많은 창의력과 효율성을 준다고 믿는다. 그런 수평관계에서의 ‘오빠가 설명해 줄게’는 세상을 사랑스럽게 만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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