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글쓰기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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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9  |  수정 2016-08-19 07:54  |  발행일 2016-08-19 제17면
이지원 <피앤씨 갤러리 아트디렉터>
이지원 <피앤씨 갤러리 아트디렉터>

옛날 사람들의 글에는 요즘에는 없는 멋이 있다. 가끔 옛날 신문 아카이브에서 1930년대 신문에 기고된 그 시절 지성들의 짧은 에세이를 읽으면, 우아한 말투와 선한 생각에 내 마음도 풀린다. 점점 일과가 바빠지니 글을 읽을 시간도, 쓸 시간도 부족하다. 글쓰기는 마음으로 말하는 연습 같다. 생각이란 심지 없는 불과 같아서 무게도 깊이도 없이 일렁이다가 다음 순간 사라져 버리는 일루전에 불과하다. 글쓰기는 생각이 머무르며 타오를 심지를 만들어 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생각은 비로소 점잖게 타오르며 실존하는 무언가가 된다.

역사 이전, 구전의 시대를 살던 인류는 어떻게 글자라는, 생각을 담는 이 기발한 장치를 고안해 낸 것일까. 초기 미명의 인류가 이룩한 구전문명에서 기록문명으로의 변화가 가져온 인류 지성의 변혁은 대단했을 것이다. 특히 인류는 글을 읽음으로써 다른 이와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내면의 음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소리 내지 않고 마음으로 글을 읽는 내면의 음성.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 묵독이 인류 역사에 굉장히 최근에서야 등장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문헌상 최초의 묵독 기록은 5세기 초 로마의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에 처음 나온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스승 성 암브로시우스를 만나러 그의 방으로 갔을 때 스승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놀라 조용히 스승의 상태를 확인하니 스승은 바로 소리 없이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불꽃이 튈 듯한 눈으로 꼼짝도 않은 채 책을 쏘아보는 스승을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스승이 악마에게 홀린 줄 알고 그대로 도망가 자신의 방에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묵독, 즉 ‘내면의 음성’은 서서히 모든 인류에게 평범한 능력이 되었다.

한편 알바니아의 소설가인 이스마일 카다레는 이러한 기록문학이 인류의 상상의 자유를 빼앗았다고 이야기한다. 신화와 전설, 현실과 역사 이전 시대의 기억을 넘나드는 작품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천재 소설가는 영화, TV, 게임 등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고전 문학의 다이내믹한 창조성은 따라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신화의 인물은 하늘과 땅을 오가며 신으로 태어나, 땅으로 내려와서, 언젠가는 죽을 존재로 생을 살다가, 다시 신들의 영역으로 되돌아간다. 어떤 현대의 작가가 이러한 고전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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