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교육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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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24  |  수정 2016-02-24 08:02  |  발행일 2016-02-24 제23면
김사람 <시인>
김사람 <시인>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체질은 생각지도 않은 채 홍삼, 보약이나 각종 영양제 등을 상대의 입으로 밀어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전개되는 우리의 교육이 그런 상태는 아닐까. 말도 떼기 전부터 시작되는 교육 프로그램의 홍수는 아이들을 잠시도 가만히 두려 하지 않는다. 매뉴얼에 맞춰 빈틈 없는 교육 프로그램 속으로 아이들을 던져 넣는다.

목표 지향적이 아니거나 목적 없는 행위는 쓸데없는 짓이거나 비효율적이라는 의식은 성과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학교 및 경쟁적 사회에서 내 자식들이 도태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을 이용한 ‘상업주의의 산물’이다. 매사 교육적으로 좋은 것만을 선별하여 제공하기란 물질적, 정신적으로 만만치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고통과 스트레스를 감수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부모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희생을 하여 아이에게 최고의 것들을 제공한 뒤 ‘너는 왜 이걸 못하니?’ ‘왜 이걸 하지 않니?’ ‘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거니?’ 하면서 강요한다. 여기에서 틈이 발생하고 단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통 불능이다.

이쯤 되면 교육이 교육을 죽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교육은 ‘양방향성’이어야 한다. 교육이 상호소통이 없는 것이 될 때 비교육적이 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 관계는 폭력적으로 변하고 그러한 교육은 종국적으로 ‘마음의 폭력’을 잉태하게 된다.

교육의 과잉이 낳는 결과가 바로 폭력이라면 우리는 저항할 수밖에 없다. 맹목적 목표의식을 버려야 한다. 내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순수한 목적’을 제외한 ‘교육적 과잉 욕망’을 과감히 떨쳐내야 한다.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목적, 목표는 아이들의 목적과 목표와는 다를 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른들의 욕망을 대신 충족시키며 살아야하는 아이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아이들과 더불어 교육을 하는 건지,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돌이킬 수 없는 ‘자본주의적 폭력’을 내면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새 학기를 앞둔 지금 깊은 자성의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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