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존재와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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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9  |  수정 2016-11-09 08:09  |  발행일 2016-11-09 제23면
[문화산책] 존재와 존엄
최영주 <극단 동성로 대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한낮, 한 사내가 국제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동수의 옆구리를 칼로 강타한다. 사내는 주저앉은 동수에게 두 번, 세 번, 네 번. 그렇게 수차례 상처를 입힌다. 두려움에 의한 엉겁결에서인지 분노의 응징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기계적인 칼질에 동수는 생애 마지막 말을 한다. “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해라.”

2001년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이다. 당시 이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던 사람도 이 명대사는 알고 있을 만큼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이다. 유오성은 준석 역을, 장동건은 동수 역을 맡아 어릴 적 친구에서 서로의 배신에 변질되어가는 친구의 모습과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려냈다. 친구의 살인을 교사했던 준석은 재판에서 자신이 회생할 기회를 박차고 스스로의 죗값을 치러낸다. 면회실에 찾아온 친구가 재판에서 왜 기회를 저버렸냐고 묻는 말에 준석은 답한다. “건달이 쪽팔리면 안 된다 아이가.”

온 나라가 시끄러운 지금, 이 건달의 한 마디는 지금의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권력자들의 비리와 부패에 국가와 국민의 안보는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헌법정신은 무너졌다. 역사와 함께 이어져온 정경유착의 고질적인 행태를 우리는 오늘날 현실에서 겪고 있다.

과거 서양에서는 신을 제외한 개체들은 모두 사슬형 위계를 이룬다고 봤는데, 이를 ‘존재의 대사슬’이라고 한다. 인간 세계에서는 왕을 시작으로 귀족, 평민, 노비가 사슬로 연결돼 각 존재가 위계를 이루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왕은 사슬의 가장 위에 존재하므로 왕의 존엄이 흔들리면 모든 단계의 사슬이 붕괴된다고 믿었다. 즉, 왕은 왕답게 아랫사람들은 그 직분에 맞는 품행으로 사회를 지켜나가야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슬의 어느 한 계급이라도 자신의 직분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사슬이 파괴되고 그 사회는 붕괴된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끊어진 사슬의 모습이다.

영화 ‘친구’에서 준석은 출세에 눈이 멀어 배신한 친구를 응징했지만 재판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을 밀쳐내며 참회한다. 비록 건달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건달이 되어야 한다며 마지막 순간 자신을 단죄하고 자기심판을 해 친구의 존엄성을 지킨다. 오이디푸스왕도 자신의 과실과 결함을 속죄하며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정의를 지키고자 하지 않았던가! 나랏님과 권력자들도 바퀴벌레 흩어지듯 어둠 속으로 꼬리를 감추려 말고 부디 오만함에서 내려와 격과 품위, 책임 있는 언행으로 이 시대의 사슬을 단단히 잡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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