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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경 <성악가> |
올림픽이 시작되고 예상했던 대로 밤낮이 바뀌어 좀비가 되었다. 공연 시즌이 아니면 웬만한 국가대항 경기는 꼭 챙겨보며 “오늘 우리 애들 너무 고생했어”를 연발하는 나를 남편은 ‘국민언니’라 부른다. 특별히 스포츠를 좋아해서도, 메달 때문도 아니다. 결과에 관계없이 마지막까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선 그들을 응원함이다.
예능과 체능을 굳이 따로 구분짓지 않고 예체능을 묶어 분류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과정보다는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성악가란 직업은 명확하게 점수가 나오는 시험으로 기회를 부여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로 무대생활을 연명한다. 나이가 들어도 관계없다. 끊임없는 오디션이다. 아무리 잘 준비하고 밤낮으로 집중해서 갈고닦아도 그날 사레가 걸려 기침만 잘못하면 끝이다. 늘 자던 시간보다 한 시간만 덜 자도 그날은 고음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공연 시즌 우리 집에는 내가 기상하기 전까진 발소리도 내는 사람이 없다. 전화 코드도 뽑혀있다. 시급으로 따지면 엄청난 돈을 받는 직업이지만 퇴근시간이 없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다. 자면서도 소리를 내어 발성을 확인하니까.
나는 무대에 오르기 전 늘 기도만 하진 않는다. 가끔씩은 욕도 한다. “내가 이 짓 하느라 수명이 짧아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까짓 거 얼른 때려치우고 산으로 들어가야지.” 지독한 무대공포증이 있어서다. 처음 연주해 보는 곡을 해야 하거나 연습이 제대로 안 되었을 때, 반갑지 않은 관객이 와있을 때는 정말 도망치고 싶다. 손발이 떨리고 가사도 잊어 가끔은 신경안정제에다 혈압 약까지 먹기도 하는데, 그럴 땐 싸우기 전에 이미 진 느낌이다. 밀려오는 패배의식으로 무대에 오른다. 내 웃음이 더할 나위 없이 환해보이기를 바라며.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들. 우리 아이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얼마나 무서울까. 22세 박상영 선수가 결승전 중 “나는 할 수 있다”를 되뇌는 것을 보며 나는 함께 울었다. “할 수 있다”를 수없이 외쳤지만 실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결국 해내지 못했던 나를 생각했다. 세계인의 축제이니 즐기라는 말은 너무도 쉽다. 마디마디 으스러지도록 아팠을 것이며 내장이 목구멍으로 밀려올라오도록 울었을 그들의 셀 수없는 밤들을 생각하면. 오늘도 텔레비전 앞에서 새벽을 맞으며 위대한 우리 청년들 얼굴에 눈물 없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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