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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불꽃같던 여름도 다가오는 가을 앞에 꼬리를 내리고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가을 기운이 완연한 요즘이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 2016년도 넉 달만 지나면 새 달력이 필요한 때가 온다. 흘러가는 시간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는 어른들 말씀이 생각난다.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니 보내고만 있다 보면 화살보다 더 빠른 빛의 속도로 우리 손을 떠나버리지만, 가끔씩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사랑이 불타올라 내 눈앞의 사람과 한순간도 헤어지기 싫을 때, 패가 착착 감겨 이 기세로 고스톱판을 쓸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을 때 우리는 시간을 멈춰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사랑에도 권태기가 오고, 고스톱판도 하룻밤만 새우고 나면 무릎과 허리 등 안 아픈 데가 없어 다음 명절을 기약해야 하듯이 그런 불꽃같은 시간에도 마침표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를 우리 삶의 간주곡이라 했다. 우리가 초등학생 때 짝꿍과 지우개 따먹기 할, 쉬는 시간 10분을 기다리며 40분 수업을 버티듯 어른들은 불금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살기도 한다. 그렇게 재밌게 놀고 나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에너지를 얻고, 그렇게 논 기억으로 다음에 놀 때를 기약하며 일상을 버티기도 한다. 그래서 그 불꽃같이 멈춰진 몇 시간은 멍하니 흘려보내는 일상의 며칠과도 맞먹는 무게를 갖기도 한다.
이걸 학자들은 좀 유식한 말로 수평적 시간과 수직적 시간, 통시적 시간과 공시적 시간이라고도 했다. 흘러가는 수평적 시간이 멈춰진 수직적 시간과 만날 때 시간은 무한 확장되어 한 인간의 남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하는데, 바로 여기에 예술의 가치가 있다.
무료한 일상의 시간을 멈추고 무한 확장될 감동의 시간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공연장에 온다. 그런데 그 감동의 시간을 깨고 일상의 시간이 비집고 들어오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휴대폰. 사실 문제는 휴대폰의 빛과 소리가 타인의 감상을 방해하는 데 있지 않다. 잠재우지 못한 내 휴대폰 때문에, 그놈의 ‘까똑 까똑’ 때문에 깨뜨리고 싶지 않은 내 감동의 시간이 자꾸만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데 있다.
원해서든 끌려가서든 공연장에 갈 일이 잦은 가을이다. 이 가을에는 일상의 시간을 잠재우고 온전히 감동의 시간과 만나들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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