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 수단일까 목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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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06  |  수정 2016-10-06 07:51  |  발행일 2016-10-06 제21면
[문화산책] 예술, 수단일까 목적일까
최영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1960년대 미국의 보몰과 보웬이라는 경제학자는 기술의 발전과 노동생산성 증가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다가 그것이 비례하지 않는 산업 부문이 있음을 제시했다. 서비스 부문, 그중에서도 특히 예술 분야는 다른 산업처럼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생산성 향상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19세기에도 베토벤의 ‘현악4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선 네 명의 연주자가 필요했고, 20세기에도 변함이 없다. 생산성의 향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데 임금 등 비용은 오를 수밖에 없는 이른바 ‘비용병리효과’가 발생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그들의 논문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는 이후 50년 동안 계속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예술경영이라는 학문의 시발점을 그들의 논문에서부터 찾기도 한다.

많은 유럽국가들은 국가적으로 예술을 지원하고 ‘국립’이라는 이름의 기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기수 미국도 연방정부에 문화부는 없지만 60년대부터 국립예술기금(NEA)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70년대 초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지원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왜? 예술은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지만 시장에 맡겨둬선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는 것이다. 그럼 예술은 왜 이 세상에 필요할까.

사회통합, 국위선양, 도시재생, 경제적 파급 효과와 부가가치의 원천, 기업 이미지 제고, 삶의 질 향상 등 예술은 사회에 여러 가지 긍정적 기여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예술이 참 군색해지고 비참해지는 경우가 있다. 후원기업 앞에서는 마치 구걸하는 사람 같아 보이고, 수십 년을 이어온 축제가 시장이 바뀌면 없어지거나 예술가들이 쫓겨나기도 하고, 정권에 입바른 소리를 하면 지원 심사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그 유명한 팔길이 원칙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마라’는 참 멋진 말인 것 같은데 현실과는 먼 얘기인 것도 같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학자들이 마련한 답이 있다. 예술은 세상에 긍정적 역할을 할 때만 필요한 실용적인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류 문화의 핵심이며 인간 삶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즉, 예술은 용도폐기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자본주의 미국이 자랑하는 현대경영학과 마케팅의 양대산맥인 피터 드러커와 필립 코틀러가 말년에 예술단체의 경영과 공연예술의 마케팅에 관한 기념비적 저서를 남기며 특히 이점을 역설했다는 것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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