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삶의 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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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1  |  수정 2016-11-21 08:02  |  발행일 2016-11-21 제22면
[문화산책] 삶의 동사
서영옥 <미술평론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엔 촛불 하나뿐이다. 초에서 비롯된 빛과 진한 어둠의 대비가 극명하다. 흰 초가 검고 넓은 여백에 둘러싸여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자세히 보면 불꽃에 비해 초의 몸이 작다. 현실 같은 비현실경이다. 바로 화가 신순남의 작품 ‘회상’이 그렇다. 100호 캔버스에 오롯이 촛불 하나만 담긴 이 작품은 2015년 안동문화예술의전당 ‘디아스포라의 배’전에 건 작품 중 한 점이다.

신순남은 1928년 연해주에서 태어나 2006에 작고한 디아스포라 작가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처럼 모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적용되며 식민지 지배와 전쟁, 정치적 억압, 경제적 빈곤 등의 이유로 타국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을 말한다. 당시 필자는 참여작가 13명의 작품세계를 모두 기록했지만 유독 신순남의 ‘회상’이 오래도록 인상 깊다. 디아스포라의 일생이 촛불에 응축되어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17세기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도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앞에 한 자루의 촛불을 켜 놓았다. ‘촛불의 화가’로 불리는 드 라 투르는 로렌 지방의 광대한 영지를 소유한 부호였고 재산을 지키려다 분쟁에 휘말렸다. 민중에게 가혹한 행위를 한 그는 1652년 1월에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맞고 만다. 그가 참극을 맞기 12년 전 1940년에 그린 촛불은 진리와 신앙의 공간에 홀로 남은 ‘비탄의 바다’, 즉 막달레나를 비추고 있다. 이때 촛불이 발하는 고요한 빛은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며 세속의 허무함과 욕망의 덧없음을 발설한다.

순간 불타고 마는 촛불의 속성이 그림에서는 삶의 일시적 유희를 의미한다. 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존재는 죽음이자 생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중적 상징이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해도 그림은 허상이나 그 허상에 진실보다 더한 진실이 담기곤 한다. 종합해보면 예술과 철학이 묘사한 촛불의 구심점엔 ‘삶의 동사’가 스며있다. 그리고 진행형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고 있는 촛불민심도 진행형이다. 앞서 소개한 그림에서와 같이 하나가 아니다. 바다를 이루었다. 제 몸을 녹여가며 밝힌 불빛엔 혼란한 시국을 방관만 할 수 없어 나선 민심이 투영됐다. 헛된 욕망과 복잡한 이념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민심은 정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삶의 동사이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정권보다 국민의 그 열정과 냉철함이 오히려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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