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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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9  |  수정 2016-08-09 08:18  |  발행일 2016-08-09 제26면
[문화산책]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권경훈 <연극인>

원이 엄마의 편지. 이 한글 편지는 1998년 4월 안동에서 택지 조성을 위하여 분묘를 이장하던 중 한 남자의 관에서 나온 편지다. 미라의 주인공은 이응태(1555~86)다.

부인인 원이 엄마는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남편에 대해 그 그리움을 편지로 남겨 1586년 7월16일 관 속에 함께 넣어두었다. 여기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은 미투리도 들어 있었는데 ‘신어보지도 못하고 갔다’는 글이 들어 있어 보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 글을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옮겨보면 “원이 아버지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죠.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라는 내용이다.

이 편지에서 아내 원이엄마는 남편을 ‘자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 아내가 남편을 부른 호칭은 ‘자내’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당신’일 테지만 이 편지에선 ‘자내’라고 부른다. 조선사회는 중기까지 딸이 아들과 동등하게 제사를 지내왔고, 유산도 같이 물려받았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이들 부부의 호칭인 ‘자내’에서 당시 부부 사이의 평등을 엿볼 수 있다.

부치지 못하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울림이 컸던 것은 결국 ‘사랑이란 무엇인가’였다.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아니 수백년이 지나가도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근본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는 것이다. 인종의 차이든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도시든 시골이든 많이 배우든 못 배우든 다를 수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저승이 아니라 그 어디에 있더라도 이런 말을 잊어버릴 남자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이혼소송하러 온 부부가 볼 수 있도록 가정법원 문앞에 게시하면 이혼율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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