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못엔 한집 건너 하나 커피숍…‘코피’ 터지는 전쟁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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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02   |  발행일 2016-09-02 제41면   |  수정 2016-09-02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커피시장 현주소 (상) 커피숍과 커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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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커피숍은 메뚜기떼 같은 카공족에게 독점되고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초저가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긴 시간이 필요할 때는 고가 커피숍에서 진을 치며 고가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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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구에서 등장한 반반다방은 지역 중저가 커피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가장 만만해 보이지만 막상 문을 열면 가장 빨리 망하는 업종은 뭘까.

정답은 ‘커피숍’이다. 가장 리스크가 높으면서, 가장 많은 예비 창업자들이 블루오션으로 지목한 것이 커피숍이다. 이제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다. 복합문화를 빨아들일 수 있는 최고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누구는 커피를 ‘패션과 동격’이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젊은층 사이에 ‘커피 브레이크(커피 마시며 잠시 쉬는 시간)가 없으면 삶도 없다’는 말까지 나돌겠는가. 국내 성인 1인당 1년간 마시는 커피는 약 480잔에 이른다. 지난해 커피 시장규모는 3조5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급격한 성장세다. 2009년 7천억원 규모에서 6년 만에 5배 커진 것이다. 작년 국내 커피숍 점포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을 합해 4만9천600여개에 달했다. 올해 시장규모 4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작년 커피시장 3兆대 6년 만에 5배 ↑
프랜차이즈 등 점포 수는 5만개 육박
성인 1인 年 480잔 ‘커피 권하는 사회’
카공族엔 문화 즐기는 장소로 개념 확대

수성못 동쪽 7년여 18개 계열 커피숍
단위면적당 한강이남 最多 체인점 자리
대명9동 카페골목은 초저가공세에 쇠락
‘중저가’ 반반다방, 초저가·고가 틈 공략


◆커피 없이는 못 살아

요즘 청년백수의 양대 애장품이 있다. 커피와 스마트폰이다. 둘은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닌다. 커피를 중심으로 대화하고 연애하고 시험준비까지 한다. 커피숍은 점점 진화해 이젠 비즈니스 공간으로 변했다. 공부하는 공간도 어느 순간 도서관, 독서실에서 커피숍으로 옮겨간 것 같다. 현재 ‘커피계의 스티브 잡스’로 군림하고 있는 스타벅스의 풍속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분명해진다. 그곳은 커피숍이 아니라 호텔 로비 같다. 거기로 오면 다들 뉴욕 맨해튼에 온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자고 일어나면 커피숍이 오픈한다. 대로변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이젠 주택가, 골목 안으로 치고 들고 있다.

지난달 31일 수성못 동쪽 주변을 훑어봤다. 파스쿠찌, 다빈치,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하바나, 커피스미스, 말리커피,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롤링핀, 디저트39, 커피왕, 두다트, 더메드, 판구치, 마마쥬스바, 핸즈커피…. 7~8년 전부터 드문드문 들어선 커피숍 계열이 무려 18개나 된다. 단위 면적당 한강 이남에서 가장 많은 체인점형 유명 커피숍이 들어선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했다. 이 구역은 대구 지역 중 가장 성장잠재력이 높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 가지 명물이 동시에 시너지를 일으킬 전망이다. 조만간 들안길이 서울 청계천처럼 물길이 흐르는 문화복합공간으로 발돋움한다. 수성관광호텔도 리조트 같은 7성급 컨벤션호텔로 변모 중이다. 그 중심부에 야간 산책문화가 환상적으로 짜인 수성못이 사람들을 계속 불러들이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자는 이 공간을 포기할 수 없다. 현재 이곳 평당 가격은 최고 3천700만원을 넘어섰다. 팔공산 파계사 올라가는 곳에도 에소, 10분의 7 등 10여군데의 커피숍이 들어섰다.

하지만 외화내빈 국면이다. 외형만 보면 뭔가 될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커피시장 상공에는 이미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있다. 곳곳에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강력한 타격을 받은 곳 중 한 곳이 바로 남구 대명9동 카페골목의 커피숍이다. 자신있게 론칭했던 다빈치, 엔제리너스, 브릿지, 시애틀의잠못이루는밤이라는 네 공룡이 모두 백기를 들고 이 바닥을 떠났다.

◆ 초저가 개미 커피숍의 공세

빽다방, 반반다방, 마시그레이, 별다방, 봄봄, 커피에반하다, 고다방, 더착한커피, 쥬씨….

설상가상 최근 2년새 1천~2천원의 초저가 커피숍이 공룡급 커피숍을 위협사격하고 있다. 자연히 시장은 고가·중저가·저가 커피숍으로 나뉘고 있다.

스타벅스 등 비교적 고가의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값이 적게는 4천원대, 많게는 6천원대까지 치솟았다. 이에 고객들은 저렴한 커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같은 박리다매형 커피숍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바람에 ‘시장 나눠먹기’에서 밀려나 폐업하는 업체가 줄을 잇고 있다.

