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허버트 보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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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2  |  수정 2016-07-22 07:53  |  발행일 2016-07-22 제17면
[문화산책] 허버트 보겔 이야기
이지원 <피앤씨 갤러리 아트디렉터>

허버트 보겔은 할렘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이민 온 유대인의 아들이다. 구부정한 작은 키와 평범한 외모의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980년 은퇴할 때까지 뉴욕의 한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을 한다. 1962년 그는 브루클린 공공도서관 사서인 도로시 보겔과 만나 결혼한다. 이들은 맨해튼의 방 한 개짜리 임대아파트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와 금붕어, 그리고 열다섯 마리의 거북과 평생을 함께한다. 동물 키우기를 제외한 이들의 유일한 취미는 미술이며 가끔 뉴욕대의 미술사나 데생 수업을 참관한다.

어느 날 둘은 자신들이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그리 소질이 없음을 알게 된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 모든 미술관과 전시회를 섭렵하며 미술에 대한 확고한 취향과 신념을 가지게 된 그들은 도로시의 봉급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해결하고 허버트의 봉급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사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허버트와 도로시의 현대미술 컬렉션은 시작되었다.

여전히 방 한 칸짜리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하나둘 모은 작품은 1992년에는 무려 오천점에 이르렀다. 겨우 지나다닐 만큼의 통로만 남긴 채 집안의 모든 벽과 공간이 작품들로 가득 찼다. 화장실과 침대 밑까지!

비평가들은 그들의 컬렉션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을 시기별로, 장르별로 꼼꼼히 수집해 놓은 20세기 미술의 교과서’라고 평한다. 한 우체국 직원의 현대미술 컬렉션이 백만장자 게티나 사치 컬렉션과 나란히 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앤디 워홀, 솔 르윗 등 그들의 소장품 거의 대부분은 작가가 유명해지기 전에 소장한 작품들이었다. 2008년 허버트와 도로시 보겔은 Vogel’s 50x50 project라는 이름으로 소장품 중 엄선한 2천500개의 작품을 50개 주마다 미술관 한 곳에 50점씩 기증한다. 이들 부부의 놀라운 이야기는 수집가와 미술 애호가들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우리는 무엇을 모으는가? 어떤 이는 어릴 적 낡은 인형을 버리지 못하고 어떤 이에게 철 지난 만화책 상자는 버리기 힘든 소중한 추억인 것처럼, 우리가 모으고 소유하는 모든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에 관한 수집품이다.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그것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무언가를 향한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를 알게 되고 그것과 함께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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