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음악, 그 강렬한 신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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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14  |  수정 2016-09-14 09:00  |  발행일 2016-09-14 제19면
20160914
지안 <작가·배우>

때늦은 장마에 더위는 물러가고 팽팽했던 빨랫줄은 젖은 옷가지를 얹고 해를 기다린다. 바람이 불면 가을은 성큼 다가와 높아진 하늘을 자랑할 것이다. 나는 음악을 친구 삼아 여행을 떠난다. 음악은 치유와 생명의 힘을 가진 신의 선물. 칡뿌리처럼 숙주를 빠져나와 우리 생활 다양한 장르에서 고집스럽게 자생하는 이 마력의 음표에는 마음에 대한 치유와 양생의 힘이 있다고 한다. 음악 중독으로 30여년 독수공방 긴긴 밤을 홀로 보낸 노처녀인 나는 음악이 주는 황홀경을 글로써 풀어내기에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물처럼 유연하고 빛처럼 깊숙이 파고드는 음악의 마성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나르시스의 육체와 같아서 인간심리 저변을 마구 요동치게 하고 마침내 내 마음으로 다가와 노란 수선화를 꽃피웠다.

피아노를 칠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음악에 빠져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악기보다 사진기술에 재능이 있었고 십자수 같은 규수놀이보다는 사내 아이들의 적장놀이에서 느끼는 희열이 강했다. 여군이나 운동선수를 했더라면 송중기나 진구를 사랑하는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한때는 천문학자나 과학자를 꿈꾸기도 했고 필시 전생에는 독립운동을 했으리란 짐작도 든다. 그러나 현실에 십분 만족하기 때문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면, 무한대로 가늠하지 못할 음악의 영적 한계치는 단언컨대 신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원시부족이 가뭄과 사냥의 염원을 기리기 위해 풀로 만든 짧은 도롱이를 허리에 두르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축제의식이나, 폭포수 계곡 아래에 대돗자리를 깔고 서편제로 득음의 열의를 불사르며 소리의 한을 찾는 영화 속 오정해와 같이, 또는 칭기즈칸의 후예인 몽골족이 야생마 ‘타키’를 타고 대자연의 초원을 누비며 부르는 유목민의 원시적인 가창 예술 ‘후미’(목구멍으로 지속적인 베이스음을 만들면서 다성부의 다양한 화음을 연출하는 몽골족의 독특한 가창법) 또한 육성의 악기로 부르는 음악이 아닐까.

음악이란 대체 불가능의 아이템이며 내 달팽이관에 도착해 소리로 연소될 때 카타르시스를 동반한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흥이 많은 민족이었다. 인간이 육성의 악기를 가지고 태어난 것 또한 신이 주신 축복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그러니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메마른 가슴을 파도처럼 적셔낼 음악의 영적인 힘에 한 곡, 얼큰하게 취해 봐도 좋지 않을까.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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