저가 커피의 진원은 어딜까.

바로 ‘이디야커피’다. 2001년 서울 중앙대점을 처음 오픈한 이디야커피는 작년 1천800호점을 돌파했다. 점포수만 놓고 봤을 때 고가 브랜드 커피를 포함한 전체 커피숍 시장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다. 2천800원에 아메리카노를 판매하는 이디야커피의 뒤를 1천원대 커피를 무기로 한 새로운 브랜드들이 매섭게 추격했다. 대표 주자는 ‘빽다방’이다. 빽다방은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요리연구가 겸 사업가 백종원씨의 더본코리아에서 론칭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백씨의 인기와 맞물려 빽다방은 저가 커피숍 업계의 새로운 공룡으로 떠올랐다. 빽다방은 2014년 전국에 단 24개의 점포밖에 없었으나 2015년 말에는 415개로 급격히 늘어나더니 현재 500개를 향해 달리고 있다.

편의점도 슬금슬금 커피시장으로 발을 내밀었다.

국내 편의점 업계 톱 3인 CU, GS25, 세븐일레븐도 저가 커피 판매에 열을 올린다. CU의 ‘카페 GET’은 작년 12월부터 원두커피 한 잔에 1천200원을 받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는 아메리카노 작은 컵 한 잔에 1천원, 큰 컵 한 잔에 1천500원을 받고 있다. GS25의 커피 브랜드인 ‘CAFE 25’는 아메리카노 작은 컵 한 잔을 1천원에, 큰 컵은 1천2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또 다른 저가 커피숍인 ‘커피에반하다’는 전국에 320여개의 매장이 운영 중이며 공정무역 커피라는 기치를 내세운 ‘더착한커피(The kind coffee)’도 117개에 육박한다. 1천500원짜리 아메리카노와 생과일주스를 파는 ‘커피식스(Koffi six)’는 60여개의 점포가 운영 중이고 커피뿐 아니라 다양하고 독특한 음료와 빙수를 판매하는 ‘그리다 꿈’은 오픈 예정인 매장을 포함해 총 45개점이 있다.

◆ 중저가 커피 ‘반반다방’

지난해 10월 대구를 기반으로 영남대병원 입구에서 문을 연 ‘반반다방’.

시장분석을 냉철하게 한 뒤 초저가와 고가의 틈을 파고들었다. 이정영 반반컴퍼니 대표는 “아메리카노 한 잔 2천500원, 그러면서도 커피 맛은 고급을 추구한다. 여느 저가 업소는 테이크아웃만 하도록 하지만 여기는 홀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한 게 승부처”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현재 시내에 9개의 가맹점을 가동하고 있다.

이런 초저가 브랜드들 때문인지 메이저급 커피 브랜드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2014년 주요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폐점 현황을 보면 ‘할리스커피’가 전체 매장 460개 중 40개의 폐점 매장을 내며 가장 높은 폐점률(8.6%)을 기록했다. 롯데 계열의 ‘엔제리너스커피’는 927개 중 47개의 지점(5%), ‘탐앤탐스커피’는 447개 중 23개의 지점(5.1%)이 없어졌다. ‘카페베네’는 932개 매장 중 32개(3.6%)가 폐점했고 ‘드롭탑’은 220개 매장 중 12개(5.4%)가 문을 닫았다. 향토 커피브랜드도 현재 상황을 위기로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커피숍 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다.

특히 봄봄의 아메리카노 1천원 덤핑 마케팅 전략은 다른 브랜드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봄봄의 1천원 커피는 정상적 품격을 갖춘 상품이라기보다 다른 걸 팔기 위한 미끼상품이다. 커피를 좀 아는 이들은 봄봄의 1천원짜리 커피를 무늬만 커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초저가 커피 전략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저가 커피숍이 절대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가 메이저 커피숍에는 있다. 바로 흡연 부스 설치다. 저가커피숍은 거의 테이크아웃만 되기 때문에 느긋하게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일을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역시 가격의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른바 ‘카공족’ 때문에라도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들은 매장 매출을 일으키는 주요 고객 중 한 부류지만 이들이 장시간 매장을 차지하면서 회전율을 둔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 포화와 저가커피 공세 등으로 업계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이용시간 제한 등의 대안을 내놓을 수도 없어 한숨만 짓고 있다.

카공족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대형커피전문점이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즐기는 장소’로 공간의 개념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트렌드는 1천500~2천원짜리 저가커피점들이 급증한 뒤부터 더욱 확산됐다. ‘테이크아웃 시에는 저가커피점에서 마시고, 대형커피전문점에서는 장시간 편안하게 머무른다’는 인식이 고착화되고 있다. 자연히 대형커피점을 찾는 고객들의 체류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비싸게 낸 가격을 긴 체류시간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라 볼 수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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