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탁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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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8  |  수정 2016-08-08 08:18  |  발행일 2016-08-08 제23면
김남희 <화가>
김남희 <화가>

8월의 도시는 ‘태양의 독재치하’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피난’을 떠난다. 고속도로에서는 차량행렬로, 공항에는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해수욕장에는 인파가 몰린다. 반대로 끝까지 도시를 사수하는 이들도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도서관 등지를 피난처 삼아 태양에 저항한다. 그림이나 책과 더불어 더위를 잊는다. 멀리 떠나기보다 내면으로 떠난 셈이다.

장자는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더욱더 미적 향수를 얻게 된다”고 했다. 자유로운 정신은 예술을 향유할 최대의 조건이다. 마음을 풀어놓고 자유롭게 그림 속으로 잠수한다. 관폭(觀瀑)이나 탁족처럼 옛 선비들이 ‘더위를 다스린’ 그림도 있다. 그중에서도 ‘탁족도’가 유명하다. 탁족도의 ‘스타 그림’으로는 낙파 이경윤(1545~1611)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를 꼽을 수 있다. 이경윤은 왕실의 후손으로 학식과 인품을 갖춘 화가였다. 그는 ‘탁족’을 즐기는 그림으로 호평을 받았다.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고사가 있듯이, 탁족도로 이경윤의 그림만 한 것도 없다. 누구나 물소리가 싱그러운 계곡으로 가면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런 마음을 격이 있으면서도 실감나게 포착했기에, 작품을 보는 이들의 마음도 덩달아 시원함을 느낀다.

그의 ‘고사탁족도’에는 잎이 풍성한 고목이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고목의 가지마다 분홍빛 꽃이 피어 운치를 더한다. 자연의 소리는 멈추었다. 오로지 계곡물 소리만 하얗게 귓속을 채운다. 선비는 체면을 벗어던지고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다리를 훤히 드러내놓고 가슴마저 풀어헤쳤다. 동자가 술병을 대령했다. 선비의 눈이 빛난다. 약주가 되겠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나무가 잘 꾸며져 있는 냇가를 배경으로 산수보다 탁족을 즐기는 인물에 초점을 두었다. 수묵담채로 농담의 대비가 조화를 이룬다. 몇 가닥으로 표현한 옷 주름은 기운생동하고 필묵의 솜씨가 탁월하다. 화가의 자유로운 정신이 화면 가득 서렸다.

이 여름, 가까운 계곡이라도 찾아서 뼛속까지 시원한 탁족을 해보자.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해방감이 있지만, 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일 수 있다. 몸의 피로가 가시면 마음마저 맑아진다. 이때만큼은 탁족도 속의 선비처럼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 휴가는 느리게 즐길수록 제 맛이다. 발을 담그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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