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세종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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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23  |  수정 2016-03-23 08:14  |  발행일 2016-03-23 제23면
[문화산책] 세종의 후예
정훈교 <시인보호구역 대표>

“봄이 성큼 왔지 말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은 겨울이지 말입니다. 그래도 오늘 아침, 뜨거운 태양을 봤지 말입니다.” 이 말투는 송중기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자주 나오는 끝말을 이용한 것이다. 극중 군대 용어로 사용하는 “~이지 말입니다”가 이미 여성 시청자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도 동시에 방영된다고 하는데, 비문이 국어처럼 비칠까봐 노파심이 든다. 비단 ‘태양의 후예’뿐 아니다. 공중파·케이블 가릴 것 없이, 언어파괴가 진즉에 도를 넘었다.‘ #G, 계룡남, 궁물, 낫닝겐, 더럽, 성덕, 할많하않, 솔까말’ 등등 정체불명의 외계어가 지구행성, 그중에서도 우리말을 강타하고 있다.

필자는 시인이고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 그러나 일상으로 국어를 쓰는 필자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사전을 찾는다. 이렇게 하더라도 틀리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마다 스스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시를 쓸 때 나름의 원칙이 있다. 가급적이면 한자어를 쓰지 말자, 일상에서 쓰는 입말(口語)을 쓰자, 외래어는 쓰지 말자 등등. 모국어인 한글을 두고, 굳이 한자어나 외래어로 쓰는 것은 맞지 않다. 위의 예처럼 정체불명의 한글조합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직업병(?)일 수도 있는데, TV를 보다가도 이런 말이 자막으로 나오면 나도 모르게 혀를 차는 모양이다.

가족들은 ‘꼰대’(?)라고 놀리지만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의 깨어있음이라고 변명해본다. 말은 입으로 나오기 전, 머릿속에서 말로 나가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친다. 이때 말은 얼을 담는다. 그렇기에 앞의 시구(詩句)처럼 말은 신성한 것이다. 교육학자 이규호 선생은 “우리말에는 겨레의 얼이 살아 있다”고 했다. 심지어 말은 세상을 바꾸기도 했지 않은가. 문제는 방송 용어를 청소년들이 유행어처럼 따라 한다는 데 있다.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파괴는 막기 어렵지만 방송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파괴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언어에도 생성과 소멸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생성은 분명 언어파괴로 태어난 말을 뜻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얼을 담는 말의 본질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 방송을 보다가 문득 몇 자 적는다. 우리말이 소멸에 들지 않도록 모두가 부단한 노력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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