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화마’를 기다리며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07-18  |  수정 2016-07-18 08:17  |  발행일 2016-07-18 제22면
[문화산책] ‘화마’를 기다리며
김남희 <화가>

“귀신도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다. “귀신 같이 하라”는 말도 종종 사용한다. 이때 귀신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존재를 말한다. 이런 귀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 중에 예술가가 있다. 흔히 말하는 ‘화마(畵魔)’나 ‘시마(詩魔)’가 바로 ‘창작의 VIP’ 대접을 받는 예술가들의 귀신이다.

화가들은 은연중 화마를 기다린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고민 중일 때, 솜씨 좋은 ‘그림 귀신’이 찾아와 엉킨 붓질을 술술 풀어주기를 기대한다. 시인 또한 마찬가지다. 정민 교수가 쓴 ‘한시미학 산책’에는 시인이 시마에 걸린 상태를 자세히 전한다. “시마는 ‘시 귀신’이다. 시마는 시인에게 들어와 살면서 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를 생각하고 시만 짓게 하는 귀신이다. 시마에 걸린 증상은 여러 가지를 꼽지만 그중에 목욕을 싫어하고 머리 빗기를 게을리 하며, 끙끙대고 인상을 써서 갖은 근심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참으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화가 역시 화마에 걸리면 이와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다른 일에 신경 쓰지도 못하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한다. 행여 좋은 작품이라도 나올까 붓을 무기삼아 화폭과 전쟁을 벌인다. 혹여 그분이 오실까, 버선발로 달려 나갈 태세다.

옛 화가 중에 화마에 걸려 그림을 전수한 이가 있다. 중국 청대의 고기패(1662~1734)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랴오양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에 두각을 보였는데, 하루는 꿈에 도인이 나타나 그가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손가락에 먹을 찍어 그리는 ‘지두화’였다.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다가 마침내 그만의 개성적인 화법을 창안해낸다. 화마가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한 셈이다.

고기패의 ‘고강독립도(高崗獨立圖)’는 지두화법으로, 그림에 득도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손에 먹을 묻혀서 낙서한 것처럼 그린 바위 위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한 도인이 서 있다. 바람이 도인의 옷자락을 흔들어 오묘한 세상사를 전해주는 것만 같다. 세로로 긴 공간에, 서 있는 인물이 더 고고하게 보이는 구도로 엄숙함을 극대화한다. 왼쪽에 세로로 길게 쓴 제발(題跋)은 그림과 함께 빼어난 공간감을 연출한다.

큰일을 준비하는데 간혹 마가 낄 때가 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으면 마의 방해도 그만큼 심해진다는 뜻이다. 마를 극복하는 것은 도의 경지에 들려는 끊임없는 정진이다. 정녕 노력하는 자만이 귀신을 감복하게 한다. 어쩌면 귀신은 피나는 노력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