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버리고, 버림받은 사람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08-22  |  수정 2016-08-22 08:18  |  발행일 2016-08-22 제28면
김남희 <화가>
[문화산책] 버리고, 버림받은 사람들
김남희 <화가>

까만 눈망울이 머루 같다. 가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뽀얀 털이 눈부시다. 종일 졸졸졸 따라다닌다. 꼬리를 흔들며 부채바람을 일으킨다.

강아지 이야기다. 언니 가족이 휴가를 가면서 강아지를 잠깐 맡겼다. 이름이 ‘돈’이다. 이름처럼 기쁨을 돈으로 베푸는, 눈치백단의 강아지다. 말만 못할 뿐, 하는 짓이 사람보다 낫다. 내가 공부를 하거나 신문을 보면 옆에서 스르륵 잠이 든다. TV에 ‘반려견 키우기’ 같은 예능프로가 왜 인기몰이 중인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나도 잠시나마 그 대열에 끼어 반려견의 사랑을 체감 중이다.

원시시대에 가축은 식량과 부의 상징이었다. 특히 개는 농경사회로 들어오면서 인간과 평생을 함께하는 동물이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흙을 묻히면서 살던 것이 지금은 집안에서 사람과 같이 산다. 또 하나의 가족이다. 사람은 야생의 개를 거실로 데려온 만큼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인간과 동고동락을 한 동물은 삼국시대 그림에도 나타난다. 그림 속의 동물은 인간을 수호하는 역할이었다. 조선시대가 되면 동물이 회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극장가의 동물 애니메이션처럼 동물화가 새로 등장한 것이다. 왕실의 후손인 화가 이암(1499~?)은 동물화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동화적이고 목가적인 화조화(花鳥畵)와 동물화로 두각을 보였다. 그 전까지 동물이나 새, 꽃 등은 그림에서 부수적인 존재였는데, 그로 인해 회화의 주제로 당당히 독립한 것이다.

이암의 ‘화조구자도(花鳥拘子圖)’는 강아지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넘치는 그림이다. 탁 트인 공간에 꽃나무를 배경삼아 자유로운 모습의 강아지를 풀어놓았다.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는 검둥이, 낮잠을 즐기는 누렁이, 풀잎을 입에 물고 노는 흰둥이. 세 마리의 강아지가 극히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중이다. 배경의 꽃나무는 그늘이 되어준다. 새와 나비가 더없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강아지를 향한 화가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돈이가 제 집으로 가는 날, 내게 안겨 있다가 언니를 보는 순간 연신 꼬리를 흔들며 언니 품에 안긴다. 이산가족 상봉처럼 주인을 만난 안도의 몸짓이 역력했다.

동물은 인간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그런데 휴가철을 맞아 주인에게 버림받는 애완견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국가 2급 공무원이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한 것처럼 그야말로 금수만도 못한 사람들이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