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그룹전 명칭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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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1  |  수정 2016-06-21 08:07  |  발행일 2016-06-21 제25면
최성규 <한국미술협회 정책연구소장>
최성규 <한국미술협회 정책연구소장>

작가에게 있어 작업에 대한 열정과 방향성의 일치는 매우 중요하며, 이들이 그룹을 형성하여 작품을 발표할 경우에는 사회적 가치형성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소수 또는 집단적 발언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사회적이거나 문화사적인 필연을 이념에 근거하여 성격을 규정하면서 어떤 미학적인 입장을 드러내고자 하는 전시가 그룹전의 본래 취지다. 물론 이런 경우 작가의 개인적인 작업 방향과 그룹의 이념성이 일치하기도 하겠지만 때론 이념성이 강한 그룹에 소속되어 평소 관심은 두고 있었지만 작업으로 구체화하지 못했던 자신의 의지를 작품화하면서 영역을 넓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룹전의 명칭은 어떠한 이슈나 철학적 발언 없이 규모에 치중하면서 의례적이고 권위적인 전시형태를 띠고, 다른 전시와 구별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전시명 또한 전시작품의 성격을 규명하기보다는 기획자와 참가자의 차이일 뿐인 상황이 대규모로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전시 참가자조차 상당 부분 중복되어 전시명에 따른 이념적 방향이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이 경우에 있어서 현장 미술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작가나 기획자가 자유롭지 못하다. 직접 가담자이거나 방관자이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게 어정쩡하여 필요에 따라 명분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작가적 양심을 바탕으로 한 책임감과 이에 따른 작가적인 행동이 결사(結社)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의지들이 토로되면서, 화단과 사회적 상황에 대하여 수동적 태도가 아닌 작가적 양심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지로 그 방향이 전환되는 몇몇 시도들이 보여 주목된다.

이제는 단체명이나 전시명에도 좀더 고민이 필요하다. 거대담론적인 명칭만 만연한 지금의 경우는 출발부터 앞에서 지적한 모든 문제점을 안게 된다. 회원모집용이나 과시용이 아니라 표현주체와 표현대상 간의 관계와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책임 인식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전시명이나 단체명이 관람자에게 작품을 이해하는 데 일차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경우는 작업방향에 대한 지남(指南)이 아니라 작업 외적인 의도와 목적만 남아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전시제목의 의미를 스스로 되짚어 보아 스스로 되돌려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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