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비오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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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8  |  수정 2016-07-08 07:53  |  발행일 2016-07-08 제17면
[문화산책] 비오는 오후
이지원 <피앤씨 갤러리 아트디렉터>

2010년부터 미국 국립기상센터는 2년마다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기후가 주제인 예술 작업이 그 대상이다. 기후라니! 인류에게 기후만큼 많은 영감과 드라마를 주는 것이 있던가. 폭풍이 휘몰아치는 맥베스의 황야, 스코틀랜드의 돌산을 걷고 있는 리처드 롱의 대지 예술에서 우리는 안개 속 검은 흙의 언덕과 동트는 하늘의 장관을 본다. 해가 뜨면서 우주가 걷히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대기의 층이란 또 얼마나 얇디 얇은지!

인간의 예술적 감흥의 기원이 자연이라면 그중에서도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는 중력과 대기는 태초 이래 인간의 상상을 자극하는 제1의 추상이었을 것이다.

대기의 추상성을 가장 닮은 예술은 음악이다. 20세기 현대음악의 거장 죄르지 리게티는 그의 관현악을 위한 곡 ‘Atmosphere(대기)’에서 음악의 전통적 표현 요소인 선율, 화성, 박자 대신 소리 그 자체의 풍경과 음향의 밀도를 연구했다. 음악을 공부하던 학창시절, 안개처럼 서서히 밀리다가 시커먼 구름덩어리가 되어 폭발하는 소리의 클러스터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여름 하늘 어디에선가 일어났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대기의 드라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우주의 거대함을 묘사할 때 이 곡을 사용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무단으로 삽입하여 작곡가가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나중에 영화를 보고 기꺼이 곡의 사용을 허락했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우주에 대한 장엄한 상상의 재료가 지구의 대기라는 것이다. 우주는 거의 진공 상태이니 대기의 운행도, 소리 자체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기후는 예술적인 감흥의 소재만은 아니다. 1977년 태양계의 외행성들을 관측하기 위해 발사된 보이저호에는 탐사 여행 중 혹시 만날지 모르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 보내는 인류의 메시지를 담은 ‘골든 디스크’가 실렸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기획으로 이 골든 디스크에는 인류를 알릴 수 있는 많은 소리들을 담았는데 그중 한 가지가 여름철의 빗소리였다. 그것은 물이 있고, 대기의 순환이 있고, 차갑게 얼어붙지도, 타오르지도 않는 촉촉한 지구의 풍경이다. 인간의 심상 깊은 곳을 울리는 장마철 빗소리는 태양계 너머 그 누군가에게 보내는 인류의 메시지가 되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삶 가운데 비를 보며 작곡가와 천문학자의 사색을 생각해보았다. 비는 사람을 멜랑콜리하게 만드니.

장마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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