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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경 <성악가> |
서울 막내딸 집에서 며칠을 밥하고 청소하는 무료봉사 후 지쳐 돌아온 엄마는 겨우 샤워를 하고 나와 동충하초처럼 엉킨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침대에 누우려 했다. 예전에 엄마가 내게 그랬듯이 “엄마, 이러면 벌레 생기고 감기 걸려”라며 협박해 앉히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주었다. 젊을 때의 엄마였다면 들은 척도 안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을 텐데, 지금 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돌아앉아 내게 머리칼을 맡겼다.
“됐다. 이제 그만.” 엄마는 욕실로 가 큰 거울 앞에 서서 손가락을 구부려 빗처럼 만들어 머리를 슥슥 빗다가 긴 숨을 쉬며 말했다. “많이 늙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고 허전하지도 않은 신기한 목소리로. 엄마 옆으로 가 방금 엄마가 했던 것처럼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엄마 예쁘다. 참 예뻐.” 엄마는 수줍은 듯 또 쓸쓸한 듯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했던 말을 네가 하네.” 크게 쌍꺼풀진 엄마의 눈이 멈칫 하더니 말을 이었다. “네 얼굴도 이렇게 된단 말이가? 내 딸이, 네 얼굴이 이렇게 되는 건 너무 싫은데.”
후두가 딱딱해지면서 심장 안쪽이 손가락으로 꾹 누르는 듯 아파왔다. “자식을 낳아봐야 너도 부모 마음을 알지” 하던 엄마에게 질색팔색 하며 “왜? 똑 나 같은 딸 낳아서 고생하라고? 싫어. 엄마 딸 고생하는 게 그리 보고 싶어?”라며 대들었었다. 평생 다 못 갚을 사랑 받고 지은 죄만 많은 딸인 나. 자식 키우며 맘 아파보고 죽도록 고생하고 엄마 생각에 울고불고 가슴 치며 후회하는 걸로 죗값이라도 치러야 했다.
2005년 여름. 로마에서 유학 중이던 내가 더워서 잠을 설쳤다고 투덜댄 지 며칠이 지났을까. 엄마 편지가 왔다. ‘경아, 어제는 처음으로 집에 에어컨을 켰어. 실내온도가 30℃를 넘더라. 엄마가 갱년기라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드네. 윤경 생각하니 미안해서 한 시간만 틀고 껐어.’ 유별난 갱년기로 땀을 비 오듯 흘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세수를 하던 엄마는 숨 막히게 뜨거운 대구의 여름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집을 팔고 땡 빚을 내서라도 너 꼭 공부시킨다” 하고 힘주어 말하던, 지금의 나보다 고작 일곱 살 많았던 엄마가 그립다. 작은 얼굴에 가녀린 몸의 젊은 내 엄마를 만나 “엄마 참 예쁘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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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예쁜 엄마](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7/20160714.01021074858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