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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진환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홍보부장> |
부끄럽게도 난 고교 시절 며칠씩 학교를 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난 길을 떠났다. 떠나고 싶었고, 이어진 길을 걸으면 그것이 좋았다. 그렇게 걸었던 길 중에 하나가 낙동강 길이다. 낙동강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낙동강의 발원지는 내 고향 장성에서 20분쯤 거리인 태백시 황지(黃池)다. 옛날 욕심 많은 황 부자의 집이 하늘의 노여움으로 땅 속으로 꺼졌고, 그의 집이 황지라는 연못이 됐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길은 길로 이어지듯, 강은 강으로 이어진다. 낙동강도 그렇다. 한 번 물꼬를 튼 강은 남북으로 1천리가 넘는 길을 때론 도도한 여인처럼, 어느 때는 느릿느릿 어르신네 걸음처럼 그렇게 흐른다. 첫 흐름을 연 황지에서 험준한 지형을 따라 철암, 석포, 현동, 춘양을 거친 물길은 봉화, 영주, 안동, 예천, 상주, 김천, 구미, 대구, 밀양, 부산 다대포 등을 거치며 넓게 대지를 적신다. 그러면서 강도 세월을 먹는다. 당시 강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낙동강 길은 산이 높은 상류를 지나야 비로소 걷기가 점차 수월해진다. 부드러운 흙길을 밟으며 강을 따라 걸으면, 촌락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천천히 다가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맘 그득한 논밭과 농부들의 여전한 삶 또한 강처럼 살지게 흘렀다. 맑고 푸른 강에선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았다. 지금은 생소한 단어지만 넝마주이들은 고물을 건져 팔며, 가족과 그 강가서 생계를 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어느 마을의 주민들은 나룻배로 강을 건너기도 했고, 이웃은 친인척보다 가깝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정겨움이 넘쳤다.
강에는 전설과 이야기도 많다. 철암 검룡소와 영주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상주 경천대, 칠곡 낙동강 전승지, 밀양 영남루, 부산 을숙도와 다대포 등 굽이굽이마다 사연을 안고 있다. 문학과 예술에 비친 낙동강은 또 어떤가. 조선조 때 이현보 선생은 ‘어부사(漁父詞)’에서, 근대에 와서는 소설가 김정한이 소설 ‘모래톱이야기’에서 낙동강을 노래했다. 시인 이은상은 그의 시 ‘낙동강’으로 강에 스민 연원과 민초들의 굳센 삶을 담았고, 유치환 선생은 1950년대 중반 ‘겨레의 어머니여, 낙동강이여!’를 발표하며 강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내게는 또 그 강이 어떤 곳인가. 열댓살의 한참 가슴 저리던 시절. 낙동강은 친구였고 휴식처였다. 그 강이 아프다고 하니, 마치 고향 친구가 그러한 듯 아리다. 맑고 깨끗한 강, 삶의 위안이 되는 낙동강을 지금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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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낙동강](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9/20160920.01023080351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