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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희 <화가> |
여고시절, 감성이 풍부한 친구가 있었다. 눈 오는 날이면 천이 얇은 검정색 운동화가 흠뻑 젖도록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던 친구였다. 학교에 수박을 사오다가 떨어뜨려 수박은 못 먹고 얼음만 깨물던 시절. 그 순수한 시절을 우린 함께 보냈다. 시간이 흘러 친구는 불문과에 갔고, 나는 회화과에 갔다. 시대의 아픔은 사람마저 바꿔놓았다. 대학 1년이 지나 친구 집에 들렀을 때, 그곳엔 내가 알던 친구는 없었다. 방 안 가득 혁명가의 자서전과 역사책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대학캠퍼스가 최루탄으로 자욱하던 1980년대에 이념과 사상의 머리띠를 두른 채, 친구는 그곳에 있었다.
광복절 아침, 문득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격동기를 살다간 화가 중 이쾌대(1913~1965)를 떠올려본다. 칠곡에서 태어난 이쾌대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여고생이던 유갑봉(1914~1980)과 결혼한다.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39년에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화가로서 시대와 마주하며 붓을 들었다. 주로 조선의 전통적인 여인상과 현실에 직면한 인물들을 그렸다.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서경식은 “이쾌대가 그린 여성상은 조선인이 처한 ‘어둡고, 무거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민족의상을 입은 조선여성을 그저 전통적인 표상으로 끝내버리지 않고 그 내면에 숨 쉬는 근대를 향한 지향성을 그려냈다”라고 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군상Ⅳ’은 1948년의 시대적 혼란과 사람들의 열망이 사실적인 필치로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뒤엉킨 인물들의 역동적인 포즈와 남녀노소의 얼굴에는 아우성과 환희, 갈등이 교차한다. 배경에는 밝아오는 새 시대의 예감이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암울했던 해방공간의 초상을 보는 것 같다.
광복의 즐거움도 잠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이쾌대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월북하고 만다. 아내 유갑봉은 서슬 퍼런 군사정권하에서 가난과 맞서 자식들을 키우며, 이쾌대의 작품과 유품들을 악착같이 지킨다. 1988년, 정부에서 월북화가를 해금조치하면서 비로소 이쾌대의 수많은 걸작이 실체를 드러냈다. 미술계 안팎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성에 기반한 뛰어난 묘사력과 풍부한 연출력은 우리 미술사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이 모두가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의 힘이었다. 이쾌대는 아내 덕분에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여고시절, 그 친구는 나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다시 생각해 본다. 나라 말고 무엇이 중요한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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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이쾌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8/20160815.01026082258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