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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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7  |  수정 2016-07-27 08:07  |  발행일 2016-07-27 제23면
[문화산책] 손편지
홍영숙 <시인>

편지를 써서 보내기 전에 꼭 복사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기록을 잘하는 친구의 습관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우연히 친구의 책상에 있는 종이파일을 열었다가 낯익은 편지들을 보게 됐다. 거기에는 꽤 많은 편지들이 서류철처럼 잘 보관되어 있었다. 모두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었다. 친구는 늘 손편지를 써서 한 부를 복사해 자기 자신에게도 보낸 것이다. 그나마 복사기가 있어서 다행이지,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장문의 편지를 복사해서 간직하는 일은 얼마나 번거로운가.

최근 인터넷 뉴스에는 ‘손편지 선생님’이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지난 20년 동안 학생들에게 손편지를 전해온 이야기다. 선생님은 매년 학기 초가 되면 학생들의 사진을 보며 얼굴을 익히고 생일을 조사했다고 한다. 대상을 모르고 편지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니 그리했을 거라 짐작된다. 이 선생님의 하루는 편지 쓰는 일로 시작했을 것 같다. 학생의 모습을 생각하며 저마다의 성격에 맞는 내용으로 세상에 왔음을 기뻐해주고 축하의 마음을 전해왔을 터이다. 때로 편지를 쓰는 일이 수고롭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론 참으로 풍요로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20년간 학생들에게 쓴 편지가 무려 2만5천통이 넘는단다. 선생님의 축하에 대한 답으로 학생들 또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쓴 편지를 선생님께 보내고 있다고 한다. 손편지로 마음을 이어가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연이 복잡하고 팍팍해진 내게도 잠시의 위안을 준다.

언제부턴가 기계식 자판에 익숙해진 우리는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쓴다는 것을 수고로운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직접 손으로 쓰는 편지를 고집한다. SNS의 편리함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선생님의 손편지가 학생들의 마음을 열었듯이, 친구의 손편지는 늘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지금도 내 방 한 구석에 놓인 상자를 열면 그때의 설렘을 고스란히 담은 편지들이 나를 기다린다. 빛바랜 봉투에 쓰여진 단아하고 예쁜 글씨에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던 든든한 친구의 얼굴이 담겨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 친구는 아직도 예전처럼 손편지를 보관하고 있을까. 오늘 밤엔 친구에게 긴 손편지를 써야할 것 같다. 홍영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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